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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리뉴얼한'N서울타워'에서 한옥마을까지 남산에서 즐거운 휴일 하루 보내기
30년만에 리뉴얼한'N서울타워'에서 한옥마을까지 남산에서 즐거운 휴일 하루 보내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6.01.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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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이어 남산 서울타워가 30년 만에 새 단장을 했다. 디지털 시설과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서울은 경복궁과 청계천, N서울타워를 잇는 새로운 문화벨트로 변신 중이다.
글 _ 신규섭 기자 사진 _ 조준원 기자·CJ그룹 홍보팀

“환상적인 야경이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서울 도심을 이루는 4개의 산은 북-북악산, 동-낙산, 서-인왕산, 남-남산이다. 풍수적으로 남산은 주작의 자리에 앉은 안산이다. 안산은 주산인 북한산에 비해 여자처럼 부드럽고 편하다. 남산은 높이가 265m다.
남산의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했다. 풍수지리상 도읍의 안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북악산과 남산에 세웠으며 남산에 세운 신당에는 목멱대왕이란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신사라고 불렀고, 나라에서 세운 신당이므로 국사당이라고도 했다. 이때부터 인경산은 목멱산으로 불렸다. 지금의 남산 정상 팔각광장에 국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일본은 국사당을 폐쇄하고 장충단공원을 조성한 뒤 그 일대에 벚꽃 수천 그루를 심는 등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남산을 훼손, 우리 민족의 정신적 혼을 없애려 했다.
일제시대 10만5천 평을 1940년 3월 12일 총독부고시 제118호로 남산을 ‘남산도로공원’으로 지정, 이때부터 ‘남산공원’이란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 6·25를 전후해 월남한 사람들이 남산 주변에 집단으로 거주, 이 일대가 ‘해방촌’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서울시에서는 남산의 잠식시설을 이전하여 자연경관을 회복하고 공원시설을 보완, 정비하여 시민공원으로서의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1991년부터 1998년까지 8년간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을 했다.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으로 잠식시설 89동을 이전시켰는데, 이전 내용은 정부기관 21동, 외인주택 52동, 개인주택 16동이 남산공원에서 사라졌다.
1994년 11월 30일 오후 3시 남산주공외인아파트 2동이 우리나라 최초로 발파 철거되었는데, 철거 당일 보광동, 한남동 일대에는 많은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으로 외인주택단지지역에 야외식물원이 조성되는 등 중구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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