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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복원, ‘버림의 미학’으로 행복 찾기
가족 복원, ‘버림의 미학’으로 행복 찾기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5.04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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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환 기자의 거꾸로 본 미국 ⑤
▲ 브라이스 캐년은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곳으로 딸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곳이기도 하다.

야속할 정도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앞에는 자본도, 그 어떠한 기술과 과학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불어 ‘완전한 행복’의 척도는 결코 물질이나 명예,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행복은 쫓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소소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의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랑’, 가족에게 있다.

글 박영환 | 사진 유원규

#1 심심한 ‘천국’ 미국에서 가족을 되찾다

가족이 미국에 온 지 여섯 달이 됐다. 집을 구하고 운전면허 따고 집에 인터넷을 설치할 때마다 부딪쳤던 느릿느릿한 미국식 생활방식에 넌더리가 났다. ‘미국은 심심한 천국, 한국은 재밌는 지옥’이라던 전임 특파원의 말에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던 미국식 삶의 패턴이 어느덧 편안해지고 있음을 절감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후회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취재거리가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여섯 시에 칼퇴근해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기자생활 20년 동안 상상도 할 수 없던 기이한 일이 요즘 벌어지고 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아내는 우리 집 쌀 소비량이 몇 갑절 늘었다며 한탄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진다. 한국서는 한 포대면 몇 달을 먹었는데 지금은 한 달도 못 버틴다는 거다. 기껏해야 한 달에 두세 번 집에서 가족과 식사하던 남편에게 매일 반찬 만들고 밥하고 국 끓이는 일이 힘겨웠을 법도 하다. 음주 횟수와 음주량은 확연히 줄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칭찬이 넘친다. 얼마 전 멸종 위기 동물인 코요테 일곱 마리가 복원됐다던데, 내가 미국 와서 얻은 첫 결실이 바로 ‘가족의 복원’이 아닌가 싶다.

#2 서부 3대 캐년 가족여행_ 우공이산(愚公移山)을 깨닫다

추수 감사절에 미국 서부 3대 캐년으로 가족여행을 가까스로 다녀왔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등지면서 갑자기 새너제이로 출장을 가게 돼 무산된 걸 복원한 거다. 미안하다며 집을 나설 때 초등생 아들은 “가족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직업이 기자냐”며 툴툴거렸다. 어른이 되면 가져서는 안 될 직업 1순위에 올라 있던 ‘거지’를 뒤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기자’를 적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고 만난 그랜드와 브라이스, 자이언 캐년은 이름만큼 색다른 매력을 뿜어냈다. 거친 원시의 힘과 장고한 지구의 연륜이 녹아든 캐년은 인간의 미약함과 인간문명의 유한성을 절감하게 했다.
혁명 보다는 진화, 결과 보다는 여정, 격정 보다는 인내, 권위 보다는 소통이 생명력이 있다는 직관도 스쳐갔다. 고교생 딸은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브라이스 캐년에서, 초등 4학년 아들은 자이언 캐년의 남성미에 점수를 줬다. 가슴에 산소를 불어 넣어주는 영감은 논리보다는 감성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아이들이 끝없이 토해내는 탄성과 주먹만 하게 커져가는 눈동자를 보면서 ‘대자연이 곧 스승’이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설악산이나 금강산이 주는 친근감에 익숙했던 아이들에게 캐년은 신천지로 각인됐을 터이다.
인간의 삶이란 게 길어야 80년인데 깊은 협곡의 캐년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수백만 년에 걸친 침식과 융기, 응축과 뒤틀림, 용트림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거인 같은 캐년 앞에서 ‘조급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집을 가로막은 산을 옮기려고 대대로 산의 흙을 파서 나르겠다고 하자, 감동한 하느님이 산을 옮겨 주었다는 데서 유래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뜻을 깨달았다면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큰 선물을 받아온 셈이다.

▲ 자이언 캐년의 웅장한 배경을 뒤로하고.

#3 ‘지구도 하나 가족도 오직 하나’_

미국인들의 기족중심주의
미국인들은 대부분 진정한 행복을 가족과의 일상적 삶에서 추구한다. 할로윈 행사, 학교 캠프, 크리스마스 파티, 추수감사절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족중심이다. 파티도 온 가족이 참석하고 아이들이 캠프를 떠날 때도 부모 한 명이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이 있을 텐데 참석률이 아주 높다. 교사의 상담이나 학부모 총회 때도 부부가 함께 오거나 아빠들만 참석하는 경우가 흔하다. 치맛바람에 익숙한 한국적인 정서로는 이해가 잘 안가는 대목이다.
미국인들은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양성평등에 기초한 통합적 역할 모델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심어준다. 송년회나 크리스마스 파티도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은 가족과 친지, 친구를 가족 단위로 초대하지만 한인들은 이른바 한국식 ‘끼리끼리 송년회’를 고수한다. 연말에는 한인 신문마다 몇 페이지에 걸쳐 OO고교, OO대학교, OO향우회, 송년회 등의 사진이 매일 실린다.
한인들이 네트워킹과 인맥, 권위를 중시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가족의 품 안에서 느끼는 안온함과 행복을 반긴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미국에는 ‘한 지붕 다세대’ 가정이 급증하는 추세다. 직장을 잃거나 주택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일가친척들과 더부살이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전통적 대가족 제도가 복원된 셈이다. 이 속에서 갈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서로 배려하면서 고통을 함께 이겨내는 집안이 많아서인지 어려운 시기일수록 가족을 능가하는 제도가 없다는 자각이 일고 있다.

#4 행복의 원천_가족주의와 버림의 미학

행복이 가족의 범주를 넘어 사회로 확산되려면 욕심을 자제하는 ‘버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가족이 아무리 행복해도 사회공동체가 불행하다면 만족감은 한시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행복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노자는 ‘똑똑해지려면 지식을 버리고 많이 가지려면 재산을 버리고 행복해지려면 탐욕을 버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세계를 뒤흔든 반-월가 시위도 ‘자본의 탐욕’을 문제 삼았다. 나 중심의 욕심을 내려놓으면 가족이 행복해지고 탐욕을 버리면 인류가 행복해진다. 그래도 욕심을 버리는 게 쉽지 않거든 꼭 헬렌 켈러의 시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을 읽어보시라.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중략)…만약 내가 눈뜨고 볼 수 있다면 나를 이 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시켜준 선생님 에미 설리반을 찾아 그의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두겠다…(중략)…다음날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아침에는 오페라 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고…(중략)…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드리고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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