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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과의 남산 트레킹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과의 남산 트레킹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3.27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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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민선 5기 1년이 지났다. 극심한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첫 여성 부시장이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달고 업무를 시작한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 잠들 때까지 하루 평균 8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냉온의 소통법으로 갈등을 처리해왔다. 이따금씩 이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조 부시장과 남산 길을 오르며 지난 1년간의 생활을 들었다.

취재·이시종 기자 | 사진·양우영 기자


며칠 동안 서울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이런 일기에 야외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과의 만남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이와 만나기로 한 날,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바쁜 일정에 어렵게 시간을 쪼개서 마련한 자리건만, 이런 날씨라면 약속을 기약 없이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을 얼마 안 남기고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다. 그이와의 기분 좋은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사상 초유 여소야대 국면에서 첫 여성 부시장으로 1년

이번 산행은 서울 도심의 남산을 트레킹코스로 택했다. 서울 시내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남산의 오붓한 정취도 느끼고 싶어서였다. 물론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이의 일정을 배려한 것도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모습을 보인 그이는 딱딱한 정장 대신 편안한 차림이었다.
"예전에는 등산을 좋아해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무릎이 아파 요즘에는 등산보다 트레킹을 해요. 오랜만에 남산에 오니 숨이 탁 트이는 것 같네요."
웃는 인상이 너무도 포근해 보여, 서울시의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을 뻔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그이를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행정가, 진정성과 소통으로 막힌 곳을 뚫는 갈등 조정자.' 이것이 그이에 대한 서울시 안팎의 평가다. 지난해 6월 말 오세훈 서울시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에서 정무부시장으로 승진한 그는 취임 이후 소통과 배려의 여성 행정가로, 다른 한편으론 부당한 포퓰리즘에 맞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의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처음에는 제 자리가 아니라고 고사했어요.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정무부시장의 자리가 얼마나 고된 자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웃음). 여성가족정책관으로 일할 때는 참 행복했어요. 행정일은 자기 책임하에 예산이 측정되고, 정책이 집행되면서 뭔가 형체가 있어요. 그런데 정무일은 형체도 없을 뿐더러, 모든 갈등의 정점에서 조율을 해야 해요. '일이 잘 되면 다른 사람 덕이요, 못 되면 정무부시장 탓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자리죠."
고생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이가 정무부시장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첫 여성 부시장이라는 책임감과, 오세훈 시장이 자신에게 보여준 신뢰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울시 첫 여성 정무부시장으로 보낸 1년은 그이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1년 동안 인생을 참 많이 배운 기분이에요. 특히 '소통'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 기간이었어요. 예전에는 소통이란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에게 무조건 양보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양보를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 같은 것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래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첫 6개월 동안은 소통의 방법을 모색하는 기간이었고, 다음 6개월은 진통의 기간이었어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새로운 소통의 질서를 깨닫게 된 거죠."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시의회라는 상황에서 첫 여성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된 순간, 어쩌면 그이의 고생길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정무부시장 직을 맡고 첫 6개월은 한마디로 '전쟁'에 가까웠다. 지난해 12월 1일 서울시의회가 초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겠다는 조례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정협의회 전면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무상급식 서울시 광고가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검찰 소환까지 받았다.
"정무부시장 되고 제일 많이 들은 인사가 '하필 이 시기에 맡아서 고생이 많겠다'는 것이었어요. 민선 5기의 업무 파트너인 시의원의 3/4, 구청장의 4/5가 민주당 출신이고, 교육감은 진보 성향이잖아요. 취임하고 인사차 시의회 갔다가 고함만 치는 통에 인사도 못할 정도였어요."
갈등과 대립은 계속됐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조례안 통과에 반발해 시의회 출석을 거부하자 시의원들은 오 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그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소통은 일방적으로 저쪽 입장을 들어주고 양보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다수가 저렇게 나올 때는 우리도 한 칼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힘의 균형이 이뤄지는 거다'라고 결심했어요. 협상의 최전선에 서 있었기에 누구한테 미룰 수도 없었고 저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요. 잠을 줄이고 사적인 인간관계는 일단 모두 접었죠. 가족에게는 '아내와 엄마는 잠시 잊으라'고 했죠(웃음)."
고된 시간을 잘 견뎌왔기에 이제는 시의원들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가 됐다. 그이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하게 됐고, 갈등 구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자긍심이 있다"고 말했다.

