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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은퇴하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과 ‘추억의 기타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은퇴하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과 ‘추억의 기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6.07.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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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의 전원주택 단지에서 만난 그는 집 짓기에 열중이었다. 곧 있을 전국 순회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조용히 음악만 하며 지낼 생각이란다. 역시 평생을 기타와 함께해온 뮤지션답다. 한국 록의 거장이 걸어온 음악 인생 속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글 _ 윤혜진 기자
사진 _ 박민철 기자

1962년 한국 최초 록 밴드 ‘애드 포’를 결성해 40년 넘게 국내에 록 음악을 뿌리내린 신중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음악 인생은 만주 장춘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이발소와 미용실을 운영하며 4층 건물을 장만할 정도로 부유했다.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유성기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참 다양한 음악을 들었어요. 광복 이전의 만주 땅에는 우리 음악부터 일본 음악, 독일 음악까지 여러 문화가 섞여 있었거든요. 전쟁 때라 행진곡 같은 웅장한 느낌의 곡도 많았어요.”
그렇게 서서히 음악 속으로 빠져들 무렵, 그의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여섯 살 되던 해 해방을 맞았지만 혼란한 정세를 틈타 중국 군인과 주민들의 약탈이 이어졌기 때문. 결국 그의 가족은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플랫폼에 쭉 늘어서 짐을 뺏는 중국인과 아예 차를 세우고 총을 들이대는 소련군, 일본인을 색출하려는 북한군의 검문을 거쳐 20여 일 만에 힘겹게 서울에 도착했다.
“곧 6· 25 전쟁이 터져서 충청도로 피난을 갔는데 거기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죠. 그때부터 동생을 두고 혼자 서울 친척집에 얹혀 살며 일했어요. 조금씩 쥐여주는 용돈을 모아 몰래 기타도 배우고 야간 중학교도 다녔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집에서 기타 하나 메고 뛰쳐나왔죠. 이때부터 음악학원을 전전하며 기타로 종로에서 유명해졌어요.”
당시 그는 그를 눈여겨본 이에게 학원장 겸 기타 선생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활이 피기는커녕 교습비를 받는 족족 학원에서 생활하는 숙박비로 내느라 빚만 늘어갔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교습 받는 학생의 소개로 미8군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사실 오디션에 합격하고도 그 단체에 못 들어갈 뻔했어요. 전자기타를 비롯해 연주하는 데 필요한 음향기계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눈앞이 막막했죠. 터덜터덜 종로를 걷고 있다가 아는 친구를 만났어요. 하도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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