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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의 딸로 자라나 피아노로 세계를 울린 소녀 피아니스트 이수미 감동 사연
노점상의 딸로 자라나 피아노로 세계를 울린 소녀 피아니스트 이수미 감동 사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6.09.1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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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 처음 두드린 건반의 매력에 빠져 피아노가 인생의 전부가 됐다는 이수미(19) 양.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재들을 따돌리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녀에겐 남모를 아픔이 많았다. 혹독한 가난과 외로움을 이겨낸 이 양의 가슴 저린 사연을 공개한다.

글 _ 신도희 기자 사진 _ 조준원 기자

한 소녀가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다. 배낭을 맨 자그마한 어깨가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어린 소녀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다. 이제 겨우 열네 살. 머나먼 독일로 떠나는 소녀에겐 옷가지 몇 벌 든 가방과 단돈 38만원이 전부다. 이 소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05년 5월, 독일 연방 청소년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 이수미 양. 독일 연방 청소년 콩쿠르는 유럽 각지에서 공부하는 2천여 명의 학생들이 1년간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르는,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꼽힌다. 바로 이 대회에서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 이수미 양이 독일로 유학 온 지 4년 만에, 그것도 ‘대회 역사 42년 만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라는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했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엄마아빠 얼굴만 눈에 아른거리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죠.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는데, 1위라니…정말 믿기지 않았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한 듯 이수미 양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그녀지만 아직도 표정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38만원 들고 홀로 독일로 건너간 당찬 14세 소녀
KBS 방송국의 초청을 받아 잠시 귀국해 KBS교향악단과 협연 무대를 가진 이수미 양은 현재 독일 데트몰트 대학에 재학 중이다. 이 양이 처음 피아노를 친 것은 네 살 때였다. 피아노 학원 앞을 지나다 피아노 치는 아이들을 본 다음날부터 네 살짜리 꼬마는 자신의 배를 건반 삼아 손가락을 두드렸다. 조금 더 크면 피아노를 배우게 해주겠다고 말려도 툭하면 사라져 피아노 학원 앞에서 찾아오기를 수차례. 결국 이 양의 부모는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에게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이가 너무 하고 싶어해서 ‘저러다 말겠지’하고 학원에 보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죠. 어린애가 바지가 다 젖고 엉덩이에 땀띠가 날 때까지 피아노를 치는 걸 보면서 피아노가 수미의 타고난 운명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 양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천재 소리를 들으며 각종 대회 1위를 휩쓸었다. 이 양의 자질을 눈여겨보고 무료로 강습을 해주던 영남대 피아노학과의 장신옥 교수는 중학생이 된 이 양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유학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건축 자재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회사가 IMF로 인해 부도나고 집 안에 차압딱지가 붙은 상황이었기 때문. 빚 때문에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힘들어졌고, 불구속 중이던 아버지가 구속되면서 피아노까지 그만두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노점상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는 상황이었지만 이 양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장신옥 교수의 권유와 우연히 알게 된 음대 교수의 도움으로 교수 추천서와 단돈 38만원을 들고 독일행을 감행했다. 하숙집말고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지만 열네 살 당찬 소녀는 피아노만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다.
“어리긴 했지만 제가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부모님께 큰짐을 드리는 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반드시 보답할 자신이 있었고,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수미를 유학 보낸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손가락질했어요. ‘저 모양으로 살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유학을 보내느냐’면서 주제 넘는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유학 가는 데 한푼도 못 보태주는 것이 미안할 뿐이었어요.”
2001년, 원대한 꿈을 품고 독일로 갔지만 예상했던 대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 하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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