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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어린 시절 화가 김점선의 ‘알록달록 유년시절’
명사의 어린 시절 화가 김점선의 ‘알록달록 유년시절’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6.08.1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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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면 흔히 초원을 달리는 말을 떠올리지만 화가 김점선의 그림 속 말은 한없이 자유롭다. 빨강 말, 노랑 말, 웃는 말, 달리는 말, 앉아 있는 말….
이처럼 알록달록 고운 색과 빙그레 웃는 말을 주로 그리는 이유는 자신이 ‘유치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그녀가 찬란하게 유치했던 사춘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 _ 윤혜진 기자 사진 _ 김도형 기자

호탕한 웃음만큼이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화가 김점선. 그녀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적으면 첫마디에 ‘누구야’라고 이름을 부르며 말을 놓는다. 그러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들 수십 년 만난 사람들 마냥 친해진다. 흔히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베풀 줄 안다고 한다. 이 놀라운 친화력은 어려서부터 사랑받고 자란 증거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부족할 것 없는 아이였다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때조차 배고팠던 기억이 없다. 다소 황당하게도 피난민 시절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아 위생 상태가 불량했던 점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내가 다섯 살 때 1·4 후퇴가 일어났어. 개성을 떠나 밑으로 내려오는데 아무리 울고 오줌 싸고 똥을 눠도 나를 씻겨 주는 사람이 없는 거야. 전쟁 통에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지 더러운 게 뭐 어떻느냐는 거지. 나는 전쟁에 대한 기억이 그래. 어린데 죽는 게 뭐 무서웠겠어. 그저 냄새 나게 방치되었던 것이 불쾌할 뿐이었지. 지금도 그 기억 때문에 용변을 보면 물로 박박 닦아. 심지어 우리 아들도 뽀드득 닦여가며 키웠어(웃음).”
그녀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드러내는 분노의 엉킨 가닥을 풀어보면 결국 거창한 이념보다는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색이 묻어난다고 했다. 때문에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의 김점선을 되돌아보는 일은 더욱 난해해질 것 같았다.

멀어져 가는 부녀 사이를 회복해준 백마
“우리 부모님은 아이들 교육에 적극적인 분들이셨어. 그 당시 입학 적령기에 제대로 입학한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딱 일곱 살에 입학했어. 내가 지금은 할머니고, 덩치도 이렇게 커서 귀엽다는 말이 안 어울리지만 그때는 반 친구들보다 한참 어린 데다 부산 사투리를 안 쓰니까 어벙해 보였나 봐. 다들 나를 귀여워했어. 우리 반 마스코트였다니까. 믿어지니?(웃음) 게다가 더 놀랄 만한 건 난 어른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는 거야.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담임선생님이 수학 문제를 풀 때 무조건 문제를 깔봐야 잘 풀 수 있다고 했어. 그 이후로 칠판에 적힌 수학 문제 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면 무조건 손 들고 나갔어. 틀린다고 뭐 누가 죽이나. 하하.”
그녀는 결혼도 홍익대 대학원 재학 시절 은사의 말대로 가죽 공예를 하는 가난한 남자와 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야 여기저기 신경 쓸 일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들은 거의 유일한 제자다. 아마 이때부터가 가난이라곤 모르고 자란 그녀가 생존의 절박함이 무엇인지 알게 된 때일 게다.



김 화백의 집은 여러 종류의 물건을 취급하는 장사를 했다. 개성에서 사이클 선수를 하며 자전거 가게를 운영했던, 장사 수완이 좋았던 부친은 남쪽으로 내려와서도 금방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도 혼자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하고, 보따리 대신 백을 어깨에 메고 소풍을 갔을 정도. 그러나 그녀는 풍족한 생활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매점 매석의 황제였지만 우리 5남매에 대해선 아낌없이 돈을 쓰는 편이셨어. 그런데 이상주의를 향한 정열로 불타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에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나 싫어지더라고. 끊임없이 경멸하며 말도 안 되는 반항을 했어.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화 한번 안 내셨지. 그런 분이 내가 미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할 때에는 크게 반대하시더라. 아버지 입장에서는 선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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