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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자 최초로 일본 종합대학 총장이 되다
한국 국적자 최초로 일본 종합대학 총장이 되다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5.30 0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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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의 심우(心友) 예찬

 
한국 국적의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가 일본 사립 종합대학인 세이가쿠인대학교 학장에 취임했다. 한국 국적자가 일본 4년제 종합대학의 학장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임사에서 강 신임학장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 친구를 만나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및 자료제공 일본 세이가쿠인대학교

1950년대 재일 한국인 2세로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출생한 강상중 학장(한국 대학의 총장)은 1998년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정교수에 임명되어 큰 화제를 낳았다. 이후 15년간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와 정보학연구소 교수, 그리고 현대한국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살아야 하는 이유>, <도쿄 산책자>, <어머니> 등의 책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작년에 발표한 <마음>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등 강상중 총장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의 필력을 재차 확인시켰다. 지난 4월 1일 취임식을 통해 세이가쿠인대학교의 제6대 학장으로 공식 임명(5년 임기)된 강상중 교수는 학장 임직식 및 2014학년도 세이가쿠인대학 대학원 입학식을 통해 ‘우애야말로 희망’이라는 주제로 토대로 특별한 연설을 남겼다.

한 번뿐인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세이가쿠인대학교의 제6대 학장으로 대학원 신입생들 앞에 선 강상중 교수는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연단에 선 강 신임학장은 입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 후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감정을 언급하며 앞에 있는 신입생들과 자신이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했다.
“여러분은 입학식을 통해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환갑의 나이를 지났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신입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학장으로서 첫 연설이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도 매우 긴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불안과 기대를 갖고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심은 겸양의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미약할 수도 있다’는 말은 배움을 대하는 첫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강 학장은 지금 당장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매 순간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면 배움의 의미는 날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앞으로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대학에 들어갈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입학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늘부터 세이가쿠인대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을 통해 배움의 의미를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하고 하루 1분 1초를 열심히 살아간다면 배움의 목표와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강 학장은 한 지인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많은 신입생들이 그의 앞에 있었지만, 마치 오랜만에 만난 인생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듯 형식적이고 피상적이지 않은 연설문이 인상적이었다.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다 나중에 캐스터가 된 치쿠시 테츠야라는 분과 생전 교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여행의 도중>이라는 책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하는데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이 그 책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중에 아주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테니슨이 쓴 문구로 ‘나란 인간은 지금까지 건너 온 모든 부분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제가 치쿠시 씨에게 ‘왜 이 문구가 좋냐’고 묻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친구와 만나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매우 감동했고, 저 자신도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강상중 학장이 신입생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모습
대학에서 심우(心友)를 만나 변화한 인생

강 학장은 대학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 ‘결코 우수하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불안으로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항상 성을 쌓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학생이었다고 털어놨다.
“40년 전 대학에 다니기 위해 규슈의 벽촌에서 도쿄로 나와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당황했습니다. 행복인지 불행인지 나는 결코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없었습니다.당시 나는 나만의 성을 쌓아 그 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것이 무서웠고 싫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머뭇거리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접근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강 학장에게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마음의 친구, 즉 심우(心友)였다. 가족이나 애인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들을 마음의 친구에게 털어놓게 되면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기만의 성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청춘들에게 졸업 후 사회 진출에 대한 고민보다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마음의 친구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나는 불행하게도 고등학교 때까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들어가 처음으로 심우를 만났습니다. 이전까지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했지만, 친구는 내가 성에서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심우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둘도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아주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저는 감히 ‘사회는 엄격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대학에서 보내는 4년간 자신의 평생 친구를 만나 삶과 희망의 원천이 되는 인연을 찾게 되길 바랍니다.”
강 학장은 취임사의 상당량을 친구의 중요성을 설파하는데 할애했다. 우정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작지만 큰 단서를 발견했고, 친구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그의 경험담은 ‘반드시 친구를 사귀어라’는 짧은 훈계보다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 친구는 49세의 나이에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나를 위해 지금도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정을 통해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을 아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친구와 밤새도록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특히 그 친구는 내게 들었던 내용을 기록해 자신의 관 속에 넣어둔 채 영면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친구는 아직도 나에게 잃지 않은 존재이자 지금 내가 여기에 서서 여러분에게 말하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강 학장은 자신의 틀을 깨고 싶다면 머뭇거리고 기다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에게 반 발짝 먼저 다가가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될 심우를 만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 중 몇 명은 여전히 자신의 성 밖으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 보라도 좋으니 자신의 성에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정신과도 일맥상통한 생활 태도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학교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등장한 강상중 학장의 모습
대학생활은 사회에서 결실을 얻기 위한 중요한 기반

강 학장은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구체화했다. 기독교 정신을 설립 이념으로 하는 세이가쿠인대학교의 학장으로서 취임사 말미를 성경 말씀으로 정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의 신념이 성경에 근거한 것임을 알려줌으로써 학생들의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요한1서 2장 10절~11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심우(心友), 즉 진정으로 말할 친구가 있으면 빛 속에 있게 될 것이고 다양한 고민은 반드시 사라질 것입니다.”
장차 사회를 주도할 대학 구성원들에게 그는 대학 공부가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는 큰 모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대학 생활 동안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응원의 메시지로 신입생들의 건승을 기원했다.
“여러분은 4년 후 이 장소에서 졸업식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사회에 자립해 나간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에서 공부해서 사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큰 모종이 되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 생계를 얻었다는 실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해 나가고 싶습니다.”
재일 정치학자로 주목을 받은 강상중 학장은 일본의 종합대학 총장으로 막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간 재일교포의 정체성과 한일관계 등 다방면에 걸쳐 솔직한 견해들을 피력해 온 그가 앞으로 한 대학의 수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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