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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치료 거부하고 집필 선택한 소설가 복거일
말기암 치료 거부하고 집필 선택한 소설가 복거일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5.30 0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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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면서 시인, 비평가이기도 한 복거일 작가는 간암 진단을 받고 2년 반 동안 집필활동에만 몰두했다. 최근 자전적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펴낸 복거일 작가와 볕이 좋은 한낮의 길을 함께 걸었다. 요즘의 일상을 여쭈니 언제나 그렇듯 하루를 글 쓰는 일로 시작한다고 했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복거일 작가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치료를 받지 않고 글 쓰는 일에 전념해 왔다는 사실은 여러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자전적 소설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전작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와 <보이지 않는 손>(2006)을 잇는 복거일 작가의 다른 자아이기도 한 주인공 현이립의 이야기를 다룬 3부작의 완결이다. 이 신작은 일흔이 다 되어 가는 현이립이 암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 때에 눈에 들어온 세상의 모습을 그렸다.

치료를 포기한 환자가 아니라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뿐

“세 작품 ‘현이립 3부작’은 20대, 50대, 60대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셋을 합치면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되죠.”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 복거일 작가는 이 작품을 씀으로써 자서전을 완결했다. 그가 암 진단을 받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약속했던 <역사 속의 나그네>, 그것을 어떻게 하나’였다. 독자들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16세기 조선으로 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더 이어간다는 약속을 한 지 20년이 지나 있었다. 회복이 힘든 병, 그것도 암이 말기에 가까워 왔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소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작가의 숙명이었다.
몇 년 전 어느 봄,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갓 피어난 꽃들과 하늘을 천천히 번갈아 보며 ‘이 꽃들, 이 공기를 언제 또 다시 만날꼬’하고 중얼거리던 것을 본 적이 있단 이야기를 건넸다. 복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에 걸린 사람은 내년 봄을 기약하지 못합니다. 순간순간을 강렬하게 산다고 할까, 그래요. 보통의 날들이라면 흘려보내던 일들도 이 일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릅니다. 별로 하고 싶지 않거나 구차스러운 일도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하면 좀 나아지듯이.”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복거일 작가의 얼굴은 담담하기보다는 일상적이었다. 암 치료를 병행하며 글을 계속 쓸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한쪽을 택해야만 했다. 진단을 받고 검사하는 일에 뺏기는 시간조차 작가에게는 소모적인 일이었다. 그것을 결정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았고 갈등도 없었다. 전업 작가가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계속 쓸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편이 그에게는 당연했다고.
“설령 약은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글 쓰는 것을 택한 것은 내게 옳습니다. 작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한은 길지가 않아요. 70세 정도가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한선이죠. 그 이후에는 특별한 것이 나온다고 보기 힘듭니다. 소설가라면 늘 하던 이야기를 쭉 하는 정도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그저 열심히 쓰겠다는 생각입니다.”

내일을 연연하지 않고
순간을 다행하게 여기는 작가의 일상

매 순간 절절 매는 젊은이들의 삶, 마흔이 되고 쉰의 길목에 서서도 동동거리며 울상을 짓는 우리네의 나아갈 길을 묻자 복거일 작가는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했다. 또 ‘사람이란 본래 나약한 존재’라고 덧붙였다.
“고치지 못할 병에 걸리면 삶은 모든 게 다 흔들리죠. 사람은 스스로가 상당히 오랫동안 산다는 전제 하에 살고 있는데 그 전제가 없어지니 자연히 흐트러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몰랐다면 오래 살았을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 경우도 생기죠. 내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소식을 듣고 한두 달 지나면서 조금씩 극복이 됐죠. 시를 쓰면서 나아졌어요. 시작(詩作)의 치유적인 힘에 기대서.”
시인으로 출발했던 복거일 작가의 이 시기의 시들은 신작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 여러 편 실려 있다.
“오늘 내가 글을 쓸 수 있으면 다행이고 내일 또 쓸 수 있다면 더 다행이죠. 사는 것이 그래요. 너무 앞서서 보려고 하고 앞날을 미리 생각하며 사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갈 길을 미리 다 안다는 것이 사는데 도움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같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죽는 법이 없다. 복거일 작가는 ‘나는 죽음에 대해서 특별히 다루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사는 것이 중요하죠. 살 길을 가리켜야지 죽을 길을 말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닙니까.”
그런 그는 ‘살 날을 얼마 안 남기니 더 강렬하게 살게 된다’고 덧붙였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다 보면 삶을 좀 더 새롭게 음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는 맛은 적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99세, 100세까지 팔팔하게 산다는 것이 허망할 뿐이라는 말의 끝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여전한 ‘삶’에 대한 화두

복거일 작가가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한 독자는 인터넷에 ‘그러면 <역사 속의 나그네>는’이라는 댓글을 올렸다. 독자들과의 오랜 약속에 대해 ‘다 지키지 못했어도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으니 조금은 가볍다’는 복거일 작가. <역사 속의 나그네>는 총 6권으로 마무리돼 올가을 출간 예정이다. 나머지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약속을 다 지킨 것인데도 ‘시늉’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긴 시간을 기다리게 했던 날들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즐거워요. 신병, 보충병들이 인생에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부상병이라 후송되고 있으니 그들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맞이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죠.”
종종거리며 장난치는 꼬마들을 만나자 복거일 작가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는 여전히 새롭고 즐거운 것들이 많아 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재차 물었다.
“무언가 이루고 싶다면 재능과 노력만큼 스스로의 가치를 확신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는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써 두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 운이라는 것은 애초에 작용할 여지가 없었겠죠. 행운이 작용할 여지를 만들어 두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을 이뤄내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신을 믿고 있어요. 그것 자체가 재능이에요. 창조적인 일을 할 때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불운 또는 오해, 몰이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창조적인 능력과 함께 그것을 스스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합쳐지면 비로소 무언가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음이 닥쳤음을 알면 기습당한 느낌이 들지 모른다.
‘기습당한 군대의 장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후위작전을 해야 하나’ 이내 깨닫는다, 비유가 잘못되었음을.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죽음의 군사는 없다. 죽음은 실체가 없다. 목숨이 있을 뿐, 목숨이 끝나가는 것일 뿐.
-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제21장 마지막 봄의 마지막 걱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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