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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피아노’에서 본 무대공포, 그리고 예술
영화 ‘그랜드 피아노’에서 본 무대공포, 그리고 예술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5.09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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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만큼 공포 영화에 어울리는 악기가 있을까. 피아노의 서늘한 선율도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피아노의 물리적 구조에서 공포의 기운을 상상하게 될 것 같다. 영화 <그랜드 피아노>는 줄거리만 보면 피아니스트의 정신적인 공포증을 외화시킨 작품이라 속단하기 쉽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더홀릭컴퍼니 제공

영화 <그랜드 피아노>. 영화 제목만 보고서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대한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예전부터 음악 영화라면 빼놓지 않고 봐왔기에 영화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기대대로 영화에서 나오는 연주는 환상 그 자체였다. 여기에 생각지도 않은 스릴까지. 90분의 러닝타임 동안 스크린에 빠져들었고, 독특한 형식에 감탄했다. <그랜드 피아노>를 연출한 유지니오 미라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시나리오부터 실현 불가능한 작품 같았다. 이 영화 자체가 ‘라 신케트’였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실현 불가능한 작품 같았다. 하지만 제작진들의 노력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에서는 그랜드 피아노 연주가 80%를 차지하며, 스릴러라는 장르가 가미된 새로운 장르의 영화다.

 
피아노가 주는 양면성, 아름다움과 공포

천재 피아니스트 톰 셀즈닉(일라이저 우드 분)은 치명적인 실수로 무대공포증을 얻는다. 이때 연주했던 피아노곡은 누구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없다고 알려진 ‘라 신케트’다. 5년 뒤 유명 배우인 아내 엠마(케리 비시 분)의 내조로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 톰은 죽은 스승의 그랜드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형태로 복귀 무대를 갖는다. 귀국 직후 공연을 하게 된 톰은 누군가가 건넨 악보를 들고 정신없이 무대에 오른다. 악보 곳곳에는 그를 협박하는 메모가 적혀 있다. 이어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협박범의 주문을 들으며 연주하게 된 톰은 의문의 사내로부터 5년 전 실패한 마의 연주곡 ‘라 신케트’를 완벽하게 연주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범인의 지시에 따라 연주에 몰입하며 변화해 가는 주인공의 심경은 서서히 강렬해지는 피아노 연주와 함께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 전반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과 오케스트라 음악은 심박수를 높이는 빠른 템포와 두 귀를 가득 채우는 웅장한 사운드로 재미를 더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역을 맡은 일라이저 우드는 이번에는 천재 피아니스트 톰으로 분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일라이저 우드는 천부적인 연주 실력을 지녔지만 치명적인 실수로 무대 공포증을 갖게 된 톰의 내면적 고통을 완벽히 표현하고, 쉴 틈 없는 범인의 압박으로 극대화되는 두려움을 광기 어린 피아노 연주 연기로 대변하며 극을 힘 있게 이끌어 간다. 다양한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는 존 쿠삭은 연주회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클렘으로 등장한다.
영화 줄거리만 보면 피아니스트의 정신적인 공포증을 외화시킨 작품이라 속단하기 쉽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피아노 속에 숨은 부품들을 샅샅이 비추며 들어가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피아노라는 물체 자체에 대한 탐구이기도 함을 인식하게 한다. 콘서트홀과 대기실을 잇는 좁은 복도를 비롯해 초반 흔들리는 비행기 내부와 자동차 내부는 밀실공포증을 유발하는 요소이며 그 자체로 피아노의 좁은 내부를 탐험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음악에 대한 동경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매력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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