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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종가의 자부심, 도텐펠더 호프(Dottenfelder Hof)
유기농 종가의 자부심, 도텐펠더 호프(Dottenfelder Hof)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4.15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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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유기농에서 | 배운다
▲ 사진1

유기농 종가의 자부심, 도텐펠더 호프(Dottenfelder Hof)

글·사진 | 이민호(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독일 도텐펠더 호프는 유럽 프리미엄 유기농 농장의 상징

2011년 11월 차가운 비가 내리는 프랑크푸르트에는 안개가 가득하다. 전철에 오르기 전, 도텐펠더 호프 농장장 라인하르트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농장장은 아주 친절하게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주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오후 2시 약속 시간에 딱 맞추어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 입구에서 라인하르트 씨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서성이다 마치 중세 시대의 어느 촌 동네에 와있는 듯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농장장과 밝은 미소와 간단한 수인사를 나누고, 초겨울 궂은 날씨에 화초들이 다소곳해진 정원을 끼고 우리는 진짜로 중세에 지어진 농장 건물 2층에 있는 농업학교 교실로 들어갔다. 방학 중이라 텅 빈 그곳에서 나는 간단히 나를 소개하고 도텐펠더 호프에 대해 곧바로 질문을 쏟아냈다. 라인하르트 씨는 이런 인터뷰를 많이 겪은 듯 유쾌하고 진지하게 응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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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968년에 다섯 가족이 모여 협동농장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그 가족의 자손들이 함께 운영을 책임지는 유기농 농장이자 학교이며 마을 생협공동체다. 70헥타르 면적의 농장에는 농장 직원들 80 가구가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짓는다. 농장 안에는 슈퍼마켓과 빵집, 커피숍이 있어서 농장에서 생산한 데메테르 유기농산물을 판매한다.
이곳 슈퍼마켓과 빵집은 세계 최고 품질의 유기농산물을 사고자 하는 프랑크푸르트 시민들로 인해 항상 붐비는 명소다. 농장의 부속 기관으로, 독일 교육부에서 정식으로 인정해 주는 1년 과정의 국제농업학교가 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과 생명역동농업을 농장 실습을 통해 배우고 체득한다.

도텐펠더 호프의 유기농 철학

도텐펠더 호프가 오랜 세월 지탱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다섯 가족이 분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사안은 가족 대표들에 의해 의견이 만장일치가 이루어져야만 결정하고 추진한다. 인근에 프랑크푸르트라는 대도시가 있어서 고급 유기농산물의 판매에 어려움이 없다.
특히 프리미엄 유기농산물이라 일반 유기농산물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도텐펠더 호프가 추구하는 유기농 철학과 농법을 신뢰하는 소비자 회원들로 인해 생협 마트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도텐펠더 호프는 이윤을 목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 돈을 벌 목적으로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려고 했다면 일찌감치 망했을 것이다.
이곳의 일꾼들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도시적인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적게 버는 대신 적게 소비하고 가족과 공동체와 자연을 위해 많은 시간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기 위해 놀이터, 유치원, 학교, 문화 공간이 만들어졌다. 더구나 세계적 명소인 농장과 빵집과 슈퍼마켓과 커피숍이 있다. 각국의 예술가, 문인, 농업인 등이 농업학교를 찾아와 공부한다. 일본 학생도 있었다. 한국 사람은 아직 학생으로 들어온 적은 없다.

도텐펠더 호프에서 발견한 프리미엄 유기농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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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텐펠더 호프 농장에는 70여 마리의 소와 돼지와 닭을 키우고 있었다.
소에게 먹일 사료용 비트 무가 농장 마당 한가득 쌓여 있었다. 소 외양간은 모든 축사가 그렇듯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농장장은 축사도 오래 전부터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지저분함’의 내력을 밝혔다. 특이하게도 소마다 이름이 있고, 번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소의 생산이력이 관리되는 점이 남달랐다. 소든 돼지나 닭이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밭으로 나가 풀을 뜯고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들은 어미 소와 함께 별도의 따뜻한 공간에서 몇 주 동안 지낼 수 있다. 그 후에는 송아지들끼리만 모아놓은 ‘어린이집’에서 생활한다.
농장장과 함께 재래식 붉은 벽돌 화로에서 빵이 구워지는 것을 구경하면서 최근 유기농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 섞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독일에서 일어난 유기농 새싹채소 식중독 사건을 계기로 유기농식품에 대해서도 안전성을 의심하는 소비자가 있다. 도텐펠더 호프에서는 식품 안전성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을까.’
라인하르트씨의 답변은 간단했다.
“자연 상태에서 병원미생물은 공기 중에도 많이 떠다닌다. 공기에도 살균제나 항생제를 뿌려야 우리의 식품이 안전해질까? 유기농이든 일반 농산물이든, 유기농인증이나 GAP 기준을 잘 준수하면 식품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동물복지와 생물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가축과 작물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가장 과학적으로 안전한 방법이다.”
농장의 빵집에서 그의 말대로 ‘가장 과학적으로 안전한 방법’으로 생산한, 프리미엄 유기농 체다 치즈 한 조각을 잘라 맛을 보았다. 입안에 퍼지는 은은한 향과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맛이 딱딱한 치즈 안에 꼭꼭 감춰져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맛의 기원은 농장 마당에 수북이 쌓여 있던 비트 무와 더불어 밭에서 학생과 일꾼들이 손수 키워 잘 말린 알팔파 풀맛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민호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
원 유기농업과에서 농업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국제유기농학술상인 오피아
(OFIA)상의 코디네이터. 한국응용곤충학회 평의원.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유기농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 설명>
1 농장 입구에서 도텐펠더 호프 로고와 농장을 안내하는 현판.
2 정면에 보이는 농업학교 건물 1층에 농장에서 자체 생산한 데메테르 유기농 식품과 더불어 각종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있다.
3 도텐펠더 호프에서 키우는 돼지와 농장장 라인하르트씨. 동물복지 규정을 지키며 기르기 때문에 가축들이 모두 건강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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