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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우울증, 그 근원과 위로
봄날의 우울증, 그 근원과 위로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3.25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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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는데, 길었던 추위가 가고 봄이 와도 가라앉아 떠오를 줄 모르는 우울한 나날들은 어찌하면 좋을까. 갱년기 같은 말로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3월의 우울증.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와 함께 중년의 자존감 상실 원인과 행복한 감정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진행 이윤지 기자 | 사진 매거진플러스 | 도움말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56세 주부 박모 씨의 봄
"봄이 오는 게 느껴지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종일 가라앉은 기분으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입니다. 계절을 타는 건지… 헛헛하고 매일 이렇게 집에 축 늘어져 있는 제 자신을 보면 누가 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죄짓는 기분, 부끄러운 기분 때문에 불안하기까지 해요. 가족이 모이는 시간에는 기분이 더 나빠집니다. 남편이나 애들하고 말을 섞기도 싫고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 것 같아 분해서 자리를 피하게 돼요. 이런 감정이 계속될수록 주체하기가 힘들고 진정시킬 방법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까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기
우울증, 강박증에 시달리는 많은 중년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서툴다. 물론 어머니, 아내라는 숙명으로부터 자유를 뺏기고 오랜 희생을 해 왔지만, 특히 현재의 암담함을 모두 남편이나 자식 탓, 부족한 재정 상황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다. 감정의 원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방법은 없을까. 박모 씨의 상황에 대해 김병수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내면은 강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진짜 문제, 내면의 결핍, 자신의 민낯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맨 얼굴’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진짜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힘들고 아픈 과정입니다. 보통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를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심리적 결핍은 무엇이고 자기를 아프게 만드는 콤플렉스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등등은 상담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짐작하고 있거나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자기 문제를 남들이 가르쳐 주기 전에 몰라서 못 고치는 것일까? 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약점들을 그냥 안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당장 힘든 세상에 적응해야 하고, 눈앞에 해결해야 할 일들도 많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당장의 현실에 충실하기 위해서 애써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한쪽으로 어쩔 수 없이 미루어 둘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예를 들어 겁이 많고, 쉽게 걱정하는 성격을 가진 40대 여성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런 경우 어느 정도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많이 걱정하고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압니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고치지 못 합니다. 이런 성향은 40년 이상 자기의 몸과 마음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습관을 갖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걱정을 많이 하는 성향은 나름의 장점이기도 하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이런 성향은 미리 계획을 세우게 만들고, 조심조심 살아가게 해서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걱정과 불안의 이면에는 이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힘들어도 걱정을 쉽게 떨쳐 버리기란 쉽지 않아요. 못나고, 상처 입고, 약해 빠진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세요. 무리하게 생각과 행동, 성격을 바꾸려고 덤벼들기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어차피 완전한 인간, 완벽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벽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질책하지 말고, 약점이 있지만 자기를 사랑해주는 것. 우리에게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유 없는 우울과 허망감이 찾아올 때
각박한 생활환경, 잘못 설정된 자식 또는 남편과의 관계 등 분명한 원인으로 힘들어 하는 여성들도 많지만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 한 채 속수무책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하루 종일 눈물만 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든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마음은 고통스럽기만 할 때,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우울하다, 허무하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 하기 때문인데요. 지금껏 열심히 살았는데도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없어요. 우선,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남편 뒷바라지는 그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고, 내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대신 ‘내가 노력한 덕분에 남편이 사회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자기 노력에 대해서 스스로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해 보는 겁니다.”
물론 남편이나 가족이, 아내와 엄마에게 “당신이 있어서, 지금 내가 있을 수 있었어.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실천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의 삶에만 충실했다면, 중년이 되거나 늙어 가면서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하는 허무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갱년기 같은 변화의 시기가 찾아오면 ‘인생 다 끝났다, 나는 이제 여자로서 끝이다’라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인생이 찾아 왔다. 남편, 자식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고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남편과 자식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를 규정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정체성과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야만 해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야 살아가는 힘이 생깁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부 교수. 현재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정신건강증진, 스트레스, 우울증 분야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 및 학술위원,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이사,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정회원, 뇌건강증진연구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외 다수 공저, 옮긴 책으로는 <당신 안의 예술가를 깨워라>, <우울증의 행동활성화 치료> 등이 있다. 최근 마음이 아픈 ‘사모님’들을 위한 심리 처방서 <사모님 우울증>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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