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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 과거의 가족사 공개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 과거의 가족사 공개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06.02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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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미안한 마음-공작정치에 맞서겠다' 기자회견
▲ 사진 YTN 방송 캡처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이 “내 아버지 고승덕은 서울시교육감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는 글을 SNS에 올려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승덕 후보는 1일 과거의 아픈 가족사를 상세히 밝히며 딸에게 미안한 마음과 상대 후보의 야합정치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공개했다.

그동안 이혼의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 함구해왔던 고승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과거의 가족사를 세세히 밝힘으로써 선거완주 의지를 보였다. 다음은 고승덕 후보의 기자회견문 전문과 그의 딸이 올린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을 공개한다.

<서울시교육감 고승덕 후보 기자회견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서울시민 여러분.
이번 선거가 시작되면서 저는 가족사에 대해 여러 번 얘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아픈 가족사를 선거에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조희연 후보, 문용린 후보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페이스북에 딸의 글이 올라왔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글을 믿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에도 딸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바 있으며,  그런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딸이 페이스북상에서 본인의 글이라고 주장하기에 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며,  딸이 아버지를 향해 이러한 글을 쓴데 대해 세세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되었다고 따지기 보다는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서울 시민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그동안 ‘아픈 가족사’라고만 표현했던 부분에 대해 이제 소상히 말씀드려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대중에 공개한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만들기에 그동안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실을 얘기하고, 그것으로 서울시민 여러분께 판단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차한 얘기를 구구절절하게 한다고 나무라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만큼 저의 이야기가 깁니다.

우선 자녀들과 헤어진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포스코 회장 겸 정계거물이었던 박태준회장의 둘째 사위였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92년 한국 귀국 후 자녀를 한국에서 키우기를 원하는 저와 미국시민으로 키우고자 하는 전처 사이에 계속된 갈등이 있었습니다.  전처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도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면서 계속 미국에 같이 가서 살 것을 종용했습니다.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불화가 이어지던 중 98년 갑자기  “내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잘 키우겠다”고 말하면서 양육권을 달라고 한 후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결별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딸에게 자식의 양육권을 빼앗긴 아버지로서 많은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조희연 후보가 제가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허위주장을 했을 때 보여드렸듯이 저는 92년 귀국 후  2010년 단 한차례 하와이를 간 외에 미국땅을 밟은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석,박사에 변호사 생활까지 한 사람이 20년 넘게 미국본토를 밟지 않은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길래 제 딸과 아들을 빼앗아갔나 하는 생각에 저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딸이 한국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는 학부모행사에도 참석했었고, 아버지로서 행복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전처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미국으로 데리고 떠난 후 저는 미국에 가는 것을 거부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몇 년에 한번 한국에 들어올 때 만났습니다.  딸과는 가끔  전화를 하거나 문자, 카톡을 주고 받아왔습니다. 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딸과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듯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잡고 싶습니다. 

저는 이혼 과정에서 부부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를 넘겨주고 빈털터리가 되었고, 그 이후 전처는 뉴저지에 콘도 2채를 사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호화주택을 매입하기도 하였습니다. 1993년 당시 박태준회장은 360억원의 재산으로 63억의 증여세를 낸 바 있습니다 

저는 2002년까지 4~5년의 사실상 이혼상태를 거치면서 한국에 남아 외롭게 살다가 2004년 평범한 집안 출신의 경향신문 여기자였던 지금의 아내와 재혼했습니다. 슬하에 자녀는 없지만 원만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제 선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99년에  한나라당 보궐선거로 공천을 받았지만 반납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저의 장인이자 집권여당 자민련의 총재였던 박태준 포스코 회장 측의 회유와 압력을 받고 납치되다시피해서 기자회견장에 끌려갔습니다. 처가가 사위에게 신변위협을 하는 일이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 일어났고, 당시 저는 공천반납으로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저는 서울시교육감후보에 출마했습니다. 그리고 선거 막바지에 딸이 페이스북에 “아버지는 서울시 교육감 자격이 없다”라는 글을 올리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일부 언론에 고 박태준회장의 장남 박성빈씨가 문용린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에 있는 조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고승덕과 싸워줘서 고맙다. 이게 우리 집단의 뜻이다”고 강조하였다고 보도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아이들 이모, 사촌 등 전처가족들이 딸의 글에 격려를 보냈습니다. 이 상황은 저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문용린 후보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부분도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문후보를 추대한 올바른 교육감 추대회의의 실무책임자이면서 현재 문후보 캠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이희범 사무총장(공교육살리기 학부모연합 )이 4일 전부터 여러 보수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고승덕은 교육감이 절대로 안됩니다 큰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됩니다” 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박성빈씨가 문용린 후보에게 전화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용린 후보와 박태준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같은 시기에 교육부장관과 총리로 재임하였고,  박태준 회장 사망 시 문용린 후보가 장례위원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 박성빈씨와 문용린 후보는  2012년 2월부터 1년간 함께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로 함께 재직했습니다. 둘은 2대째 내려오는 끈끈한 관계가 있고, 고승덕을 적으로 생각한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딸의 글이 고 박태준 회장의 아들과 문후보의 야합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정황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는 ‘아픈 가족사’의 진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고시3관왕,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박태준가에서 저는 평범한 집안의 자수성가한 아들이었고,  한국에서 자녀를 키울 것을 고집하는 답답한 촌놈이었습니다.  제가 박태준가에 미움을 받게 된 이유는 나이든 부모가 있는  한국에서 살기를 원해 영주권을 뿌리치고 귀국했고, 다시 미국에 나가 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소박한 소망이 재벌가에서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또 다시 공작정치의 폭풍 속에 외로이 서있습니다.  저의 딸이 어떠한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지는 소상히 알아보겠습니다. 그 아이가 가졌을 저에 대한 미움에 대해서도 저의 잘못임을 인정하겠습니다. 딸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저의 자녀를 이용해 저를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공작정치에는 맞서겠습니다.  한때 재벌가의 사위였던 대가를 이렇게 혹독하게 치르면서, 저는 재벌가 집안과의 결혼이 낳을 결과에 대해 부주의했던 저의 젊은 날을 반성합니다.