든든한 후원자 남편, 애틋함이 사무치는 아들

안개 낀 남산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이슬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오히려 걷기에는 더욱 좋았다. 잠깐 난간에 서서 그이와 함께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녹음 짙으며 정적인 이곳과 달리, 서울 시내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틈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기자와 또 그곳의 행정을 도맡고 있는 정무부시장이 한적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는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이는 “사람들 말로는 내가 웃으면서 할 말을 다하는데 밉지가 않다고 한다”며 “그래서 말하기 어려운 것은 나한테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문득 가정에서의 그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남편에게 미안한 부분은 없는지 물었다.
“남편이 판사로 일하다 몇 년 전 기업으로 갔어요. 요즘은 본인이 더 바빠서 주말에 절 혼자두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일할 때는 그저 믿고 지켜봐주는 것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정무부시장 자리에 용기를 낸 것도 남편 덕분이에요. 전 고민하는데 남편은 단번에 하라면서 격려해 줬어요. 든든한 후원자 같은 사람이에요.”
그이는 남편과 아들을 하나 뒀다. 아들 이야기에 그이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번진다. 요즘 유일한 낙이 있다면 아들과의 잠시 데이트하는 것이란다. 얼마 전에 아들과 단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이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다.
“아들과 단 둘이 한 워터파크에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아들이 애인 같고 친구 같아요. 제 소원 중 하나가 남자가 안아서 침대에 데려가는 것이었는데, 아들이 해주더라고요(웃음). 정무부시장 자리에서 내려오면 아들과 함께 공부하러 도서관에 다닐 생각이에요.”
사실 지금처럼 아들과의 사이를 회복하는 데는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그는 15년간 잃었던 아들을 최근에야 다시 찾게 됐다고 말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항상 전화를 해서 ‘빨리 와’라고 보채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는 그게 아들이 얼마나 저를 필요로 하는 절규였는지 알지 못했어요. 철없는 엄마였죠. 그러다 어느 순간 전화도 안 하더라고요. 방문 걸어 잠그고 인터넷에 빠진 거예요. 그때 <우먼타임즈> 편집국장이었는데, 일도 다 그만두고 4~5년간 전업주부로만 지내며 아들을 대학에 보냈어요. 지금도 항상 아들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주인공이 되려 하지 말고, 사람이 지닌 여러 좋은 점을 잘 엮어서 상생하는 2등이 되고 싶다”

그이는 <영남일보> 기자와 <경향신문>의 <뉴스메이커> 기자, <우먼타임스>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NGO 단체인 양성평등실현연합 공동대표와 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내다 지금의 서울시 공무원까지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열혈 ‘커리어 우먼’이지만, 그이 역시 일하는 여성으로 살기 위해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이는 어떻게 아픔들을 극복해갔을까.
“정무부시장이 됐을 때 주변에서 ‘술 못 마시는 여자가 어떻게 정무 일을 해?’라는 반응이 있었어요. 제가 극복해야 할 일반적인 통념 중 하나였죠. 그런 통념을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넘으려고 했어요.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빨리 읽는다던가, 주변과 협력하고 같이 일하는 장점 같은 것이었죠. 정무라는 것이 남성의 영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모르지만 제 노력이 ‘여성은 정무직에 맞지 않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겪어낸 아픔이 있었기에 그이는 여성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높다. 어쩌면 그이가 서울시의 역점 사업인 ‘여행(女幸,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와 ‘서울형 어린이집’ 등을 이끌고 안착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이는 이런 여성친화적 프로젝트 성공에 대해 "나의 자긍심"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 시절, 정말 행복하게 일했어요. 주부로서, 엄마로서, 또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으로서 느껴왔던 제도적·사회적 모순을 바로잡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죠. 그래서 일이 많아도 전혀 힘든 줄 모르고 일했어요."
오 시장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여행프로젝트는 여성이 행복한 정책을 만든다는 목적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이는 여성가족정책관 시절 여행 프로젝트 일환으로 화장실, 주차장, 길, 공원 등에 여성 친화시설을 확충했다. 여성을 배려하는 정책이 서울시정에 반영되도록 여행동반자, 여행프로슈머, 여성포럼 등 시민 거버넌스도 구축했다. 여행프로젝트는 지난해 UN 공공행정상 대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섬세한 리더십으로 '여성 리더'가 되다

 
그이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단단했다. 그이를 잘 모르는 사람 중에는 그이가 그저 복이 많아 일이 잘 풀려 지금까지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저는 산전수전 다 겪은 편이에요. 주류가 아닌 비주류, 주변부가 제 자리였죠. 남자들 세계에서 여자대학 출신으로, 언론계에서 지방지 기자로, 중앙언론사에서는 주간지 기자로, 교육문제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으로 살아야 했어요. 암흑 같은 좌절도 겪었지만 그때마다 늘 일어섰어요. 그래도 한 가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뚝이 정신'이에요. 나의 존재 가치를 보이기 위해 남들이 안 하는 뭔가를 더 해내야만 했죠."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럽게 복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던 것. 그이는 "모든 절망은 자기가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느냐, 핸디캡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이는 여성리더의 강점으로 '소통 능력'을 꼽으며 '2등 정신'을 강조했다.
"1년 동안 좌우명이 생겼어요. '함께 나누면 멀리 간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2등이 되자'는 거죠. 내가 주인공이 되려면, 내가 다 해결하려면, 자기가 있으면 1등을 할 것이라는 자아가 있으면 정무가 안 되죠. 2등이 되면서 상생해야 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주인공이 되려 하지 말고 사람이 지닌 여러 좋은 점을 잘 엮어서 상생하는 게 2등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그 네트워크 속에서 허브가 되는 것이죠. 남성, 여성을 떠나서 이것이 '여성적 리더십'이라고 생각해요."
이 때문이었을까. 그이는 함께 걸으면서도 한 번도 기자 앞에 서서 간 적이 없었다. 조금은 느린 속도로 살짝 뒤에 걸었다. 그이와 인터뷰를 마치면서 혹시 정치에 입문할 생각은 없는지 슬쩍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 어렵다는 것을 이 일을 하면서 새삼 느꼈어요. 정치는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무부시장 임기가 끝나면 정말 좀 쉬고 싶어요. 마침 제대한 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네요. 아들이 같이 도서관 가준다고 했으니까, 같이 공부 좀 하려고요. 찜질방도 정말 좋아하는데, 찜질방에서 수다 떠는 아줌마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웃음)."
남산길을 내려오며 도심에서 숨통 역할을 하는 남산처럼 그이가 서울시와 시의회 간의 소통의 허브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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