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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을 통해 살펴본 ‘과전법’의 의의
드라마 <정도전>을 통해 살펴본 ‘과전법’의 의의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4.21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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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법률

드라마 <정도전>은 퓨전 사극에 싫증이 난 시청자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웰 메이드(well-made) 정통 사극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당시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고려 왕조의 병폐에 대해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혁명이란 것이 정치적 투쟁의 결과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모든 혁명에는 내세우는 명분과 대의가 있으며, 이는 주로 백성들의 삶과 관련된 것이다. 이번에는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과전법’이 제정된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고려시대의 토지소유권 제도와 이에 대한 반성
고려 말기는 권문세족들이 권력과 경제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이인임은 왕으로부터 아버지 소리를 들으며 걸핏하면 왕을 호통 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권문세족들은 산이나 하천을 토지의 경계로 삼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권문세족들의 소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권문세족들을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짓고 그 보상으로 기껏해야 끼니나 해결하는 정도였다. 이는 필연적으로 백성들의 근로 의욕 저하를 초래해 국가 생산력 자체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백성들의 정서적 안식처였던 것은 고려의 국교인 불교였지만, 이 무렵 권문세족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을 수탈하는 데 일조한 대형 사찰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개혁을 촉구하는 세력들이 신진사대부였다. 신진사대부는 고려 왕조는 유지하되, 차근차근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이루자는 ‘온건파’와 새로운 사상인 성리학을 근간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 한다는 ‘급진파’로 나뉜다. 온건파의 대표적 인물은 정몽주이고, 급진파의 대표적 인물이 정도전인 것이다.

2 정도전이 도입한 과전법
과전법은 권문세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모두 국가가 환수하고 귀족들은 백성들로부터 단지 조세를 받을 권리(일명 수조권)만을 갖게 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과전법의 의의는 귀족들의 땅에서 귀족들을 위한 농사를 짓는 것에 불과했던 백성들이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토지에서 스스로 경작하는 자영농으로 그 위치가 격상되었다는 데 있다. 농민들은 수확물의 일부를 국가나 수조권을 가진 자에게 세금으로 내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그 부담이 한층 경감되었다. 고려 말에는 귀족을 제외한 농민들이 모두 천민과 다름 아닌 위치였지만, 과전법이 시행·유지된 조선시대에는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평민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정도전은 성리학의 위민(爲民: 백성을 위하다) 사상을 강조하며 국가의 체제를 확립해 나갔고 과전법이 그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3 과전법의 안타까운 변질
과전법은 조선시대 토지 및 세금제도의 골간을 이루며 유지되지만 안타깝게도 백성들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변질되게 된다.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는 그러한 폐단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대동법이 탄생한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는 과전법 자체의 문제였다고 볼 수는 없다. 과전법 자체는 백성들을 위한 매우 훌륭한 제도였고, 실제로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글 강신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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