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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의 편지 교육법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의 편지 교육법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3.13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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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수학자의 따스한 눈높이 조언

 

수학자로서 순수 학문을 연구해 온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는 자녀를 가르치기보다 자녀와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두 아들을 키워 왔다. 세계적인 석학이지만 자녀교육법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꾸밈이 없다. 수학을 대하는 순수한 열정만큼이나 말이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참고서적 아빠의 수학여행(은행나무)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픈 아빠의 마음

“오신에게. 아빠는 오늘 막 영국에 도착했다. 네가 얼마나 보고 싶던지 이렇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사실은 앞으로도 보고 싶은 마음을 참기 힘들 때마다, 아빠 가슴속의 작은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을 때마다 네게 편지를 쓸 생각이다.”
이는 김민형 교수가 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시작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그는 가족들과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에서 살 당시, 유럽으로 연구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두 달간의 여행이었지만, 두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커질 때면 그는 어김없이 편지를 썼다.
“두 달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아들에게 보낸 209통의 편지를 모아서 낸 책이 <아빠의 수학여행>이에요.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보통 수학자들이 연구 여행을 많이 떠나는데 저 역시도 그런 차원의 여정이었죠.”
그가 아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아버지인 이화여대 김우창 석좌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 유학시절 그 역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편지와 아버지가 된 그가 보낸 편지에는 공통적으로 애틋한 부정(父情)이 스며들 수밖에 없었을 터. 그는 동그란 안경 너머로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대로 이어지게 된 편지의 의미를 설명했다.
“제가 처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아버지께서 저에게 편지를 많이 쓰셨어요.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편지를 쓰는 게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편지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저는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고, 제 아이들은 어렸으니까요. 아버지는 저에게 공부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나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학문적인 조언을 해주셨다면, 저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이고 정서적인 이야기를 편지로 썼던 것 같습니다.”
편지에는 수학에 관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철학과 역사, 문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는 수학자이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다른 분야의 지적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수학 외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은 세상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수학을 세상과 단절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수학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쓰려고 하기보다 세상에 대해 쓰려고 하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분야는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인위적으로 나눈 것일 뿐, 사는 것은 분야별로 나눠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세상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기러기 부모들에게 편지 쓰기를 권고하는 이유

자녀 유학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산가족들이 적지 않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놓인 부모들에게 편지 쓰기를 권하기 위해 자신의 편지를 책으로 만드는데 동의했다. 자신이 직접 아들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경험을 다른 부모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이 편지들을 쓸 당시와 비슷한 사정에 처해 있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당시 편지를 쓰면서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담아 권고 혹은 조교의 시범 정도로 생각하고 책 출간을 고려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와 자녀가 떨어져 사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좋은 결정이든 어려운 결정이든 간에 그 시간 가운데 자녀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편지 쓰기를 권고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두 아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 그가 그 효과를 몸소 증명하고 있지만 섣부른 해석은 경계했다. 교육 효과의 측정보다 중요한 것이 스스로 탐구함으로써 깨닫는 사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매일 공부한다는 그는 “편지도 대화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세상에 재밌는 것이 있으면 일러줄 뿐 특정 분야를 공부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두 아들이 물리학과 경제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제가 특정한 분야를 공부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세상에 재밌는 것이 있으면 일러줘요. 워낙 인터넷 정보가 많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뉴스나 재밌는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추천해 주는 수준이죠. 사실 저는 일생 동안 학생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수학도 잘 파악 못해서 계속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같이 공부하자는 권고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은 학생으로서 말이죠.”
그의 교육법은 그의 일상과도 닮아 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상적인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다 보면, 어느새 부모의 습관을 따르는 자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제 경험상 비춰 보면 대부분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몰라요.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스스로 질문을 하면 어느새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 버려요.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깊이 질문해 보면 당장 모르는 것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니까요. 질문들을 쫓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답을 찾아가는 마당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목표보다 일상의 즐거움도 중요

그가 한국에 오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수학 공부를 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수학 공부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요즘 젊은 학생들이 다 수학을 잘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수학자인 그가 봐도 한국 학생들의 수학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다 수학을 잘해요. 대학원생 중에 한 명이 자신이 연구하는 것을 저에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저 같으면 그 나이에 그러한 시도를 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 거예요.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설명도 잘하고 연구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문을 대하는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는 지양해야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큰 목표를 삼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쫓다 가끔 한 번씩 더 큰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해도 자기 발전이 늦어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어떤 난관에 봉착해 그 상황에 몰입하다 보면 해법을 찾지 못할 수 있지만, 잠시 잊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그 문제를 떠올려 보면 어느새 자기 안에 해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 우리 학생들이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굉장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느낌을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마음가짐이 좋은 면도 있지만, 분명 스스로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매일 항상 심각하게 의미 있는 일 혹은 크게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고 의식해서 산다면 아마 정신병자가 될 거예요. 그런 질문을 자꾸 하다 보면 진도는 나가지 않고 스트레스만 받기 십상이죠. 그래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면 피상적인 삶이 되기 쉬우니 의미 있고 중요한 질문은 1년에 한 번 정도만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가끔 한 번씩 더 큰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하면 그 사이 자기도 모르게 진도가 나가 있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특히 그는 수학 분야의 평생 교육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실제로 그는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수학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수학콘서트 카오스(K.A.O.S)를 개최하고 있다. 콘서트라는 단어가 붙은 것처럼 일반 강의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장이다. 그 과정에서 나와 다른 인생을 배우고, 근본적으로 과거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수학에 접근하는 재밌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다는 게 수학콘서트의 취지다.
“수학콘서트를 통해 의학자나 작곡가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초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많은 관객들이 수학 교육이나 중·고등 교육과정에 관한 질문을 주로 하시는데 사실 제가 보면 중·고등학교 교육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성인 교육에 관심이 적은 게 문제예요. 나이가 들어서도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던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죠. 만약 인생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나서 수학을 접했다면 재밌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두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은데, 하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못했다는 사람도 알고 보면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에요. 우리나라는 평균적으로 수학 수준이 높으니까요.”
그의 바람은 수학 콘서트의 방향성과 방법론을 고민한 이후 대중과 수학 사이의 벽을 점차 낮추는 것이다. “모든 세상일을 들여다보면 수학적인 개념이 들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미 우리는 매일 수학을 접하고 수학을 깨우치는 과정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수학의 평생 교육이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세상에 대해 쓰려고 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이 편지에 담겼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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