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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돋보기-'짝-애정촌' 논란 속 폐지
TV돋보기-'짝-애정촌' 논란 속 폐지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4.21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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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짝짓기 프로그램 <짝> 제주도편 촬영 중 여성 출연자가 현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짝’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출연자가 자살하기까지에는 프로그램이 지닌 구조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 경제 상황과 외모 기준 등을 적나라하게 나열하고 서로를 고르는 설정은 결국 이번 사건과 같이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게 됐다. 그간 조작 및 연출 논란을 비롯해 연예계 데뷔 전 홍보를 위해 일반인을 가장한 출연자 논란 등으로 자주 입방아에 올랐던 이 프로그램의 히스토리를 정리하고 그 극단적인 마지막 이야기를 다뤄본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SBS <짝-애정촌> 방송 캡처

SBS 커플 매칭 프로그램인 <짝> 촬영 중 자살한 여성 출연자의 발인식이 지난달 15일 진행됐다.
발인식은 취재진의 촬영이 철저히 통제된 채 가족과 지인들만 참석한 채 조용히 진행됐다. 전 씨는 제주도에서 촬영 도중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경찰은 짝 촬영 테이프 전량을 수거해 전 씨의 자세한 사망 원인을 분석 중이다.
SBS <짝>은 3년 만에 프로그램이 전격 폐지됐다. ‘어딘가에 반드시 내 짝이 있다’는 취지로 만들어져 설날 특집으로 방영됐던 이 프로그램은 처음 만난 남녀가 이름, 직업, 나이 등을 모른 채 인사를 하고 첫날을 보낸 후, 같은 공간에서 며칠간 지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여자 0호, 남자 0호로 불리면서 소통하는 형식이다. ‘애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선입견을 벗은 상태에서 서로 호감을 갖고 다가가 진정한 짝을 찾게 한다는 목적 하에 20~30대의 일반인 남녀가 출연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출연자들의 직업, 경제 수준 등이 이슈가 돼 실시간 검색 사이트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남자 0호 변호사’, ‘여자 3호 강남 영어강사’ 등 이름보다 궁금한 것은 소위 ‘스펙’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에피소드 역시 매회 이야깃거리가 있었는데, 많은 이성의 선택을 받은 남녀 출연자, 한 남자 혹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신경전 등이 그것이다. 재미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출연자들의 마음을 혹사시키는 구성이 아니었나 싶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같은 재미 요소로 큰 인기를 끈 <짝>은 이후 남녀에 관한 테마를 달리해 돌싱남녀 특집, 연예인 짝, 모태솔로 특집 등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색적인 이력이 더해지자 개인에 관한 가십은 더 자주 만들어졌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불편함과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진실을 왜곡한 편집과 네티즌 사이에서 오르내리기 좋은 인물을 설정해 이야기를 짜내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었다. 1시간가량 방송되는 <짝>의 이야기 연결고리는 자주 부실함을 드러냈다. 평균 1주일간의 합숙 기간 내에 벌어지는 일들을 빠짐없이 내보낼 수야 없겠지만 <찍>의 경우 갈등 요소와 비교거리가 있어야만 이슈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다루거나, 누군가를 인기 없고 외로운 이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잦았다.

여자 4호, 우울하고 불쌍한 캐릭터를 강요받다
숨진 출연자의 친구들은 “제작진이 내 친구를 우울하고 불쌍한 캐릭터로 그리려 했으며, 무리한 인터뷰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여자 4호가 촬영 중 보내온 메시지에서 그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3월 5일 오전 2시 10분쯤 제주도 서귀포시 하예동 B펜션 2층 객실 화장실에서 <짝> 여성 출연자인 전 씨가 숨져 있는 것을 동료 참가자와 담당 PD가 발견해 신고했다. 화장실 바닥에서는 전 씨가 작년 11월부터 일기 형식으로 글을 적은 수첩이 발견됐다.
전 씨는 이 수첩에 ‘엄마 아빠 미안해… 나 너무 힘들었어. 살고 싶은 생각도 이제 없어. 계속 눈물이 나. 버라이어티한 내 인생 여기서 끝내고 싶어’, ‘여기서 짝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에 의욕이 없어’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 씨는 <짝>에 참가 중인 일부 남성에 대해 호감이 간다는 내용의 글도 적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시청자들은 삼각관계에 놓였거나 남자 출연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했다. 프로그램은 전격 폐지됐고 해당 촬영분은 공개되지 않고 경찰로 보내져 실제 사고가 일어나기 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간 자주 논란이 돼 왔던 출연자들의 심리적 압박과 지나친 갈등 만들기는 결국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애정촌, ‘인연 찾기’ 의미 퇴색시키며 해산하다
<짝-애정촌>은 ‘출연자 프로필’로 자주 곤혹을 치러왔다. ‘결혼 적령기의 일반인 남녀’로 국한된 신청 요건은 허울뿐이었다. 데뷔를 앞둔 연예인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프로그램 특성을 통해 홍보 차 출연했고, 논란이 뜨거워질 때쯤 방송 관계자 측은 ‘우리도 그런 사실을 미리 확인할 수 없었다’는 해명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물론 직업을 속이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여성 의류 쇼핑몰 CEO는 쇼핑몰 광고를 위해 출연한 것이 들통 나 해당 방송분이 전파를 타지 못했고 방송사에 의해 민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남녀 출연자를 앞세워 해당 방영분의 ‘영웅’으로 만드는 편집기술로 시청자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잦았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일부 출연자들의 출연 후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제작진과의 상의’다. 촬영 중 진행되는 제작진과의 인터뷰부터 마음에 드는 상대를 위한 액션, 다른 출연자들에 대한 언급과 상황적 코멘트 등이 모두 ‘중심이 되는 이야깃거리’ 위주로 ‘만들어진 채’ 이뤄진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화면으로만 접하는 시청자들의 추측과 출연자들이 밝힌 실상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몇몇 출연자들은 이 같은 후기를 통해 <짝>은 고립된 공간에서 남자 몇 명 여자 몇 명이 한 목적으로 지내면서 모든 상황을 감시하듯 찍어 다큐 형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전하기도 한다. 회차의 대 주제에 따라 제작진이 그 방향을 의도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애정’만을 목적으로 남녀가 함께 지내는 것은 자연스럽게 과한 승부욕을 발동시키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여자 4호는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강령(애정촌 입소 12강령)’을 낭독하고 남녀 사이의 경쟁 속으로 들어가 상처받는 상황들을 견디기 힘들었을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꾸며진 이야기들 속에서 경쟁에서 낙오된 자를 ‘연기’해야 했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살한 여자 4호의 가족과 친구들이 원망하는 것은 촬영장에서의 현장 안전 책임보다 심적으로 견디기 어렵게 만든 ‘프로그래밍’으로 인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자살을 택한 이를 그 누구도 보상해 줄 길이 없지만 다소 인위적인 매칭 프로그램인 <짝>이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위험한 요소에 희생당했다는 억울함을 유족들은 쉽게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출연자의 촬영 현장에서의 자살 사건으로 폐지를 맞게 된 이 ‘짝짓기 프로그램’이 사실상 출연자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주며 진행돼 왔는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펙’ 나열식 자기소개와 남녀 후보 줄 세우기, 자극적인 남녀 관계의 갈등 상황, 이른바 ‘약식’ 만남과 이별로 버무려진 이 프로그램은 극단적인 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해당 관계자들은 프로그램의 흥미를 위해 투입한 극적인 요소와 캐릭터로서의 강요가 방송 경험이 전무한 출연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 진정성 없이 인물에 대한 무작위의 화젯거리만을 내세우는 운영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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