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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4.04.13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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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묻혀 왔습니다
 

매년 이맘때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어서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모임장소로 가는 도중에 폐교가 된 지 오래여서 교사까지 철 거된 모교에 들러 이제는 거의 유일하게 학교의 흔적으로 남은 운동장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한 번씩 쓰다 듬어보고 학교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아버지 산소에 올 라가 소주를 한잔 부어드렸습니다.

제가 스무 살에 돌아가셨으니 근 삼십 년을 여기에 누워 계신 아버지, 어머니와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었을 때 새신부와 생이별을 하고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으로 멀고도 낯선 이국 땅 사할린에서 목숨 건 탄광노동에 시달리다 오신 아버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셨어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5남매 뒷바라지에 지친 채로 돌아 가신 아버지께 이제는 어른이 된 막내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소주 한잔 부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산소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에 바닷물을 막은 제방이 보였습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아버지와 고기를 잡으러 저곳으로 가곤 했는데 하루는 제방 위에 물새들이 하얗게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는 제게 조용히 하라고 이르고 당신은 그물을 들고 제방 밑으로 새들이 있 는 곳까지 갈 테니 거기에 도달하면 손으로 신호를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물을 던져 제방 위의 새들을 잡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아버지의 동작보다 새들의 날갯짓이 더 빨라 실패하고 말았고 다소 어이없는 시도에 아버지와 저는 한참을 껄껄 웃었습니다.

아득한 시절 부자간의 여름날 한때의 추억을 기억하시냐고 물어도 아버지는 대답이 없으시고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 사이로 산새들만 포롱포롱 날아다녔습니다.

통영 연명리 앞바다 방파제에 서서 바다 바람에 얹혀오는 봄기운을 온몸에 묻히고 상경하는 버스를 타고 통영을 벗어나는데 만발한 매화꽃 나무 한 그루를 뿌리째 싣고 가는 트럭을 보았습니다.

바야흐로 봄은 통영 개별화물 트럭에 실려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습니다.

글·사진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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