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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과잉에서 벗어나 지금을 충만하게 살자”
“인간관계의 과잉에서 벗어나 지금을 충만하게 살자”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3.07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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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환의 미국 거꾸로 보기

새해에는 인간관계의 과잉 욕구에서 한번 벗어나 보자. 진심의 영혼이 담긴 사이라면 단 한 명이라도 그 무게가 능히 지구를 능가할 것이고, 이해관계의 목적을 두고 맺은 사이라면 수 천 수만이라도 한 톨 모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박영환(KBS앵커 LA특파원)

#1 마른 여름날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증발하는 세월
미국 서부에 와서 두 번째 새해를 맞았다. 18개월이 달력 한 장씩 넘기듯 눈 깜짝할 사이 증발해 버렸다. 메마른 여름날 거북 등같이 갈라진 땅에 구르는 소나기처럼 내가 지나온 세월은 흔적조차 없다. 세월은 나이가 들수록 가속이 붙는다. 어느덧 40대 불혹(不惑)을 관통해 50대 지천명(知天命)의 초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탱탱하고 윤기가 흘렀던 얼굴은 처진 주름이 대세이고 유연했던 몸놀림도 이제는 예열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신세계가 명철하게 숙성되지도 않았다. 공자는 그 나이에 미혹되지 않고 하늘의 뜻을 이해했다는데 나는 번민하고 후회하는 날들이 많다. 병자호란의 모진 겨울 내내 남한산성에서 명분과 실리를 놓고 충돌했던 김상헌과 최명길이 늘 내안에 웅크리고 있다. 내면의 성찰과 반성이 마음의 줄기를 곧게, 굳건히 세우는 특효약이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공자와 맹자 같은 성현이 아닐진대 굳이 마음을 쓸 일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버릇까지 생겨났다. 그래도 새해가 좋긴 좋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더라도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삶의 원칙을 새롭게 세우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2  가장 소중한 ‘금’은 황‘금’과 소‘금’이 아니라 지‘금’(NOW)이다.
인간 세상에는 세 가지 ‘금’이 있다. 첫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하는 황‘금’이다. 저마다 탐내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둘째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소‘금’이다. 나비가 화려한 날개를 맨 땅에다 내려놓고 사슴이 혓바닥으로 흙을 핥아 먹는 것도 소금 섭취를 위한 것이다. 셋째는 지‘금’(NOW)이라는 금이다. 황금과 소금처럼 권력으로 빼앗거나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되고, 거지나 황제를 나누지 않고 공평하게 주어진다. 더구나 공짜다. 공기처럼 거저 주어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을 금으로 여기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지‘금’이 넘쳐나지만 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바보들이 많다. 얼마 전 밤길에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경험하면서 더 절실하게 깨달은 대목이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운이 나빴다면 아찔할 수도 있었다. 세상과의 접점이 소멸되는 삶의 끝은 누구에게도 예고가 없다. 인간의 의지가 들어설 틈이 없는 신의 영역이다. 오늘 하루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삶의 마지막 고개가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보면 지‘금’의가치에 눈이 확 떠질 것이다. 매 순간 다가오는 지‘금’을 무의식중에 흘려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겨 충만하게 채우는 일이야말로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해 기대수명을 늘리는 것보다 더 화급하다. 씨줄로 날줄로 인생의 길에서 인연의 끈을 맺은 사람들과 더 공감을 나누고 교감을 키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지금 당장(NOW).

#3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되,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등산과 트레킹,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심전심 통하는 얘기다. 혼자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보폭이 커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데도 자꾸 시계를 보게 되고 목적지를 정하고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둔다. 분명한 목표는 삶에 기름을 부어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삶의 공간을 너무 빽빽하게 채워 인생에서 피로감을 높인다. 여백과 상상이 없는 그림과 시가 감동을 줄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발길 가는대로 걷고 여행을 떠나 보라. 거친 사막길, 발끝이 얼어붙는 매서운 눈길, 숨차 오르는 오르막 산길이라도 발에 난로를 달고 로켓을 신은 듯 따뜻하고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날씨 같은 일상에서 시작한 대화는 상호 간 관심사를 넘어 고담준론으로 비상할 것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저마다 생각의 바닥과 천장이 서로 만나 얼굴을 부비면 마음속 만리장성이라고 하더라도 봄날 햇살에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이게 바로 소통이고 동행이다. “느리게, 천천히, 여유롭게, 한가하게 둘러보며, 만만디 걸어가다 보면 비로소 꽃이 피고 새가 웁니다”라고 표현한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교감과 공감의 동물이다.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바삐 가면 더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겠지만 그 내면의 행복은 늘 허기가 질 것이다. 특히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무엇을 더 말하랴.

#4  인간관계의 집착과 과잉을 먼지 털어내듯 해소하자
미국으로 오기 전 기자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받은 명함들을 정리했다. 거의 만 장이 넘는 듯했다. 박스에 가득 찬 명함을 들고 추억 여행하듯 꼼꼼히 살폈다. 개중에는 기억의 단상이 떠오르고 지금까지 인간관계가 지속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낯설었고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의아해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심지어 명함 뒷면에 펜으로 적어 놓은 기록조차 아리송했다. 촘촘한 글씨로 보아 명함을 받은 당시에 꽤 중요한 일이 있었을 법한데 곱씹어 봐도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여기 와서 받은 명함도 얼추 500장은 된다. 1년 반 전의 일이지만 기억이 전혀 가닥이 잡히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명함을 주고받았다면 식사나 차를 함께했거나 적어도 악수는 나눴을 텐데 실종된 기억은 짙은 안개처럼 막막했다. 다시 명함을 정리했다. 인간관계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화살로 가슴에 박혔다. 과거식 표현으로는 ‘인맥’이고 인터넷 시대의 용어로는 ‘네트워킹’쯤 될 인간관계도 먼지처럼 털어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인간관계의 본질적 가치는 양보다는 질에 있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관계인지가 더 중요하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지만 정승이 죽으면 조문하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주는 교훈은 통렬하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국화꽃 한 송이 들고 와서 하늘이 무너져라 속 깊게 울어 줄 친구가 세 명이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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