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2:45 (목)
 실시간뉴스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서현진의 달라진 인생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서현진의 달라진 인생
  • 도수라
  • 승인 2014.05.21 05: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른에 찾아온 성장통 그리고 인생2막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아나운서 서현진도 서른의 성장통을 호되게 겪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을 접어두고 훌쩍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했던 치열한 고민들. ‘여자 서현진’이 말하는 여자 나이 서른의 의미를 들었다.

취재 도수라  | 사진 양우영 기자, 서현진 제공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라면은 덜 익어야 맛있고, 신발은 새 신이 예쁘고, 여자는 젊어야 아름답다고. 아니, 그건 뭘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덜 익은 라면은 밀가루 냄새가 나고, 새 신발을 신으면 곧 발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 여자 나이 서른은 넘어야 그래도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냥 좋던 20대를 지나 들어선 서른. 이제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는데 돌연 ‘이 길이 내 길인가’하는 고민에 휩싸인다. 친구들은 하나둘 남자 손을 잡고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나는데 그 길 위에 던져진 꽃다발만 벌써 몇 개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삐거덕 거리는 삶이 낯설기만 하다.
이런 서른의 성장통을 겪은 여자야말로 비로소 세상을 좀 안다. 그러니 여자 나이 서른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1라운드보다 좀 더 화끈한 인생의 2라운드가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한줌의 재가 된 ‘멋진 서른 맞기 프로젝트’

서현진에게 서른은 완성의 나이였다. 서른이 되면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의 퍼즐이 맞춰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도 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서른이 되자,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는 생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사실 겸손한 척하며 아니라고는 했지만 늘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나는 굉장히 특별하고 앞으로도 특별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요. 그런데 서른이 되고 나니 시험에 들게 되더라고요. 일을 계속 해야 할까, 남자를 찾아서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세상에 나이가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자 나이 서른은 굉장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화여대 무용학과에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라는 수식어를 달고 스물다섯 살 어린 나이에 화려하게 등장한 그녀였다. 그러니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른이 되고 보니 특별하다고 여기던 지금까지의 인생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그 순간을 ‘지금껏 둥둥 떠다니다가 비로소 땅을 밟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더 늙기 전에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서른 즈음에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이루지 못했던 게 오히려 제 인생에 있어서는 인간적으로 훨씬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모든 게 생각대로 풀렸더라면 좀 재수 없는 사람이 됐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많은 고민이 한꺼번에 닥치자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무게가 됐다. 그리고 그쯤 방송에 대한 위기의식도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나운서가 나와 맞는 직업이긴 한 걸까’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남들이 보기에는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스로는 이미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장 먼저 느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지 버티고 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계속 가다가는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능력 있고 파릇파릇하기까지 한 후배들은 끊임없이 치고 올라왔다. 게다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입사 5년 차 즈음 겪는다는 직업에 대한 권태기도 찾아왔다.
현실을 바꾸고픈 의지가 불타올랐고, 더 이상 이대로 지속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길로 유학을 결심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외쳤다. 남들 눈에 그녀는 여전히 이화여대 무용학과, 미스코리아 출신의 아나운서였고, 별 문제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속으로는 한없이 가슴을 졸이던 그녀였다.
“물론 저도 많은 고민을 했죠. 방송이라는 분야가 한두 달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금방 잊히는 곳이잖아요. 그럼 조금 늦춰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봤자 시간만 지체하는 꼴이 될 것 같았어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 잊힌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죠. 지금 만약 그때와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하면 유학은 정말 못갈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유학을 감으로써 남들보다 성공에 조금 더 늦게 도달할지는 모르나, 잊어버리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겨우 서른, 마라톤에서는 중간 지점에도 오지 못한 시점이다.
그러니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자기 페이스를 따라 가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현명한 방법이다. 서른에 접어들고 숱한 고민과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던 그녀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말이 불현듯 스쳤다. 더 이상은 나이에 얽매여 불행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작은 경종이 울렸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시기, 서른

