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4:45 (금)
 실시간뉴스
‘시대의 기억’ 출간한 사진작가 김녕만
‘시대의 기억’ 출간한 사진작가 김녕만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5.08 0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1개의 빛나는 순간의 기록들
 

사진작가 김녕만의 사진집 <시대의 기억>(사진예술사)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기록이다. 작가는 40여 년간 찍어온 결정적 장면 271점을 추렸다. 그의 사진집 속에는 분단, 새마을운동, 도시개발, 민주화 등 우리가 겪어온 세월이 담겨 있다. 그의 사진집은 우리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듯하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김녕만 제공

“나의 기억은 모호할지라도 카메라의 기억은 오차가 없다”

농촌 풍경을 담은 초기작을 빼면 일관된 방향성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그 원인은 아마 23년간 사진기자 생활을 해온 까닭이 아닐까 한다. 사진작가가 피사체를 스스로 선택한다면, 사진기자는 사건과 취재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보도용 사진을 찍어야 하는 직업적 필연성과 사진에 대한 선택적 열정은 그의 작품에 다른 작가와는 다른 독특한 무엇인가를 첨부시켰다.
그의 사진은 미학의 실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가 책 뒤쪽에 출간 소회를 밝힌 글에서 ‘시간을 좀 더 열심히 붙잡아두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고 쓴 것도 그동안의 사진작업이 ‘시간을 붙잡는 기록’에 다름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책에 실은 271장의 사진들은 모두 그가 40여 년에 걸쳐 카메라를 들고 포획했던 의미 있는 시간들인 셈이다.

잡아둘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애도와 증언

이제는 흔적이 사라졌을 흑백의 아득한 옛 풍경을 회상하는 김녕만 작가의 눈빛은 반짝였다. 시대의 기억은 그 시절 신작로에서부터 시작된다. 보도사진 기자를 꿈꿨던 젊은 시절, 그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고향의 길, 사람들, 해질녘을 담아두었다.
사진작가 김녕만의 사진집 <시대의 기억>(사진예술사)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기록이다.
작가는 40여 년간 찍어온 결정적 장면 271점을 추렸다. 그의 사진집 속에는 분단, 새마을운동, 도시개발, 민주화 등 우리가 겪어온 세월이 담겨 있다. 그의 사진집은 우리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듯하다.

“무얼 찍겠다는 계획을 하고서 카메라를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가까운 곳으로 나가 걷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의 일상은 그 자체로 담아둘 만한 순간들이었으니까요.”
1978년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하면서 그는 잊어서는 안 될 찰나의 현장을 숨 가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래 꿈꿔 왔던 보도 사진기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부터 그의 열정은 더해갔다. 청와대부터 판문점, 농촌과 서울, 울고 웃는 군상들까지 역사의 한가운데서 생생한 기록을 이어왔으며 지금까지도 차근차근 그 기록을 매만지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검열하던 시절이었으니 힘들게 찍은 사진들을 어디에 게재할 수도 없었죠. 역사를 소중히 남겨서 모두에게 잘 알려줘야겠다는 자부심에도 상처를 입었고 무엇보다 광주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오랫동안 가졌습니다. 그 아픔을 언젠가는 밝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광주 그날>이라는 사진집을 내면서 그 짐을 좀 덜었죠.”
40여 년 전 고향인 고창의 한 연대미상의 성에, 기록을 토대로 연대를 밝히면 큰 상금을 주겠다는 공모에 도전하면서부터 소년의 꿈은 시작됐다. 성 구석구석, 벽에 쓰인 바랜 기억을 찾아 카메라에 담았던 김녕만 작가는 기록과 사실, 역사를 아울러 보는 깊은 눈으로 또렷하게 우리 모두의 시간을 차곡차곡 이야기하고 있다.

#1 변혁의 바람 ‘새마을 운동’

 
 
그의 사진집에 실린 새마을운동 당시의 기록들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이 많다. 1970년대 초에 시작돼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간 새마을 운동은 필연이었고, ‘잘 살아보세’와 ‘근면, 자조, 협동’ 그리고 ‘조국 근대화’라는 수호는 그 시대를 이끈 견인차였다. 온 마을의 아이들과 아낙네와 할아버지들이 나서서 부엌을 개량하고 지붕을 새로 이었고, 마을 앞길과 개천을 넓히는 일은 횃불을 밝힌 채 밤까지 계속됐다. 아마 기록되지 않았다면 이런 장면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처럼 가물가물해졌을 것이다. 새마을 운동에 관한 사진은 1970년대 초반, 아마도 기자 일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당시에 찍었던 사진인 듯싶다. 다큐멘터리라면 건조한 사진을 떠올리겠지만, 그의 사진에는 특유의 유머가 깃들어 있다. 송아지 코뚜레를 힘껏 끄는 여자아이의 웃음 띤 얼굴이나, 선거 벽보 옆에 창으로 또 한 명의 후보처럼 소가 머리를 내민 모습, 나락을 말리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물고 줄행랑을 치는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사진에는 따스한 시선과 유머가 넘친다.

#2 광주민주화운동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은 험난한 시대를 예고하는 서곡이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민주화 시위는 연일 거리를 메우고 이에 대한 탄압도 거세져 거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는 1970년대에 농촌과 서울에서 경제적인 변화를 체험했다면 1980년대에는 치열한 정치 변혁을 목격하는 역사적인 현장에 서게 됐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인연이 깊다. 당시 광주 취재에 투입됐던 그는 처참한 장면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지면에 소개되지
 
못했고 10여 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비로소 공개돼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리는 대표적인 사진이 됐다. 지금 그의 사진으로 되돌아보는 광주의 사진은 뜨겁다거나 눈물겹다기보다는 흘러가 버린 시간의 기억으로 다가온다. 당시의 기억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의 현장성과 기록성, 역사성을 충분히 체험하고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아픔이었다. 광주의 비극을 목도했고, 민주화를 요구하다 희생되는 젊은 학생들과 명령에 따라 이들을 진압하던 경찰들의 희생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객관적인 중간 지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3 분단의 슬픔, 통일을 향하여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우리 민족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가 바로 통일이다.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남북분단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광장과 거리에서 민주화 요구로 들끓는 현장을 취재했던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10년 동안 판문점을 출입하면서 분단의 최전선을 목도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취재 대상으로 받아들였지만 곧 남북분단이야말로 사진가로서 나에게 가장 절대적인 과제이자 사명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기자를 그만둔 지금까지도 남북분
 
단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의 주제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의 사진은 처음에는 판문점에서 이루어지는 남북 대화의 교류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점차 비무장지대의 동식물과 환경문제로 관심이 확장된다. 그리고 실향민들의 안타까운 소망과 통일을 꿈꾸는 다양한 모임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과 그에 비례하는 통일의 열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4 에필로그
“지나버린 것들은 그리움으로 코팅되어 고통과 슬픔조차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하는 마력이 있다. 과거를 불러오는 사진이란 매체가 풍부한 감성의 매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사진 속의 시간은 이미 흘러가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지난 40여 년 동안 찍은 사진을 책 속에 펼쳐 놓고는 작업노트에 남긴 말이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기록은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에 남기는 특성이 있다. 그것도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방식대로 재구성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의미가 깊다. “기록의 매체인 사진의 힘을 빌려 제대로 된 역사의 기억을 제공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기록이 우리 시대를 조망하는 선명한 기억이 되어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