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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재래장 만드는 화경정사 이은홍 대표
전통 재래장 만드는 화경정사 이은홍 대표
  • 이윤지기자
  • 승인 2014.03.04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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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명품 슬로푸드를 빚어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음식은 장이 그 맛을 좌우한다. 독을 열면 깊은 향을 내는 제대로 묵은 장은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 감칠맛이 돋는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에 있는 화경정사 이은홍 전통식품의 재래식 된장과 간장은 그 맛이 더욱 특별하다. 이은홍 대표는 4대째 이어져 내려온 비법으로 유기농 장을 찾는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의 대표 슬로푸드로 알려진 장류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정성이 빚어낸 경이로운 먹을거리이다. 햇빛과 바람, 기온, 물 등의 환경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할 뿐더러 장독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 또한 장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긴 세월과 정성 어린 손길이 어우러져 숙성된 유기농 장은 일반 장류 상품에 비해 가격이 곱절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정성을 품어 비로소 얻어진 고귀한 맛은 그 값을 톡톡히 한다. 제대로 만든 전통 장을 구하기 위해 완도의 화경정사까지 직접 찾아오는 소비자들은 하나같이 화경정사의 천연 그대로의 장을 한 번 맛보면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유기농 토종 콩으로 만든 장
널리 알려진 건강식품이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천연발효 식품인 된장과 간장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그 맛과 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된장이나 간장이 얼마나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깊은 역사가 서린 비법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숨쉬는 옹기에서 깨끗하게 묵혔는지, 품질이 좋은 콩을 쓰는지 등 그 과정과 재료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진 후 선택한다는 거다. 향토의 내음이 가득한 한옥에 온돌과 가마솥을 놓고 밭에는 토종 콩을 심어 키우는 완도의 이은홍 대표는 화경정사(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화목하게 모여 사는 집)라는 이름을 짓고 직접 담근 질 좋은 유기농 장을 자신 있게 권한다. 남도음식에 대한 오랜 애정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장 담그기의 전통에 대해서도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땅은 얼고 볕은 적은 겨울 내내 깊은 독에 묵힌 화경정사의 장맛은 과연 그 향부터 달랐다. 이은홍 대표는 장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없이 세월을 버텨온 덕에 풍부한 제 맛이 우러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재료들을 고르고 서두르지 않으며 만들어낸 이 장에는 만드는 이의 애정과 여유가 담뿍 들어 있다.
“구수하고 짭조름한 우리 장은 그냥 먹었을 때도 거부감 없이 담백하고 맛이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늘 먹는 국이나 요리에 쓰는 가장 중요한 식재료이니만큼 만드는 사람으로서 더 많이 공들이게 되죠. 처음부터 많은 양을 만들어서 판매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찾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더라도 방식은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2년가량은 잘 익도록 두어야 참맛이 드는 것이 장인데, 그 약속을 어기고 미리 독을 열어서 덜 된 맛을 보여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느리게, 하지만 참된 과정을 거쳐서 천천히 숙성도를 높이고 맛이 옹골차게 들었을 때 잘 담아서 선물을 하듯이 드리고 있어요. 좋은 재료를 쓰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일반 시중에서 취급하는 것과는 달라야 유기농 장이라는 이름에도 부끄럽지 않을 거란 생각에 재료를 구하는 데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기도 하고요. 물론 장독이 있는 터도 중요하겠죠. 화경정사에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들을 직접 재배하는 풍경과 옛 방식, 오래된 기구들을 볼 수 있어요. 저 뿐 아니라 가족들 역시 장이 익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화경정사의 장은 지난해 11월, 이미 물량의 60% 이상이 선주문된 상황이다. 완도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발효의 미학, 100여 년 된 메주콩과 씨간장
100여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은 메주콩과 씨간장(종자장)은 화경정사 전통장의 핵심. 그 깊고 구수한 향은 전국의 유기농 장 마니아들이 먼 곳에서도 마다지 않고 즐겁게 찾아오도록 하는 주된 이유이다.
“100년을 훌쩍 넘은 메주콩과 씨간장은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긴 역사가 스며있는 이 재료들을 신기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많아요. 평범한 식재료라기엔 굉장한 시간이 숨겨져 있으니까요. 장에는 위엄 있는 시간의 힘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발효음식의 면모를 갖췄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저에게 이 메주와 씨간장은 우리 선조들의 손맛과 시간이 빚어낸 예술 작품입니다. 손맛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보다 오랜 시절을 견뎌온 이 재료들이야말로 전통장의 원천이죠.”
