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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명 음반 이야기2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명 음반 이야기2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5.06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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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루스 콰르텟

추억을 두드리는 한 곡의 여유, 잠시나마 숨을 고르며 뻐근한 어깨 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위로와 용기가 되는 명 음반 소개 두번째, 벨루스 콰르텟의 추천을 담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정현의 추천 음반
Brahms Clarinet Quintet in b minor, Op.115 - Emerson String Quartet & David Shifrin

에머슨 사중주단과 데이빗 쉬프린이 연주한 이 음반을 처음 만난 건 1999년, 내가 막 스무 살을 맞이하던 해다. 당시 나는 제법 많은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미래, 진로, 우정과 사랑 등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긴 유학 시절 감성 충만했던 20대의 나에겐 꽤나 진지하고 심각한 것들이었다. 당시 내게 와닿았던, 유독 슬픔의 깊이와 애수 섞인 체념을 균형 있게 담아낸 에머슨과 쉬프린의 조합을 추천하고 싶다.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 겨울바다를 보러 무작정 무궁화 호에 올랐던 날, 그 순수하고 고독했던 내 여행에 줄곧 동행해 주었던 것 역시 이 음반이다.

지금도 이 곡을 들을 때면,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 아래 규칙적으로 파도를 부수어내던, 참 쓸쓸하기도 다정하기도 한 그날의 겨울바다가 떠오른다. 슬픔과 고독 그리고 담담한 체념이 묻어나는 브람스의 마지막 대작. 인생의 황혼에서 젊은 날의 감미로운 추억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운명 앞에 내려놓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창작력이 감퇴했음을 받아들이고 유서까지도 작성했던 브람스는 “만년의 심경을 토로하는데 클라리넷만한 악기가 없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그가 ‘토로’한 삶은 파도치는 현의 비브라토를 뚫고 흔들림 없이 정진하는 클라리넷의 음색으로, 애절하다 못해 숭고하게 그려진다. 인생의 달콤 쌉싸래한 면모들을 담아낼 수 있는 건 오직 이 구성뿐이었으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고독하지만 따뜻함이 스며 있고, 슬픈 가운데 잔잔한 희망이 느껴지는 삶의 묘한 교차점들이 온전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벨루스콰르텟은 리더 제1바이올린 고진영을 필두로 제2바이올린 김정현, 비올라 김신희, 그리고 첼로 송인정으로 구성됐다. 미모와 실력은 물론, 열정과 끼로 무장한 벨루스 콰르텟은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두 번째 정기연주회를 마쳤고, 하우스콘서트 등 다양한 연주회에 참여하며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글 김정현 사진 벨루스콰르텟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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