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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삶, 그 처참한 기록-영화 '노예 12년'
노예의 삶, 그 처참한 기록-영화 '노예 12년'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4.21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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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토크
 

올해 86회 아카데미 작품상은 실화의 주인공이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에 돌아갔다. 자유인으로 살아가던 바이올리니스트 솔로몬 노섭(영화 속 이름 플랫)이 1841년 백인에게 납치돼 노예로 팔려간 후 혹독한 시련을 겪고 12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 이시종 기자 | 사진 판시네마 제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미국을 연임해 집권하고 있는 현재, 168년 전에 실존했던 흑인 노예에 관한 영화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흑인을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두발 달린 짐승처럼 취급하며 아무런 도덕적 수치심도 없이 부려먹고 때리는 영화 <노예 12년>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그렇게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국의 수치스런 과거를 <노예 12년>은 눈이 시리도록 서정적인 영상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노예 12년>은 1841년 어느 날 갑자기 납치돼 12년간 노예로 살았던 바이올린 연주가 솔로몬 노섭이란 실존 인물에 관한 영화다. 1800년대 중반 미국은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했다.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절이라 자유롭게 살던 자유주(州)의 흑인을 노예주로 쥐도 새도 모르게 팔아치운 것이다. 자유인으로 태어나 단란한 가족을 꾸렸던 노섭은 당시 만연하던 흑인 납치 사건의 희생자가 되면서 무려 12년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다. 우연히 노예제에 반대하던 캐나다인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된 그는 1년 뒤인 1853년 자서전 <노예 12년>을 출간했는데, 이 소설은 당시 이례적으로 3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함께 당시 흑인 노예의 인권유린 참상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인 책으로 손꼽힌다. 노섭은 남은 생을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는데 연설과 강연 도중 행방불명돼 사망년도는 정확하지 않다. 노섭의 자서전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노섭의 비극적 12년을 별다른 기교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데뷔작 <헝거>부터 <셰임> 그리고 <노예 12년>까지 실존 인물의 삶을 스크린에 옮기고 있는 영국 출신 흑인 감독 스티븐 맥퀸은 특유의 진지하고 건조한 방식으로 이 영화를 풀어간다. 맥퀸은 실화의 한 인물의 끝날 것 같지 않은 비극적 상황을 바스락 거릴 정도의 건조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극적 재구성을 통해 어떤 메시지나 의도된 감정을 전하지 않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 느끼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맥퀸 감독은 전작 <셰임>에서 주연을 맡았던 마이클 패스벤더를 포악한 농장주 에드윈으로 캐스팅했다. 패스팬더는 세임에서 보여줬던 공허한 눈빛 대신 집착이 강한 광기 어린 눈빛을 보여준다. 노섭을 연기한 에지오포의 두려움과 슬픔, 절망 그리고 저 깊숙이 숨어 있는 가느다란 희망이 교차하는 커다란 눈망울로 생생히 기억된다.

 
<노예 12년>은 어떤 부당함도 견디고, 어떤 인권유린에도 눈을 감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한 흑인 남성의 생존 기록이다. 동시에 흑인을 짐승 취급하며 자신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괴물로 전락한 백인, 나아가 인간의 난폭한 역사다. 그 역사는 흑인 대통령이 배출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조용히 자행되고 있다. 인종차별부터 아동학대까지 사회적 약자를 버젓이 학대하고 유린하는 모든 이가 바로 흑인 여성의 등을 벗기고 채찍을 휘두르는 포악한 농장주 에드윈(마이클 패스벤더)의 복제품들이나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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