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EBS 방송만으로 서울대 합격한 이대보의 절치부심 공부법
EBS 방송만으로 서울대 합격한 이대보의 절치부심 공부법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4.11 2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게임 중독으로 꼴찌 맴돌다 2년 만에 전교 1등까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안 해본 게임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게임 중독에 빠졌던 가난한 열등생. 자신과 가족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가는 세상을 외면하며 살다 결국에는 책과 연필로 현실과 맞서기로 결심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 후, 그 흔한 학원이나 과외 한번 받아본 적 없이 서울대에 단번 합격했다. 작고 왜소한 체구지만 예의바르면서도 야무지고 예리한 서울대 종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대보(21) 씨가 그 주인공이다.

취재 서효정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게임중독 대보 서울대 가다’(서울문화사) 제공

매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 합격자 발표가 나고 나면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합격수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외나 학원을 단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연 역시 알려진 것만큼 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2010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한 이대보라는 학생이 서울대 합격 에세이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와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편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는 너무도 진솔함 그 자체였다. 순박하면서도 수줍은 표정에서 뜨거운 열정이 어린 눈빛과 구수한 사투리 속에 드러나는 야무지고 올바른 사고까지, 이 청년의 미래가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아버지와 국밥

그의 가족은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여동생 이렇게 네 명이다.
그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도박 중독에 빠져 가족을 버려둔 채 집을 나갔다. 본래부터 넉넉한 환경이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수입을 대부분 도박에 탕진하는 바람에 모아둔 돈도 없는 상황. 일용직에 종사했던 아버지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어떻게든 할머니와 어린 남매를 부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제가 집안 형편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오로지 반찬이었어요. 삼겹살 같은 고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늘 같은 반찬이고 그것마저도 먹게 되면 다행이었죠.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먹게 해주지도 않고, 매일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땀냄새 폴폴 풍기며 귀가하는 아버지가 너무도 원망스럽고 피하고만 싶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때가 잘 닦였는지 확인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셨어요.”
어린 아들의 투정이 더욱 심해질 무렵, 아버지는 공사일을 접고 대출을 받아 작은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몇 천만원이라는 큰 빚만 떠안은 채 집안의 모든 물건을 압수당하는 등 가족은 다시 한 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디다 보니 어느덧 저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더라고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학교라는 곳에 가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어요. 그래서 집안 사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학식만을 손꼽아 기다렸죠.”
입학식 첫날, 자신을 뺀 모든 친구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 그는 또다시 풀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도 어머니의 손길을 자주 필요로 하는 저학년의 교육 커리큘럼 특성상 어머니가 없는 그의 학교 생활은 원활할 수 없었고, 왕따 아닌 왕따가 되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아셨던 담임선생님께서 급식 잔반을 집으로 가져가라고 싸주셨어요. 그 잔반을 받기 위해 항상 학교에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검은 비닐봉지에 먹을거리를 한 가득 담아갔죠. 할머니와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줄 수 있어서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나 친구들이 볼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어린 마음이 딛고 일어나기에는 너무도 큰일을 여러 번 겪었던 그는 그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고 점점 더 집과 학교와 멀어져갔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일하다 꽤 큰 철근에 맞아 어깨힘줄이 그대로 끊어져버리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더 이상 다친 팔을 위로 들어올릴 수도, 힘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보다 당장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팔을 다치고 난 후,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단둘이 순대국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어요.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라서 손님이 직접 순대국밥을 가지러 가야 했는데, 아버지도 팔이 아프다는 사실을 잠시 잊으셨는지 습관처럼 무거운 국밥 두 그릇이 든 쟁반을 들어올리셨어요. 그런데 순간 ‘와장창’ 쟁반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뚝배기 그릇은 산산조각이 났죠. 국밥집 주인 아주머니는 아버지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잔소리를 퍼부어댔고 아버지는 한 번만 봐달라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셨어요. 결국 우리는 새 국밥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때 먹은 국밥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국밥이 그렇게 가슴을 뜨겁게, 아프게 하는 음식인 줄 몰랐어요.”

