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1:15 (토)
 실시간뉴스
삼성전자 이영희 부사장의 ‘Write Your Story’
삼성전자 이영희 부사장의 ‘Write Your Story’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3.09 2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고가 말하는 인생

▲ 삼성전자 이영희 부사장

한국 사회에서 강조하는 평판과 관습에 의존하다 보면 자기만의 색을 잃기 쉽다. 이는 사회가 원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유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 이영희 부사장은 스스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현실의 한계를 초월한 ‘전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및 자료제공 삼성그룹

촌각을 다투는 통신기술 전쟁은 식을 줄 모른다.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기능이나 성능, 디자인 못지않게 제품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마케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삼성전자 이영희 부사장은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의 최일선에서 각종 갤럭시 시리즈를 알려온 인물이다. 남성 문화가 짙게 배어 있는 전자회사의 조직 내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 부사장은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했다. 그 결과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이 부사장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청춘들을 향한 조언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평범한 모범생에서 벗어나 일탈을 즐기던 대학생활 
 
이영희 부사장은 교육자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교육을 중요시하는 가풍에 영향을 받아 굉장히 모범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와 연극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의 소임을 다한 것은 물론,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었다. 이 부사장은 자신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지독하고 무섭게 공부했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중학교 입학고사에서 우연히 1등을 차지하고 나서 감명을 받은 저는 중·고등학교 6년을 지독하고 무섭게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1등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시간들은 자기주도적인 삶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명문대학에 입학해 누구나 꿈꾸는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자 혼돈과 방황의 시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순응해 살아왔다’면 ‘스스로 살아야’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생겨난 것이다. 당시 이 부사장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나만의 일탈’을 계획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시골 아이의 허탈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나만의 일탈을 아무도 모르게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가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죠. 고등학생 때는 모범생이었지만 대학에서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강의도 많이 빠지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했어요. 미팅이나 소개팅도 거의 안 해 봤고, 디스코텍도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빠진 적도 없었고요. 당시 그 시간들은 완전 공백,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당시 이 부사장은 새로운 패션과 스타일에 대해서만큼은 진정으로 몰입했다. 정숙하고 청순한 여대생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비범한 헤어스타일은 물론, 여름에 장갑을 끼는 등의 요상한 패션 스타일을 고수한 적도 있다. 설사 누구도 그 기행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당시 이 부사장에게 작지만 큰 일탈은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다.
“1983년도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의 정숙하고 청순한 여대생의 표방이 싫었고, 아주 아방가르드한 스타일로 헤어스타일이나 옷도 이상하게 하고 다녔죠. 그런데 그때는 조용히 남몰래 이렇게 하면서 고독을 씹었던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보니 그 시절이 인생의 자양강장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 관한 브랜드 전략서를 써 보면 인생 방향이 보인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이 부사장은 조금씩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인 취업이 큰 벽처럼 당시 이 부사장의 미래를 가로막는 듯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파격적인 도전을 감행했다. 결혼과 함께 미국 시카고로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결혼과 유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 부사장에게는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하다가 졸업할 때가 됐는데 그 당시 나름 졸업을 해서 이상적으로 취직한다는 게 외국계 은행이나 호텔 매니저나 기업의 홍보팀, 비서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뼛속부터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막연하게 스트레스에서 일탈하고자 결혼과 함께 유학을 갔습니다. 사실 결혼은 저에게는 가장 힘든 결정이었죠. 평생 떨어져 지낸 한 남자와 도란도란 같이 잘 산다는 건 매우 큰 도전이니까요. 결혼생활도 힘들었고 막연히 온 유학을 통해 특별히 의지를 불태워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죠. 아마 그때부터 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브랜드 전략 공부를 하면서 이 부사장은 스스로에 관한 브랜드 전략서를 작성하게 됐다. 이를 통해 전략서의 기초를 쌓게 되는 것은 물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해 차별화 전략까지 세울 수 있었다. 이는 어떤 철학과 미션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브랜드 전략서에 제 이름 석 자를 넣고 끄적끄적 작성하면서 결국 저에 대한 브랜드 전략서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매달, 매주, 매일 필요할 때마다 업데이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었죠. 저는 건강하고 능력 있고 당당하고 솔직하고 화려하면서 남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미지이고 싶었어요. 이 과정을 통해 추진력과 담대함,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좋다는 점을 파악했고, 이 장점을 통해 마케팅 분야가 저와 어울린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죠. 그렇게 그 분야에 대한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했고 제 인생 2막이 시작되었어요.”
이 부사장은 유니레버와 로레알이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며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켜 나간 인물이다. 당시 다국적 기업의 조직에서도 엄연히 존재했던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오로지 실력과 성과로 극복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활용해 조직 내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도전 과제들을 하나둘씩 해결해 나간 것이다.
“저는 그야말로 성과만이 나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남들이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잘할 수 있는 일, 미칠 수 있는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어서 저만의 커리어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만 다국적 기업에도 도전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상사와 동료들과 ‘어떻게 문화적인 것을 극복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죠. 저는 그 속에서 통합과 성취하는 정신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 것을 잊지 말자