이은홍 대표는 콩의 품종을 개량하지 않고, 옛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야말로 재배부터 유기농이다. 콩 본연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직접 재배하고 일부 계약 재배를 통해 수확한다. 개량 콩의 경우 씨알이 크기 때문에 생산량 면에서는 더 이득일 수 있으나, 이은홍 대표는 전통적인 방식을 변함없이 고집하고 있다. 씨간장 역시 빛깔부터 남다르다. 짙은 흑갈색을 띠고 달짝지근한 끝 맛은 어렴풋이 세월의 결이 느껴진다. 씨간장이 담긴 항아리 안은 긴 나날들을 지나오면서 수분이 증발해 만들어진 소금 결정체가 담겨 있다. 새 간장을 담글 때 넣어, 씨간장의 종균이 퍼져나가면서 켜켜이 쌓인 세월의 깊은 맛도 함께 퍼지게 된다. 장을 담그는데 쓰는 소금은 최상품 천일염이다. 이은홍 대표가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깨끗이 관리한 소금도 화경정사 장맛에 큰 역할을 한다.
전통 된장은 볏짚 혹은 공기 중의 곰팡이, 효모, 세균 등의 미생물에 의해 발효가 되는데 이때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바뀌면서 깊은 감칠맛을 내게 된다. 된장의 지방 성분은 대부분 불포화 지방산으로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낮고 항암 효과와 항체 생성 효과 등이 있다. 또한 전통 간장은 메주에 소금을 부어 발효, 숙성시켜 단백질을 비롯해 효모와 유산균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 개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모두의 건강한 삶을 위한 느리고 좋은 음식
이은홍 대표가 전통 방식의 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이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의 잦은 섭취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것을 유독 많이 보아왔던 이 대표는 식생활의 중요성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 왔다. 세 끼의 식사를 비롯한 모든 먹는 것에는 해로운 재료를 써서는 안 되며 속도에만 치중한 과정을 적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결론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의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 정도였죠. 다행히 대를 걸쳐 장을 담그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요리의 기본인 장을 제대로 쓰니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건강 상태는 많이 달라졌어요. 자연 그대로를 취하는 ‘유기농’의 개념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스르지 않고 흐르는 시간에 맡겨 그대로 두었다가 맛있게 먹는 것 뿐인데도 몸은 자연과 가까워져 한결 가볍고 힘이 나더군요. 특히 좋은 장류를 써서 만든 요리에는 조미료가 가질 수 없는 깊고 깔끔한 맛이 있죠. 유기농 장류를 찾는 사람들은 그 맛의 힘을 일찍이 알고 습관을 들여왔기 때문에 다른 것을 선택하기 힘들어 집니다. 많은 분들이 먹을거리에 대한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제대로 된 것을 직접 찾아가며 식생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됐어요. 요즘 들어서는 유기농 제품들에 관한 관심과 선호도가 크게 오르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장에 대한 관심 역시 이 흐름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요.”
새롭고 빠르지만 재료의 우수성이 덜하고 그 과정 역시 신뢰하기 힘든 요즘의 음식들은 실제로 현대인들의 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은 ‘먹는 일’에 큰 비중을 둘 수가 없다. 하루 세 번 혹은 두 번의 끼니를 때우는 데 그치기 때문에 몸은 허하고 영양은 불균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 심신을 다스려줄 수 있는 ‘좋은 식생활’을 꿈꾸지 못하는 요즘 사람들을 보며 이은홍 대표는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치유의 음식’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겠다는 목표는 그 때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정통 방식의 된장과 간장이 자연스레 그 시작이 됐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심신이 필요하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밝은 기운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의 이 대표와 화경정사 이은홍 전통식품을 있게 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만드는 일이 몸에 밴 이은홍 대표의 ‘좋은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재료에서 만들어 진다’는 신념은 화경정사 장이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비결이다.
“그동안 저희 가족의 건강을 지켜온 된장과 간장을 이제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유기농으로 만든 맛깔스러운 장, 그리고 그 장을 토대로 차린 한 상이 보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온라인 등의 유통 채널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많은 주문량을 소화하는 것이 꽤 번거롭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은홍 대표는 매번 장의 재료를 준비하는 첫 걸음부터 정성스레 퍼 담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과정을 오래 전의 방식과 옛 선조들의 속도 그대로 차분하고 정갈하게 지켜가고 있다. 땅을 닮은 온화한 집, 화경정사 앞마당에 가지런히 줄지은 장독들은 오늘도 조용히 숨쉬며 깊고 오묘한 맛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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