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1:55 (토)
 실시간뉴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관계, '부부’라는 이름의 신뢰와 인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관계, '부부’라는 이름의 신뢰와 인내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3.07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환의 미국 거꾸로 보기

미국은 이혼율이 50%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한국도 황혼 이혼과 젊은 부부의 결별이 급증세여서 그 패턴이 미국을 뒤쫓고 있다.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결혼생활의 지속이나 유지가 행복의 바로미터는 아니다.
더구나 행복의 보증수표도 아니다. 그렇지만 행복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결혼은 여전히 의미 있는 사회적 제도다. 불혹의 나이 끝물에 주례를 부탁받고 당황했다. 결혼생활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내가 감히….  그러나 틀에 박힌 시각을 깨는 주례사를 원한다기에 무모하지만 도전했다. 

글 박영환(KBS앵커 LA특파원) | 사진 매거진플러스

#1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 낡은 생각부터 버려야
비익조(比翼鳥)라는 새를 아십니까.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못하면 결코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 결혼한 부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는 걸 빼면 모든 게 다른 두 짝이 서로 만나 가정이라는 완성품을 만들고 윈-윈 해야 하는 사이가 바로 부부죠. 19년 전 이맘 때 제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 교수님은 비익조를 거론하며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건 아니었습니다. 저 혼자도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의 나가 서로 다른데 부부라는 이유로 어찌 일심동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젊은 부부에게 ‘일심동체’라는 낡은 생각부터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2 복잡다단한 세상, 부부 간 ‘차이’와 ‘다름’이 경쟁력
요즘은 ‘변수’가 하도 많고 ‘변수’가 ‘상수’로 변하는 세상이어서 ‘복잡계이론’이 먹힙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는 부부 간에 성격과 가치관이 다른 게 오히려 창조적인 가정을 꾸려 가는데 약이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을 자신의 새장 안에 가두려고 하지 말고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튼튼한 날개를 기꺼이 달아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에리히 프롬도 “사랑은 ‘지배’가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만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말고 나만을 쳐다보라고 억지 부리면 안 됩니다. 정신적 자유를 맘껏 허락하고 격려하는 사이여야 합니다. 날개를 하나만 가진 새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아니 설 수 조차 없습니다. 한우물만 파고들던 학문에서도 ‘통섭’이 화두이고 과학기술은 ‘융합’, 음식과 한복은 물론 문학작품도 ‘퓨전’이 대세입니다. 소통이 화두인 시대에는 전통적인 부부관도 진화해야 합니다.

#3 이성보다 감성이 통하는 부부라야 롱런한다
요즘은 SNS, 즉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덕분에 24시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카카오톡에서 친구로 만나 보세요. 감성의 눈으로 상대의 마음과 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감성이 통하는 부부라야 오래가고 롱런합니다. 이성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거래이거나 싸움을 준비하는 자세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부부가 가끔 서점에 들러 같은 책을 사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번 달은 남편, 다음 달은 부인이 골라준 책을 열심히 읽어 보십시오. 자신이 몰랐던 상대의 관심 분야를 읽다 보면 점차 상대의 내면세계를 깨닫게 됩니다. 그게 바로 소통입니다.
세상사는 배우고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만큼 깊게 공감하고 느끼는 법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상대의 가치를 읽어내고 내가 먼저 생각을 열고 다가서면 다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결혼 부부의 ‘법적 관계망’을 넘어서서 감성을 중시하는 이성의 친구로 지내면 평생을 연애하는 기분으로 가슴 떨리게 살아갈 것입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의 영혼까지 얻어야 합니다.

#4 솔직하고 격렬한 부부 싸움, 문제 해결의 시작
나라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부부도 갈등이 생겨 싸우는 일이 자주 생길 겁니다. 저는 싸울 일이 생기면 굳이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격렬하게 임하라고 권합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마음의 문을 닫고 외면하고 피하면서 대충 넘어가면 그게 곪아 터져서 진짜 화근이 됩니다. 바위와 달걀이 부딪치면 달걀이 먼저 깨지듯 약한 쪽이 먼저 부서지게 될 것입니다. 아픔이 크겠지만 그게 바로 문제 해결의 첫 단추입니다. 피를 나눈 부모자식도 원수로 여겨지는 질풍노도의 순간이 많은데 100% 다른 유전자를 가진 남녀가 순풍만 타고 항해를 한다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툼과 싸움이 격렬할수록 부부가 간직해야 할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참고 또 참는 것, 바로 ‘인내’입니다.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죠. ‘인내는 쓸지만 열매는 달다’는 격언도 있는데 저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5 전쟁 같은 결혼생활, 마지막 버팀줄은 ‘인내’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 시절에 저는 불성실한 남편의 본보기였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1주일 만에 처음 봤고 둘째 아이는 유럽 출장 중 태어났죠. 새벽에 출근해 새벽 한두 시에 귀가하곤 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쯤 되던 어느 날. 아내가 결혼 3년 만에 이혼을 고민 중인 친구와 통화하는 걸 듣게 됐습니다. 아내는 친구에게 나지막하게 물었죠. “너 몇 년 같이 살았니? 앞으로 7년만 더 살아보고 결정하면 안 되겠니?” 저는 많은 반성을 했고 그 순간부터 가정친화적인 남편으로 돌변했습니다. 혹시 황혼이혼 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절박함도 작동했지만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살아온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가정은 부부가 함께 끌어가는 수레인데 저는 무위도식하면서 힘이 약한 아내에게 무거운 짐으로 얹혀서 살아온 것이죠. 이 순간까지 부부의 인연을 지속할 수 있었고 부끄럽게 주례까지 맡게 된 건 전적으로 아내의 ‘인내심’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PS : 국내에서 <아내가 결혼했다>는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조사 결과 미국인 10명 중 4명은 결혼을 필요 없는 제도로 규정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런 고전적 주례사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