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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들려주는 ‘책과 인생’
김훈 작가가 들려주는 ‘책과 인생’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5.06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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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주최한 음악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의 첫 번째 인물로 김훈 작가가 등장했다. KBS 정용실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북 콘서트에서 김훈 작가는 시종일관 시대와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적인 언어로 청중을 감탄케 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최별 기자

김훈 작가의 자택은 경기도 일산이다. 하지만 최근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인 경기도 안산 선감도에 작업실을 꾸렸다. 소설가의 작업실이지만 책은 한 권도 없으며 오로지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책상과 연필, 그리고 원고지가 전부인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막장에 비유했다. 하지만 흔히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막장과는 차원이 다른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작업실은 내 막장이에요. 무연탄을 캐는 광부들이 땅속 2천 미터를 들어가면 석탄을 캐는 자리가 나와요. 곡괭이로 캄캄한 벽을 찍어 탄가루를 떨어뜨리죠. 바로 그 자리가 막장입니다. 인간의 노동이 자연과 부닥치는 거룩한 장소가 막장인 것이죠. 막장은 거룩한 단어인데, 요즘
에는 그것을 상스럽게 쓰고 있더라고요. 모국어가 정말 타락해 가고 있다는 점은 통탄스럽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바라보더라도 남다른 사유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로 해석해내는 그는 가히 이 시대 최고의 소설가다웠다.

소설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 이유

그는 지금껏 발표한 자신의 소설에서 사랑이나 연애, 기다림, 그리움, 외로움 등의 감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글자를 장악하지 않은 채 글을 쓰면 소설이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아 그런 단어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는 것이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글을 쓰기보다 어떤 것이 사랑이고 외로움인지를 정확히 이해한 상태여야 그의 글 안에 녹아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외롭다고 하면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상태를 외롭다고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거죠. 저는 매일 혼자 있는데 전혀 외롭지가 않거든요. 혼자 있으면 존재의 충만감에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물론 자랑은 아니에요. 그런 쪽의 감성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죠.”
특히 그는 소설이 단순히 상상력만 가지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확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면 헛것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한 소설가의 생각은 상상력이 아니라 독자에게 억지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가 되는 것도 결국은 상상력뿐만 아니라 삶의 구체성에 접근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중견 소설가다운 깊이와 혜안이 느껴졌다.

최근 발표한 단편 소설 <손>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그는 최근 문학지를 통해 단편소설 <손>을 발표했다. 오랜 공백 끝에 공개한 신작이어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한 소방관이 나에게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젊은 여자를 구하고 자기에게 매달려 있는 여자의 손을 펴봤더니 그 안에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가득했고, 그 모습은 무엇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놀라운 이야기를 접한 그는 어느 박물관에서 봤던 돌칼의 뭉툭해진 흔적을 떠올렸다.
그러자 수만 년 전 사냥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던 한 사내의 손바닥이 보였고, 문득 저녁이 다 되어서도 사냥을 하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와야 하는 사내의 슬픔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물관에 있는 금관보다 인간이 손으로 잡은 흔적이 있는 돌칼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돌멩이를 들고 수만 년 전에 사냥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렸던 사내의 손바닥이 보였으니까요. 고통과 슬픔, 노동이 보이는 손의 흔적에서 빈손으로 돌아와야 하는 저녁의 슬픔도 떠올랐고요. 그래서 소설을 시작했는데 생각한 것처럼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콘서트 말미에서 그는 소설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도 건넸다.
“내가 젊었을 때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어요.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몽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죠. 밥벌이하는 게 목표여서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어요. 나처럼 쉰 살이 넘어서 해도 되니까 천천히 한 발 한 발 밥벌이부터 열심히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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