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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여윈 슬픔딛고 20주년 순회공연중인 소프라노 조수미
아버지 여윈 슬픔딛고 20주년 순회공연중인 소프라노 조수미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6.10.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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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국제 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클래식 공연을 보기 힘든 지방 도시를 돌며 순회 독창회를 열고 있는 것. 많은‘어린 조수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그녀를 만나보자.

글 _ 오선영 기자 사진 제공 _ 워너뮤직코리아

1983년 이탈리아 로마의 한 공항. 낯선 동양인 여성이 텅 빈 의자에 홀로 앉아 비를 맞으며 일기장을 꺼내들었다.‘어떤 고난이 닥쳐도 이겨내고 울지 않을 것,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을 지닐 것, 말과 행동을 분명하게 할 것.’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글귀를 새기듯 한 자 한 자 힘주어 일기를 써내려갔다.
올해로 국제 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던 당시의 일화다. 이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한 그녀는 수많은 콩쿠르를 석권하며 유학 2년 반 만인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리골레토’의‘질다’역으로 처음 데뷔한다.

아버지 임종 지키지 못한 게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이제 와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서울대 성악과 1등이던 제가 어느 순간 52등인 꼴찌로 떨어졌어요. 결국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돼 떠밀리듯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 된 거죠.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새벽 3시 반에 도착했는데 혼자인 데다 갈 데도 없고 배도 몹시 고팠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타고난 재능에 어려서부터 성악, 무용, 피아노, 가야금 등을 익히며 음악적 감성을 키워온 조수미는 선화예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성악과가 생긴 이래 최고의 성적으로 입학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항상 자신이 세상에서 노래를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고 늘 칭찬만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성악가가 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유학도 떠밀리듯 가게 되었고,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여자로 살아갈 생각이었다고.
이런 생각이 바뀐 것은 같은 유학생이던 일본인 여학생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게 된 조수미는 난생 처음으로‘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나만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자신만만한 믿음이 깨지면서 오로지 연습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바보처럼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오늘의 조수미가 있을 수 있었다”며 밝게 웃었다.
데뷔 후 20년, 그녀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런던의 코벤트 가든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정복하며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인정을 받았다. 전설적인 명 지휘자 카라얀을 만났고, 플라시도 도밍고와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듀엣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고국인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억이 더 깊이 남아 있다는 그녀. 몇 년 전 북한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응원가인‘챔피언’을 부르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기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단다.
그동안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 세계를 떠돌며 공연하느라 20년 동안 부모님 생신 한번 제대로 챙겨드린 적이 없고, 동생들 결혼식에도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조차 뵙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공연을 하던 중 부음을 들었지만“만인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음악가가 팬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에 귀국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본 공연을 모두 소화한 뒤 네 번째 앙코르곡‘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부르기 직전 그제야 관객들에게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전했다. 객석에서는 탄식과 뜨거운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지난 4월 4일 파리 독창회 공연 중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를 성악가로 키워주신 분인데 임종도 지키지 못했죠.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을 거예요.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한 채 예정된 음악 스케줄을 소화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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