게임 중독 금단현상 극복하며 EBS로 제대로 공부 시작하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하루 대여섯 시간은 기본으로, 이틀에 컵라면 두 개만 먹으면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적까지 있다는 그는 그야말로 게임 중독자였다.
pc방 게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단지나 우유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학교와 학업은 저만큼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던 중 국밥집에서 경험한 일이 계기가 되어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게임 금단현상에 시달렸어요.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엉덩이를 붙이는 시간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공부 연습’이 된다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일단 손이 덜덜 떨리는 현상은 교과서를 한 글자 한 글자 베끼면서 고쳐나갔고, 게임에 대한 망상을 떨쳐내기 위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연습부터 시작했어요.”
이렇게 기본적인 연습을 거듭해가며 게임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물론 수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집 안의 컴퓨터를 치우는 등 그 스스로도 엄청난 다짐을 했다. 어느 정도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자 이제는 정말 공부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하지만 학교 진도를 맞추기에 는 기초가 너무도 형편없었고, 그렇다고 과외나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때 그의 유일한 선생님이 되어준 것이 바로 EBS 방송 강의였다.
“EBS는 돈이 없어서 학원을 가지 못해도, 기초가 없어 혼자 부끄러워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그저 저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어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듣기를 할 수도 있고요.”
물론 EBS로 공부할 때도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강의가 어떤 것인지 찾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학습법을 따르다 보니 어느 순간 ‘아!’ 하고 머리를 치는 순간이 왔다.
“그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에 열중했던 때를 생각해서 공부했어요. 게임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요소들을 공부에도 그대로 접목한 거죠. 사실 많은 학생들이 ‘3년 후에 어느 대학을 가겠다’, ‘나중에 의사가 되어야겠다’ 등 먼 미래를 목표로 잡고 공부해요. 하지만 게임을 할 때 레벨을 한 번 올리기 위해서 최소 2∼3년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게임 할 맛이 안 나잖아요.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짧게짧게 계획을 세워서 공부했죠. 예를 들면 자습시간에는 국어교과서 30쪽을 읽고, 쉬는 시간에는 영어단어 열 개를 외우겠다는 식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과제를 저 자신에게 주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계획을 세우고 공부할 경우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그처럼 기초부터 다시 닦아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조바심에 사로잡혀 기본기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
“주위 친구들을 보며 가장 아쉽게 느끼는 것은 공부하다가 특정한 부분과 관련해서 이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시험에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리는 것이에요. 모든 문제는 개념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도 건너뛰지 말고 흡수하고 익히는 것이 필요해요. 무식하다고 할지라도 공부는 어차피 개념 싸움이니까요.”

개념을 탄탄히 다지다 보면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공부에 슬슬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위기는 오듯이 그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급격하게 심화되어가는 수업에 점점 평정심을 잃기도 했다. 아무래도 또래 친구들보다 시작이 늦었던 탓에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더라고요. 모르겠으면 그냥 기본개념부터 다시 공부하면 되는 거예요. 수학은 중학교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려고 하니 도저히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중학교 교과서를 펼쳐 개념을 익히고 연습 문제를 풀어보며 기본을 다졌죠.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그래도 절대로 조바심을 느끼면 안 돼요. 개념을 탄탄히 다지다 보면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는 시간이 오거든요. 그 다음부터는 훨씬 수월하게 심화단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이에 덧붙여 문제를 많이 풀어보되 이 문제는 무엇을 물어보는지, 어떤 함정을 놓았는지 늘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봐도 생각하고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영리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0년 3월 그는 결국 서울대 종교학과 10학번이 되었고, 대한민국 수재들만 모여 있다는 서울대에서 지난 학기에 4.2점(4.3점 만점)을 맞으며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저는 이제야 출발점에 섰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제가 직접 실현해야 할 꿈들이 너무 많은 걸요. 최근에 책을 읽다가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와닿았어요. 무지하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인데요. 그것을 보고 어렸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이 스치더군요. 특히 최근에는 대중무역이 늘어나면서 중국 시장에 많이 진출했는데, 현지법에 대한 무지로 사업상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법을 잘 몰라 피해 입는 이들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법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어려운 역경을 잘 이겨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꾸준히 노력만 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저를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