2007년 10월, 당시 화장품밖에 몰랐던 이 부사장은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로 이직을 결심했다. 화장품 마케터로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이는 가슴 깊숙이 꿈틀대는 도전이라는 열망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물론 처음 접해 보는 분야에 대해 부단한 공부가 필요했지만 한 가지 원칙만은 고수했다. 바로 ‘나만의 스타일’을 잃지 말자는 것. 그러한 마음가짐은 일부러 돋보이려 하지 않아도 조직 내에서 ‘이영희 스타일’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저는 두려움을 피하고 안정적으로도 살 수 있었지만 그러한 90%의 생각을 밀어낸 10%의 생각이 말을 하더라고요. ‘여기서 끝내면 무슨 재미니, 도전을 통해 선입견을 깨 보자’고 말이죠. 그래서 삼성전자에 들어와서는 열심히 기술을 공부하고 저만의 스타일로 나아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세요. 무시무시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요. 사실 저는 적응 안 했어요. 저만의 스타일, 저의 강점에 어떻게 열정을 입혀서 회사가, 그리고 제가 일하는 모든 영역에 기여하고 강해질 수 있을지를 고민했죠. 남들 눈치나 프로토콜(통신 규약)대로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하자는 신념을 바탕으로 저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 것뿐이에요.”
그럼에도 이 부사장은 자신이 처한 비즈니스 환경이 경쟁적이고 각박하다고 언급했다. 더욱이 여성의 몸으로 소화하기 힘든 빡빡한 해외 출장 일정에도 “일을 즐기다 보니 즐겁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에게 넘치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만큼 체력적인 한계보다 중요한 것이 ‘인생에서 내가 주인이 되고 있느냐’였다고 한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의 최전선에서 이미 많은 것을 이뤄낸 이 부사장의 도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듯했다.
“많은 분들이 갈 데까지 갔는데 또 다른 도전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저는 마케터로서 저의 팀과 부하들이 1등 마케팅 회사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 눈에 연연해하며 살았다면 지금의 모습을 지닐 수 있었을까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모토처럼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나의 미래이고, 바로 나인 것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통신기술 전쟁은 식을 줄 모른다.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기능이나 성능, 디자인 못지않게 제품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마케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삼성전자 이영희 부사장은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의 최일선에서 각종 갤럭시 시리즈를 알려온 인물이다. 남성 문화가 짙게 배어 있는 전자회사의 조직 내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 부사장은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했다. 그 결과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이 부사장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청춘들을 향한 조언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영희 부사장이 청춘에게 고하는 세 가지 메시지

1. 철저한 자기 고민을 통해 인생의 목표를 정하라
먼저 자신을 분석해 봐야 한다. 장점과 단점, 그리고 나만의 차별화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자. 또 이것들이 다 되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 바로 그 다음 단계는 선택의 과정이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교집합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한다거나,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은 경쟁력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마지막으로 선택 후 집중하는 단계다. 한 가지 일을 선택했다면 후회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의미다.

2. 결정한 대로 철저히 실행하라
노력하는 행동가가 되어야 한다.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해야 하며 목표를 세우고 매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것을 지겹다고 느끼기보다 즐긴다면 그러한 삶의 방식이 습관화될 수 있다.

3. 끊임없이 보완하고 발전시켜 미래를 설계하라
나만의 전략서는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항상 갱신하고 보강해야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발전시키며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의 인생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관조적인 태도로 현재 삶의 방식을 평가해 보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