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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 중소기업 스틸라이프 박광춘 대표가 이룬 기적 성공기
30명 중소기업 스틸라이프 박광춘 대표가 이룬 기적 성공기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5.11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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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걸린다던 DDP 외벽판 4년 만에 해냈다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마치 거대한 우주공간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은빛 반짝이는 외벽은 이곳의 상징이다. 부드러운 지붕을 덮은 것은 서로 다른 4만5천133개의 알루미늄 판이다. 이것을 만들어낸 것은 해외 기업도 아니고 국내 대기업도 아니다. 직원 30명이 전부인 국내 중소기업 스틸라이프다. 해외에서는 20년은 걸린다고 한 작업을 무려 4년여 만에 완성해냈다. 집념과 열정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건물이 자리 잡았다. 중구 을지로 동대문운동장 거리에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하 DDP). DDP는 메가트러스(Mega-Truss, 초대형 지붕트러스),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 3차원 배열) 구조가 적용되어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에 기둥이 최소화된 거대한 우주공간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시관, 도서관, 컨벤션홀 등 각각의 공간은 유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면의 벽체, 천장과 등기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연결되는 동선까지도 부드럽고 때론 격한 변화로 극적인 곡선의 느낌을 준다. DDP는 곡면, 사면 그리고 비대칭과 비정형의 외계적 건축미를 가진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로 국내는 물론 세계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4천212억원, 운영준비금 628억원 등 총 4천840억원이 투입된 매머드급 프로젝트였다. DDP는 2009년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1월 준공돼, 3월 21일 개관했다. 대규모 공사인 만큼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기이해 보일 정도의 형이상적 외벽이 큰 난관이었다. 일각에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비현실적 조형물’이라고 하기도 했다.

해외 유명 시공사, “완성까지 약 20년 걸릴 듯…”

DDP는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 중 하나로 시작됐다. 공모를 거쳐 이라크 출신 여류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했다.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첫 여성 수상자이자, 직선 위주의 이전 건축의 틀을 깨는 곡선의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돌고래를 닮은 영국 런던올림픽 수영경기장, 가오리 모양의 일본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등이 그이의 작품이다.

하디드는 1970년대부터 건축 디자인을 내놓았는데 워낙 모양이 특이해 1994년 이전까지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실제로 건물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페이퍼 건축가(설계도만 있고 건물을 없다는 뜻)’, ‘건축물 없는 건축가’라는 조롱 섞인 별명도 얻었다. 워낙에 만들기 어려운 디자인을 하는 하디드였기 때문에 DDP의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 관계자 역시 DDP의 설계도를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은색 알루미늄 판으로 뒤덮인 DDP의 면적은 축구장 8개 크기인 62,692㎡(약 1만8천998평). 공사를 발주한 서울시는 DDP가 세계에서 가장 큰 정방형 건축물이 될 것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문제는 이 건물의 겉을 감쌀 알루미늄 판이었다. 설계도에 따르면 건물은 알루미늄 판 4만5천133장으로 덮게 돼 있었다. 더구나 큰 파도 같은 건물 모양 때문에 판들은 모양이 전부 달라야 했다. 보기엔 근사할지 몰라도 만드는 쪽에선 여간 골치 아픈 난제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알루미늄 판이 쓰인 건물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하디드는 시공사가 당혹스러워하자 세계에서 알루미늄 판을 가장 잘 만든다는 독일과 영국의 회사 두 곳을 추천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이 회사들은 “가능은 하나 20년 걸린다”는답을 보내왔다.
수작업으로 하나씩 알루미늄판을 만들어야 하므로 일 주일에 만들 수 있는 패널수가 10~30개 수준이라는 것이다. 임기가 4년인 시장이 세금을 투입해 짓는 건물인데 완성하기까지 20년이 걸린다는 건 한국 정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당시 건축계에서는 ‘알루미늄 판을 못 구해서 공사가 엎어졌다’는 좌초설이 돌기도 했다.
시공사 직원 모두가 낙심하고 있을 때 한 직원이 국립과천과학관 이야기를 꺼냈다. 그 건물 역시 곡선으로 이뤄진 비정형 건물이었다. 그 판을 만든 곳은 한국의 중소기업인 스틸라이프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스틸라이프에 연락을 취했다.

집념과 열정이 신(新)기술을 만들다

스틸라이프는 2001년 경기도 광명시에 설립된 회사로 직원이 30여 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다. 당시 스틸라이프 한 해 매출이 150억~200억 원 정도였는데, DDP용 알루미늄 판은 공사 예산이 400억 원이 넘었다. 스틸라이프가 당시까지 맡은 공사 중 가장 큰 규모였다.
4만 장이 넘는 알루미늄 판, 그것도 모양이 다 다른 판을 만들 수 있느냐는 시공사의 질문에 스틸라이프 박광춘 대표는 과천국립과학관을 맡아서 해본 경험을 살려 도전해 보기로 했다.
스틸라이프는 알루미늄 판을 뜨겁게 달궈 굴곡 있는 판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회사였다. 이 방법으로 DDP용 판 몇 개를 만들어 보았다. 18장 만드는 데 2주가 걸렸다. 독일 회사보다 더 느린 속도였다. 판도 고르지 않았다.
박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장에 70만~100만원에 달하는 알루미늄 판을 버리는 게 아깝기도 했지만 ‘역시 해외 업체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사람들이 수군댈 때 더 속이 쓰렸다”고 말했다.
오기가 생겼지만, 난관을 헤쳐 가기가 쉽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박 대표를 구원한 것은 친하게 지내던 철판 가공업체의 한 대표가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였다.
“배 만들 때 쓰는 철판 성형 기술을 활용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박 대표는 DDP 판에 맞는 기계를 만들었다. 배에 쓰이는 거대한 철판 대신 DDP 디자인에 맞춰 알루미늄 판의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봉의 지름도 줄였다. 봉을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며 특허 두 개를 새로 냈다.

