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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들고 청년과 만난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
‘인문학’ 들고 청년과 만난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5.23 0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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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는 인문학적 소양과 통찰력을 길러라”

 
청년실업 100만 시대다. 경쟁에 내몰린 취업 준비생들은 하나같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으나 정작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따로 있었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청년들 앞에 서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경영이념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한 그는 청년들 앞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3가지’를 제시했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신세계 그룹 제공

지난 4월 8일 연세대학교 대강당 앞은 많은 대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공부와 과제로 한창 바쁜 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입장을 한 시간 가까이 앞둔 상황이었다. 이 인파는 신세계그룹에서 준비한 문화행사 ‘지식향연’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건축가 승효상, 문명탐험가 송동훈 등 명연사의 인문학 강연에 최근 주가를 올리는 팝아티스트 윤한, 국악소녀 송소희의 공연까지 곁들여지니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행사가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인문학 없는 스펙은 ‘모래성’

그가 대학생 강연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부회장은 강연 내내 자신감 있고 위트 있는 말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학생들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그의 사진을 찍으며 반겼다. 정 부회장이 대학생들에게 건넨 첫 인사말은 “안녕들 하십니까”였다.
“기업의 경영자로 있으면서 비즈니스와 관련된 공식 석상이나 우리 회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회사 밖으로 나와서 많은 분들께 말씀을 드리게 된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아요. 특히 젊은 학생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니 굉장히 긴장도 되고, 또 아주 흥분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제가 교수님들처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또 아나운서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몇 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느꼈던 점, 그리고 매년 많은 사원을 뽑고 또 그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생각했던 점들을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 부회장은 “지금은 인문학이 절실한 시대”라며 “기업에서도 인문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간 ‘How-to’에 집중하던 우리는 이제 어려운 질문인 ‘Why’, ‘What’에 집중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관심과 이해가 바로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스펙이 좋은 사람들을 사원으로 뽑았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고 학생들은 스펙 쌓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앞선 조직들에서 내놓은 예측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을 ‘인재’라 불렀죠.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나 급변하고 있어요.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하나의 답은 존재하지 않게 돼버린 거죠. 새로운 답을 만들어 가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합니다. 이것이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룹 경영이념 중심에 ‘사람’ 있다

그는 이날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신세계그룹의 신입사원 채용 기준도 털어놨다. 그는 “신입사원 면접에 들어가 보면 화려한 스펙의 지원자들이 모두 앵무새처럼 모범답안만을 말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전하는 인문학적 소양만 조금 더 갖춘다면, 그 좋은 스펙이 참으로 빛나게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을 자주 갖게 됩니다. 누가 취업준비가 잘 돼 가느냐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나요? 필요한 스펙의 높은 점수인가요? 기업정보나 경쟁률을 파악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자기소개서를 멋지게 써둔 것일 까요? 심지어 면접 때 입을 의상 준비를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이런 면접 준비만 한다면 행여 어디에 입사를 한다고 해도 또 다시 면접을 봐야 할 것입니다.”
그는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소신과 주관을 지닌 구성원들이 다양한 의견과 토론 속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며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단순해 보이는 스마트폰 디자인 안에도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패턴, 직관에 대한 통찰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라는 기술공학을 대표하는 기업 ‘구글’도 채용 면접 시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평가하고 선발하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물론 국내 유수의 기업, 글로벌 기업들 모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기업의 조직, 제품 개발과 디자인, 마케팅 모든 분야에 걸쳐 인문학적 접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날 자신이 직접 강연에 나선 것은 “신세계그룹의 경영이념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문, 예술, 패션을 통해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경영이념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제가 여러분에게 스펙을 넘어선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 취업의 트렌드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기업에 취직하든, 아니면 창업을 하든지 인문학에 바탕을 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님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김태길 교수님은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이 아닙니다. 김 교수님은 철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저는 이 책을 그 어떤 경영서적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제 자자신의 삶의 태도나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문학 소양을 넓히는 3가지 제언

그는 인문학적 사고력을 갖추기 위해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는 고전을 읽는 것은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인내를 만들고 성숙시킨다고 했다.
“고전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보지 말고 캐릭터를 보며 자신을 자주 반추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요즘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해진 명작 <레 미제라블>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대게 장발장의 기구한 스토리에만 주목을 하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장발장과 자신을 비교해 보고 제라드 경위에 자신을 대입해 보면서 그 사람의 철학과 나의 철학,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나의 태도, 이런 것들을 비교해 보고 성찰해 본다면 고전을 통해서 훨씬 넓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살피는 것’을 꼽았다. 현실에 쫓겨 스펙에만 매달리다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을 지나치지 말고 인문학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혀 주위를 둘러보라는 의미였다. 그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를 함께 소개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 시인의 <그 꽃>)

셋째로는 “들여다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직접 낭송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중)

그는 “대추가 몇 개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고뇌와 외로움을 찾고,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문학은 결코 취업을 위한 도구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향기롭게 할 것이며,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여러분의 중심을 잡아주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그는 혼란의 시대에 올바른 가치관과 남다른 생각을 갖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리더들에게 ‘청년 영웅’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했다.
“신세계에서 준비한 인문학 청년인재 양성 프로젝트 ‘지식향연’을 통해 청년 영웅들이 튼튼한 뿌리를 갖추며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합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전국 열 개 대학에서 ‘지식향연’이 펼쳐지게 되는데, 저는 이 지식향연을 통해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인문학적 지혜와 성찰을 나누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찾게 되길 바랍니다.”

신세계그룹, 한국의 메디치 가문 되겠다

이날 강연에 앞서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이 ‘한국의 메디치 가문’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메디치가(家)’는 15~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약 300년간 지속적으로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후원해 르네상스가 꽃 피우는데 기여한 대상인 가문이다. 정 부회장은 인문학 전파에 매년 20억원을 지원하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지속해 메디치 가문의 뒤를 이을 계획이다.
그는 지난 3월 18일 매년 10억원을 지원해 문화 소외계층 대상 무료 클래식 콘서트를 총 54회에 걸쳐 전국 6개 신세계백화점 문화홀에서 개최하기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유통업의 미래는 시장점유율인 마켓셰어보다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셰어(life share)를 높이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신세계그룹이 이번에 매년 20억원 정도씩 지원하는 인문학 전파는 ▷인문학 소양을 갖춘 미래의 예비 리더 양성 ▷전 국민 대상 인문학 지식 나눔 ▷우수 인문학 콘텐츠 발굴·전파 등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4월 8일 첫 회를 시작한 ‘지식향연’ 릴레이 콘서트도 이 사업의 일환이다.
‘지식향연’은 5~6월에 이화여대·한국외국어대·성균관대·충남대·부산대·제주대 등 전국 10개 대학에서 대학생 1만2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신세계는 이와 함께 대장정에 참가한 대학생 가운데 더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를 하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인문학 청년 영웅’에 도전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청년 영웅에 선발되면 프랑스,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기회와 입사 시 특전을 부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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