그동안 저는 아이를 빼앗긴 아픔 때문에 오래 전부터 청소년활동과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서울의 교육을 과외나 유학이 필요 없도록  바꾸고 싶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제 말의 진심을 조금은 더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

저는 며칠 전 문용린 후보가 관권선거를 하며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을 괴롭히고, 선관위와 법원에서 허위사실유포에 해당한다고 한 단일후보 명칭을 사용하는 등 불법선거를 하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습니다. 

문용린 후보가 관권선거 뿐 아니라 공작정치에도 능하다는 것을 안 이상, 더더욱 이런 후보에게 서울의 교육을 맡길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저의 아픈 가족사를 선거에 이용하지 말아주십시오.

서울 시민 여러분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

2014년 6월 1일

고 승 덕

<고승덕 후보의 딸 고희경(고캔디)씨가 올린 원문 글>

To the Citizens of Seoul,

I am not a citizen of your city, but I write you today out of urgency and dire concern for the future of your city’s education system.

My name is Candy Koh, once known as Hee Kyung Koh (고희경) during my residence in South Korea from the year 1991 to 1998. I am the first of two children between Yooah Park and Seung Duk Koh, a candidate for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n the current elections. When his candidacy came to my attention recently, I could not, in good conscience, stay silent as his child. Seoul’s citizens deserve know the truth about the person they may be choosing to represent and be in charge of Seoul’s education system: Seung Duk Koh never partook in the education of his own children.

I was born in Cambridge, Massachusetts in 1987 while my mother and Koh were still married. After my brother was born in New Jersey in 1991, we all moved to Korea. I have next to no memories of his being present to teach me or my brother anything, even when I was old enough to have such memories. When my mother brought me and my brother to the U.S. to send us to a school in New York, Koh stayed in Korea and also decided to stop contacting us altogether.

I was still only 11 years old when I had to get used to a life without a father. I missed out on Father’s Day every year. I hated it when people asked me where my father was or what he did and I eventually began to reply that I do not know, because he never told me. Despite the existence of a telephone and Internet, Koh never called me or my brother to ask how we were doing. Asking for a call or gifts on our birthday was not even in the scope of our imagination because he did not acknowledge his own children’s existence. Of course he never supported our education in any way, including financially.

Despite this, I was able to go through college and graduate school as one of the top students in my class. To better apply my interest in public service, I also plan to begin law school in the fall with a merit scholarship. I am proud that I have managed to achieve this much without my biological father. I could not have done it without my mother who single-handedly raised both her children or my maternal grandfather?my mother’s father?who provided me the psychological support of a father throughout my life until he passed.

Meanwhile as I grew up in the U.S., I saw through the Korean media that Koh would give lectures to children on how to study or how to “succeed.” I also saw that he spoke to parents on how best to educate their children. When I first saw the latter in the early 2000s, I became angry, as he did not educate his own children, but rather completely disregarded them. However, I was still a child, barely in my teens, and I was also living in the U.S. What could I do? I felt that I had no choice but to keep silent. Despite seeing the praises he received from many Koreans for his achievements and so-called brilliance, I kept silent because I didn’t think my voice mattered. I am also an American and perhaps felt I had no business engaging in dialogues particular to the Korean political scene. However, Seung Duk Koh’s running for the seat as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crossing the line. For me to keep silent here would be to deceive the citizens of Seoul.

As a child he neither educated nor rarely even spoke to, I must inform the citizens of Seoul that he does not qualify for this position. If the role of a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to look after the educational policies and systems of a city, Seung Duk Koh is a stranger to this role. How can he act as the leader of education for a city when he is unwilling to teach his own flesh and blood?

