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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지고 ‘가족 드라마’ 몰려온다
‘막장 드라마’ 지고 ‘가족 드라마’ 몰려온다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5.12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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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사와 가족애에 대한 갈망
▲ 드라마 < 사랑해서 남주나>

드라마의 ‘막장 정도’는 자주 화제가 돼 왔다. 누가누가 더 잘 꼬나 대결이라도 펼치듯 방송 3사는 ‘막장’의 수위를 올리고 예측에 빛나가는 설정을 던지고는 했다.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들의 힘을 입어 막장 드라마들은 높은 시청률을 강타하며 주가를 올렸다. 황당한 장면과 막말 대본의 종횡무진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져갔다. 다행히 ‘진짜’가 아닌 자극은 금세 시들었다. 진심과 가치가 담긴 따뜻한 드라마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iMBC, JTBC 제공

드라마를 왜 볼까. 또 그 소재는 매번 ‘사랑’과 ‘가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가족 안에서 여러 관계들이 벌이는 아기자기한 일들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의 일상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한 발 물러서서 다시 보고 싶어 한다. 훈훈한 에피소드에 웃음을 짓기도 하고 애틋한 사랑에 눈물을 짓기도 하면서. 그런데 언젠가부터 ‘가족 드라마’의 카테고리 안에 ‘막장’이라는 코드가 떠오르면서 문제적 드라마들이 이슈가 됐다.
작가주의, 장르물들을 비롯한 일반 드라마들은 맥을 못 추고 시청자들은 ‘인어’, ‘공주’의 경악할 만한 예고편에 갑론을박을 잇고 댓글을 실어 나르기 바빴다. 진정성이 따분함으로 치부돼 가는 시대 전체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다.

가난한 캔디의 사랑과 성공을 그린 트렌디 드라마가 인기였던 때가 있었다. 그조차도 한정된 포맷에서 뻔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지루했던 대중은 보통의 삶이 아닌 자극적 상황의 어지러운 화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꼬인 인물 관계도, 일반적인 사람이 해내기 힘든 복수의 방식과 억지스러운 운명 등 그야말로 극적인 전개는 시선을 사로잡는 이상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자극적일수록 시청률은 높아졌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놓치지 않는 시청자들이 대다수였다. 감동을 주기는 어려운 구조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자극적이고 황당한 요소들에, 막장 드라마 작가들은 감동까지 대충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막장 드라마는 권력을 조금씩 잃고 있다. 뜨고 지고, 다시 뜨는 것이 유행이듯 이 장르도 막을 내릴 시점이 온 것. 찌들고 희망 없는 삶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꼼수 쓴 ‘나쁜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외면받는 ‘충격과 비상식, 꼬이고 얽힌 관계도’

그간 <인어아가씨>를 필두로 막장 트렌드가 자리 잡히면서, 조미료처럼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막장 드라마와 대결 구도에 있었던 몇몇의 착한 드라마, 마니아층을 거느린 작가 타이틀의 드라마들이 소문 없이 종영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보게 되는’ 명품 드라마들의 힘은 막장 드라마의 깃털 같은 마지막에 댈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의 가치를 다룬 리얼리티 가족 드라마에 대한 추억 또한 판세를 바꾸는 데 힘을 더하고 있다. ‘보통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제 더 이상 상상하지 않고 싶다’는 대중의 반응이 지배적인 가운데, 논란으로 시작하는 16~20화 가량의 미니시리즈물로 승부를 보겠다는 막장 제작진이나 작가들은 더 이상 인간미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설득할 능력을 소진했다고 볼 수 있다.

막장 드라마에서 형제 자매 등 가족 간의 얽힌 갈등, 어설프면서도 끔찍한, 현실감 떨어지는 살해나 자살 사건 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채우지 못한 욕망이나 대중 본인이 하기 힘든 시도에 대한 대리만족은 묘한 우월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경쟁하듯 간통과 선정성 코드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잠깐 흥미를 가질만한 쇼에 불과한 막장 드라마는 수준을 높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문제적 요소를 배제해야 하지만, 동시에 장르의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가족들의 화합과 희망을 다루는 따뜻한 드라마들에 대한 갈망은 크고 작은 변화들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 드라마 <달래 된, 장국>
끝 보이는 ‘막장’, 억지 대신 진정성 담은 ‘홈드라마’ 강세

달라지는 드라마 판도에서는 대본의 질 변화 역시 긍정적인 전환점이 오기를 기대해봐야 한다. 막장 드라마가 외면 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중의 문학적, 문화적 수준을 고려하지 못한 일명 ‘쓰레기 대본’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즐기려는 시청자의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엉성한 내러티브와 감흥 없는 가벼운 대사들은 그 자체로 비상식적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해 왔다.
단순한 즐길거리로써 잠시 붐을 일으켰던 충격적 막장 드라마들이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드라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탄탄한 ‘대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종영한 <사랑해서 남주나>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특별한 로맨스를 꿈꾸는 이들과, 좌충우돌하며 성장해 나가는 청춘들의 사랑, 가족 이야기를 다뤘다. 황혼 재혼이라는 사회적 소재를 둘러싼 갈등 요소를 넣었고 나아가 재혼 가정의 실상에 대해서도 세세히 보여줬다. 이 드라마는 ‘행복’이라는 주제로 기획됐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 하지만 혼자는 행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족을 이루며 산다. 우리가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 가족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황혼재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려냈다”는 제작 관계자의 변은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의 화두 역시 ‘가족’과 ‘행복’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일명 ‘유기농 홈 드라마’라 불리는 <달래 된, 장국>은 현재 방영 중인 대표적인 막장 요소 없는 착한 드라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고3 커플이었던 준수와 장국이 하룻밤 불장난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이로 인해 두 집안이 12년 만에 다시 재회하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 드라마는 다채로운 볼거리와 현실감 있는 탄탄한 스토리를 내세우며 호평 받고 있다.
주인공 배우 천호진은 “진정한 홈드라마를 해보고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며 “저녁밥 먹으면서 가족들끼리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배종옥은 “달래된장국처럼 상큼하고 구수하고 맛있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제 오래 묵은 향이 느껴지는, 온정과 가치가 공존하는 ‘진국’ 드라마들의 훈훈한 귀환을 기대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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