박광춘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건축물은 정형화되어 비교적 쉬웠지만 DDP는 역사문화공원의 독특한 건축물로 비정형화된 형태였어요. 외장에 부착되는 패널 수만 4만 장으로 패널의 크기, 모양, 색상이 제각각이고 한 장의 패널은 18개의 부속자재로 구성되어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는 외장 공사였죠. DDP만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고 1대에 1천만원이 넘는 컴퓨터 10대를 동원해 설계도를 제작했어요.”
아이디어를 얻는 데 2개월, 기계 제작에 6개월, 기계를 조율해 제대로 된 알루미늄 판이 나오기까지 또다시 2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고 첫 완성품이 나왔을 때 박 대표는 자신감을 얻었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기계를 거듭 개선해 효율을 조금씩 높였고, 거친 절단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반도체같이 정교한 부품 제작에 쓰이는 ‘3차원 절단기’를 들여왔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자 8시간 동안 알루미늄판 60장을 찍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다점(多點) 스트레칭 포밍 머신’이라는 이 기계는 18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았다. 20여 명의 직원이 매일 기계를 돌려 알루미늄 판을 찍어냈다.

 
1년 7개월 동안 4만5천133장을 붙이다

4만 장이 넘는 판을 일일이 붙여야 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른 판엔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하게 11가지 기호로 이어진 아이디(ID)가 하나씩 주어졌다. 판을 붙일 위치, 휘어진 정도, 색상 등의 정보로 숫자와 알파벳이 담겨 있다. 그 자리에 들어가는 패널이 얼마나 구부러져 있는지, 몇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지 등의 정보가 11가지 기호 안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아이디만 알면 같은 모양의 판을 찍어낼 수 있었고, 나중에 건물을 수리할 일이 생겨도 정확한 위치에 필요한 모양의 판을 쉽게 만들어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루미늄 판은 한겨울인 2012년 12월부터 붙이기 시작했다. 판 하나의 무게가 30kg 남짓. 정해진 위치까지는 사다리차를 이용해 판을 올리지만 알루미늄 판을 볼트로 조이는 작업은 일일이 사람 손이 가야 했다. 보통 네 명 정도가 한 조를 이뤄서 판을 붙였다. 알루미늄 판 부착에는 하루 최대 약 60명이 투입됐다.
당시 알루미늄 판 작업을 지휘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판을 위에서 내려 천장에 붙이는 작업은 비교적 쉬웠지만 천장에 전구를 끼우듯이 아래서 위로 판을 붙여야 하는 고난도 작업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로프 묶고 곡선 지붕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추운 겨울보다 햇살이 눈부신 여름이 훨씬 작업하기 어려웠다. 달궈진 알루미늄 판 탓에 더위가 훨씬 더 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2012년 겨울에 시작한 부착 작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한 번 봄과 여름을 거쳐 1년 7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 동대문플라자 내부인 디자인나눔관
DDP는 어떻게 운영될까

DDP는 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디자인장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등 5개 시설로 구성됐으며 내부에는 15개 공간이 마련됐다. 우선 알림터(4,953㎡)는 컨벤션, 신제품 발표회, 패션쇼, 콘서트, 공연, 시사회 등으로 활용 가능한 공간이다. 지하 2층에 자리 잡은 1500석 규모의 알림1관(1천500석)과 알림2관(1천 석), 국제회의장(200석), VIP 대기실 등으로 구성됐다.
배움터(7,928㎡)는 한국의 디자인과 문화의 창조성, 세계 최신 트렌드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에 걸쳐 디자인놀이터와 디자인둘레길, 박물관, 전시관 등의 시설이 배치돼 있다.
이 중 디자인놀이터(4층)는 디자인 콘텐츠 체험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다. 5~15세 어린이와 가족을 주 타깃으로 5개 분야 총 12개 코너가 준비돼 있으며 1회 체험시간은 100분, 한번에 최대 200명까지 체험이 가능한 시설이다.
살림터(8,206㎡)는 국내외 신진 디자이너들이 프로모션 등을 통해 제품을 전시 및 홍보하고 최신 디자인 상품과 아이디어를 사고 팔 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 역할을 한다. 1층부터 4층까지 각 층에 살림1관, 살림2관, 디자인나눔관, 잔디사랑방이 자리 잡고 있다.
디자인장터(어울림광장)는 주변 상권과 함께 문화 콘텐츠와 체험, 쇼핑이 결합된 곳으로 24시간 운영된다. 국내외 방문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주변 상권도 살릴 수 있는 역할이며, 지하철과 연결된 DDP 지하 2층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다. 나머지 한 공간은 2009년 10월 앞서 개장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4110㎡)이다. 갤러리 문(門), 이간수문전시장,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동대문역사관1398 등으로 구성돼 있다.
DDP의 이용 가격은 각 전시나 공간별로 구분 적용된다. 통상적인 관람료는 일반 8천원, 할인 4천원이지만 패키지 입장권으로 더 저렴하게 이용 가능하다. 살림터, 둘레길, 잔디사랑방, 공원 등은 무료다.
백종원 서울디자인재단 대표는 “시민과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을 통해 DDP가 아시아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디자인·창조산업의 발신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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