Educat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It shapes people in whose hands the future lies?the future of your city, your nation, and the world. I, his own daughter, never received support from him for my own education. As a former citizen of Seoul still with many friends who reside there, I trust that you will make the right decision for the future of your city and choose a candidate better suited for the position: someone who truly cares about the Seoul’s education system and someone who begins by caring for those nearest to him, his own children.

Sincerely,

Candy Koh

<번역문>
서울 시민 여러분들께,

저는 서울 시민은 아니지만 오늘 여러분께 서울 교육의 미래에 대하여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제 이름은 캔디 고(Candy Koh)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에 살았을 때 이름은 고희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 선거에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과 박유아 사이에서 난 두 자녀 중 장녀입니다. 최근 지방 선거에서 아버지계서 교육감으로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그분의 자녀로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양심에 걸렸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께서는 혹 당선이 되면 서울 교육을 대표하고 책임질 그 분에 대해서 더 아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신의 자녀들 교육에 대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고씨가 결혼 관계에 있을 1987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캠버리지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제 남동생이 태어난 직후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저와 동생의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존재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뉴욕에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고씨는 한국에 머물렀으며 우리 모두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저는 겨우 11살 이었습니다. 매년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은 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는 것이 저는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그분과 결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모른다고 대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었지만 저나 동생에게 잘 있는지 연락 한번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후보에게 연락이나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지원이나 자녀 교육에 대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공익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번 가을에 법대에 성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피가 섞인 아버지 없이도 이만큼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나 외할아버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혼자서 두 자식을 키웠고,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심리적으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씨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성공을 하는지 강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또 그분이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아이들을 최고로 가르칠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이었는데, 저는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자기 자식도 교육시키지 않고 심지어 완벽하게 방치했으면서 어떻게. 그렇지만 저는 겨우 10대 청소년이었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침묵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한국민들이 그분이 이룬 성취와 소위 그 탁월함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미국계 한국인이고 한국 정치 현장에 특별히 관여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 직책에 출마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제가 여기서 침묵한다는 것은 서울 시민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분이 전혀 가르치지도, 그다지 말한 적도 없는 그 분의 자녀로서 저는 서울 시민 여러분께 그분은 교육감이란 직책에 자격에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한 도시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의 손에 미래가 달려 있는 사람들- 여러분 도시, 민족, 세계의 미래-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분의 딸로서 저는 그분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와 더불어 한때 서울의 시민이었던 저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직책에 보다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리라고 믿습니다. 서울 교육을진정 염려하고 후보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자녀를 돌보면서 시작할 그런 사람을 말입니다.
 

 

 

 

 



<번역문>
서울 시민 여러분들께,

저는 서울 시민은 아니지만 오늘 여러분께 서울 교육의 미래에 대하여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제 이름은 캔디 고(Candy Koh)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에 살았을 때 이름은 고희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 선거에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과 박유아 사이에서 난 두 자녀 중 장녀입니다. 최근 지방 선거에서 아버지계서 교육감으로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그분의 자녀로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양심에 걸렸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께서는 혹 당선이 되면 서울 교육을 대표하고 책임질 그 분에 대해서 더 아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신의 자녀들 교육에 대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고씨가 결혼 관계에 있을 1987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캠버리지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제 남동생이 태어난 직후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저와 동생의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존재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뉴욕에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고씨는 한국에 머물렀으며 우리 모두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저는 겨우 11살 이었습니다. 매년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은 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는 것이 저는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그분과 결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모른다고 대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었지만 저나 동생에게 잘 있는지 연락 한번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후보에게 연락이나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지원이나 자녀 교육에 대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공익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번 가을에 법대에 성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피가 섞인 아버지 없이도 이만큼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나 외할아버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혼자서 두 자식을 키웠고,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심리적으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씨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성공을 하는지 강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또 그분이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아이들을 최고로 가르칠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이었는데, 저는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자기 자식도 교육시키지 않고 심지어 완벽하게 방치했으면서 어떻게. 그렇지만 저는 겨우 10대 청소년이었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침묵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한국민들이 그분이 이룬 성취와 소위 그 탁월함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미국계 한국인이고 한국 정치 현장에 특별히 관여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 직책에 출마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제가 여기서 침묵한다는 것은 서울 시민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분이 전혀 가르치지도, 그다지 말한 적도 없는 그 분의 자녀로서 저는 서울 시민 여러분께 그분은 교육감이란 직책에 자격에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한 도시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의 손에 미래가 달려 있는 사람들- 여러분 도시, 민족, 세계의 미래-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분의 딸로서 저는 그분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와 더불어 한때 서울의 시민이었던 저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직책에 보다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리라고 믿습니다. 서울 교육을진정 염려하고 후보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자녀를 돌보면서 시작할 그런 사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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