서른한 살, 유학길을 떠나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2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웬만해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더불어 조금이나마 인생을 더 알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저널리즘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그녀는 아나운서 서현진도, 서른의 서현진도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 온 동양인 학생 서현진이었다. 나이를 인생의 척도라 생각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런 감흥도 잠시, 외국 생활은 모든 것이 실수투성이였고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 자체도 고생이었지만 지하철 타는 것부터 약속 장소에 찾아가는 것까지 마치 일곱 살짜리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저널리즘 스쿨이다 보니 취재를 자주 가고는 했는데 애들이 ‘우리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고 말하면 저는 어떻게 찾아갈지를 생각하느라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어요. 수업시간에 하는 말도 도무지 못 알아듣겠고 마켓 한 번 가는 것도 버겁기만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제가 좀 불쌍해 보이는데요웃음)”
일상 하나하나가 전투였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기댈 만한 안식처도 없었다. 마켓 한 번 가는 데도 진땀을 뺐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강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곤혹스러웠던 그때의 일이 지금은 추억이 됐다. 웃음부터 터지는 에피소드도 한 가득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몸에 딱 달라붙는 신상 블랙 원피스에 스틸레토 힐과 손바닥만 한 체인백을 손에 들고 학교에 가 모든 이목을 집중시킨 첫 수업시간은 이제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진상이었죠. 그때 제 모습은 스스로가 봐도 학교 강의실보다는 강남 어느 호텔 커피숍의 맞선 자리나 잘 나가는 회사원 남자친구의 비즈니스 칵테일파티에 더 어울렸어요. 물론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저뿐만은 아니었는지 교실에 앉은 학생들이 ‘넌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표정으로 흘끔거리더라고요.”
그렇게 2년 쯤 현실을 떠나 보니 서른 즈음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많은 고민거리들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 솔직히 말하면 고민을 풀었다기보다 좀 더 ‘쿨’해지기로 했다. 욕심이나 아집 같은 것도 많이 버렸다. 세상은 의지대로 안 되는 것도 있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한번 마음먹은 것에 있어서는 꼭 성취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그녀가 변한 것이다.
“예전에는 고민이 생기면 그 고민이 풀릴 때까지 다른 일을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고민을 막 하다가도 졸리면 ‘잠 좀 자다가 다시 고민 할래’, 주말이 되면 ‘좀 놀다가 다시 고민 할래’ 이런 식으로 현실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오늘 모든 열과 성을 다해 고민을 해결해도 내일은 또 다른 고민거리가 기다린다. 인생은 결국 고민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고민하는데 온 정신과 체력을 쏟기보다 현실을 즐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여가활동의 여왕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독서, 영화 감상부터 등산과 수영까지, 조만간에는 스쿠버다이빙도 배울 계획이라고 한다.

 
여자, 열정적인 인생 2막을 즐겨라

하지만 즐겁고 바쁘게 사는 그녀도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문득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제 결혼하고 싶어요. 사실 유학을 갔다 와도 주변에 남자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아니더라고요. 우선 나이가 있으니까 주변에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결혼을 했고요. 사실 소개팅도 잘하는 편인데 아직 인연을 못 만났어요. 저는 종소리 같은 게 울리길 기다리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스쿠버다이빙 배우면서 ‘어디 좋은 남자 없나’ 찾아봐야겠어요(웃음).”
하루 빨리 인연을 만나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요즘 주변에서 꽤나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기 위해 목을 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격 맞고 웃음 코드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몰라도 나이에 쫓기듯이, 혹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여성 방송인들이 직장인으로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많은 아나운서들이 오랫동안 이 직업을 유지하지 못하고 떠나죠.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결혼에 상관없이요.”
그녀는 가끔 결혼 후에 직장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을 만나면 ‘너 아직도 일하니’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마치 ‘일하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투의 말을 들을 때면 그녀는 오히려 한국 여성들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일은 젊을 때만 잠깐 하는 것도, 결혼한 이후에는 과감하게 벗어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닌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렇기에 늘 더 잘하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것 같아요. 사회로부터 강요받는 게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들었어요. 저는 좀 달라지고 싶어요. 저부터라도 다르게 산다면 제 후배들은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요? 미래를 위한 자갈돌이 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녀는 남들이 정해놓은 결혼 시기를 놓친 것도, 유학을 간 것도, 그 시기 치열한 고민들에 휩싸여 지낸 것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2년간의 공백 후 브라운관에 돌아온 그녀에게서 늘어난 주름과 패인 볼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치열했던 지난 2년 동안 그녀가 좀 더 성장했음을 알아봐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쿨해지기로 했어요. 인생의 주인공이 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 거죠. 누군가를 위해서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주인공인들 조연인들, 이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긴 인생을 얼마나 즐겁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죠.”

 
그녀의 말처럼 주인공만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그 어디에도 없다.
조연이 있기에 주인공이 빛날 수 있고, 드라마가 전개된다. 여자 나이 서른, 이제 인생의 열정적인 제2라운드를 시작하는 시기다. 그러니 스타트 라인에 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와 격려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생이라는 그라운드에서는 결코 ‘루저’가 없다는 것. 그저 모두가 각자 인생의 ‘위너’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