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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로 본 잔혹 동화의 낭만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로 본 잔혹 동화의 낭만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5.28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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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마법 같은 환상을 심어줬던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어쩌면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파블로 베르헤르 감독)는 불편하고 낯선 영화일 수도 있다.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리얼한 3D 기술도, 매혹적인 컬러도 없지만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간 할리우드 드림이 선사해 왔던 허무한 카타르시스를 전복시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 영화에서 보여주는 잔혹함이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글 이시종 기자 | 사진 (주)영화사백두대간

투우사의 딸로 태어나 사디스트 새엄마의 학대를 받던 소녀가 죽을 위기를 겪는다. 그 뒤 소녀는 왕자의 키스를 받아 행복하게 살았을까.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파블로 베르헤르 감독)는 기이하고 우아하며 가혹한 동화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소 잔혹하지만 이런 잔인함은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법 같은 환상을 심어줬던 동화는 일시적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환각제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현실에서는 꿈꿀 수 없는 세계를 영화로나마 동경해 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 잔혹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매력은 그간 할리우드 드림이 선사해 왔던 허무한 카타르시스를 전복시키는 데 있다.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는 불온하고 매혹적인 스페인풍 백설공주 외전이다.

불온하고 매혹적인 스페인 풍 <백설공주> 외전

극의 내용은 관객에게 익숙한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 이야기를 기본 구성으로 차용했다. 배경은 1920년대 스페인 세비야로 옮겨졌고, 백설공주는 ‘투우사의 딸’이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안토니오 비얄타(다니엘 히메네즈 카초 분)’의 딸 ‘카르멘(마카레나 가르시아 분)’은 제 운명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왕자만을 기다리는 전형적 공주가 아닌, 자신 앞에 놓인 온갖 비극을 용기로 극복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재해석된 것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직업 투우사를 카르멘이 택하게 된다는 설정 역시 독자적인 캐릭터 해석의 연장선에 있다. 계모의 운전기사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카르멘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투우사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유랑 극단 매니저와 종신 노예 계약을 맺게 된다는 전개도 낯설지 않다. 소위 말하는 강자의 ‘갑질’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심술궂은 난쟁이의 계략으로 인해 제 몸집보다 몇 배나 더 거대한 황소를 마주하게 되는 카르멘을 보고 있노라면 통한의 슬픔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극에 비극을 거듭하는 카르멘의 인생이 현실의 굴곡진 우리 삶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멘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는 새엄마 ‘엔카르나(마리벨 베르두 분)’. 그는 소뿔에 받혀 불구가 된 안토니오 비얄타의 재산을 노리고 재혼한 악녀로 그의 딸 카르멘을 하녀로 부리며 괴롭힌다. 동화에서 백설공주의 계모가 단순히 미모에 집착하는 여성이었다면, 영화에서의 엔카르나는 최신 패션과 인테리어에 집착하는 사치와 허영 많은 현대 여성으로 그려진다.
유명인이 되고 싶은 엔카르나가 다소 과한 의상을 입고 거울을 보며 홀로 역할극을 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표독스런 표정의 엔카르나가 우스꽝스럽게 변하는 모습은 선악의 대비를 진하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 위트를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감독의 센스이기도 했다.

 
무성영화 스타일로 만들어졌기에 영화의 핵심은 빛과 그림자, 흑과 백이다. 흑백영화이기에 검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핏빛이 강렬하고도 기이한 잔상으로 남는다. 관객은 눈처럼 하얀 순결성이 아니라 가혹한 삶에 파고드는 칠흑 같은 불온함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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