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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출신 LG전자 조성진 사장의 성공 신화
고졸 출신 LG전자 조성진 사장의 성공 신화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6.04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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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외길인생 세탁기맨의 열정과 도전

 
학벌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LG전자 54년 역사상 첫 고졸 사장인 조성진 HA사업본부장(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1976년 고졸로 입사한 후 36년간 오로지 세탁기만 만들었다. 그가 세탁기맨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세탁기맨에서 HA사업본부장이 된 조성진 사장이 그간의 성공 스토리를 서면으로 보냈다.

취재 도수라 | 사진제공 LG전자, 서울신문

2012년 재계가 깜작 놀랄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름 아닌 고졸 출신의 조성진 세탁기 사업부장이 LG전자 HA(생활가전)사업 본부장(사장)에 내정된 것이다. 1958년 그룹설립 이후 최초의 고졸 사장이고, 업계 전체에서도 몇 안 되는 경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벌이 승진의 8할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그의 승진을 반대하거나 막는 사람은 없었다. 조 사장이 1976년 입사한 후 피땀 흘린 노력으로 LG세탁기를 세계 1위로 굳혀놓은 공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단순히 LG전자에서만 히어로가 아니다. 그의 손에서 우리나라 세탁기의 역사가 다시 써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술에 의존하던 전자동 세탁기를 100% 국산화한 데 이어 1995년부터는 유럽의 선진업체만 만들던 드럼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모터직접구동방식 시스템으로 개발하는 등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트롬 세탁기’를 만든 것도 조 사장이었다.
외길인생, “왠지 세탁기에서 인생의 승부를 내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 시설까지 마련해 놓고 불철주야 끊임없이 세탁기 연구에 인생을 걸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이 벌써 30년이다. 하지만 그는 ‘사장’이라는 지위나 ‘세탁기의 신화’라 불리는 명성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단지 욕심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탁기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뿐이다.
이런 그는 어떤 점에서 LG그룹 구본무 회장과 닮았다. 일을 추진하는 능력과 더 나은 제품을 향한 욕심이 바로 그것이다.

열정과 오기로 한 우물을 파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조성진 사장. 그의 아버지는 15세부터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온 도예가였다. 도자기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한 번 굽기 시작하면 1주일 정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목숨같이 여기던 도자기를 자식들에게 가업으로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대학에 진학한 형들은 도통 설득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업 승계자로 지목받았어요. 형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도공 되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까지만 다니길 바라셨죠. 하지만 제가 사정해 서울공고 요업과를 허락하셨어요.”
하지만 아버지에게 비밀로 하고 정작 그가 입학한 곳은 용산공고 기계과였다. 물론 얼마 못가 사실이 들통 났고, 귀향 명령이 떨어졌다. 고향에 돌아가서는 아버지 밑에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정을 붙이려고도 노력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길이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를 설득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천명(天命)이었을까. 당시 조 사장이 머물고 있던 하숙집의 주인이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양원호 교수였다. 양 교수의 부탁으로 연구실에서 잔심부름도 하고, 조교들 도우미 역할도 해가면서 시간 날 때마다 청강을 했다. 기계 동작 원리, 설계 등에 대한 기본 개념은 그때 모두 습득한 것이었다.
“교수님으로부터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계의 동작 원리, 설계에 대한 개념도 배웠고요. 이를 응용해 움직이는 제품을 만드는 일이 신기하고 재밌을 뿐 아니라 제 흥미와도 딱 맞았죠.”
1년 가까이 아버지를 설득한 결과, 용산공고 기계과에 복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76년 9월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핵심이었던 금성사에 고교 우수 장학생으로 설계전문 과정에 입사했다. 금성사는 LG전자의 시초다. 당시 금성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부문은 선풍기와 밥솥이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세탁기였다. 세탁기 보급률이 1%도 되지 않았던 시기로 모두 꺼렸지만 그만은 ‘왠지 세탁기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탁기맨으로의 인생이 시작됐다.

한국의 가전제품 역사를 쓰다

36년간 세탁기와 함께한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다시 한 번 도약했다. 1976년 사원으로 입사해 세탁기 부서에 배치받았고, 1990년대 초 세탁기 연구실장을 지냈다.
바로 직전인 1989년에는 LG전자 최고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노사분규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부동의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사업들이 반 토막 나기 시작했다. 세탁기 사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그에게 주어진 과제가 ‘1등 탈환 태스크포스 팀의 리더’였다.
“제품개발과 의사결정권도 모두 제 손에 들어왔죠. 고객 관점에서 전혀 다른 세탁기를 개발해 보자는 의지로 달려들었어요. 세탁용량, 기술방식, 디자인은 물론 프로그램까지 전혀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인공지능 세탁기’를 내놨어요.”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없어서 못 파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적자였던 회사도 흑자로 돌아왔다. ‘제품 하나가 사업 전체를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그는 제품 개발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그가 세탁기 개발을 하는 동안 안타까웠던 것은 일본에 대한 의존이었다. 세탁기 제품은 유독 일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그는 ‘탈(脫) 일본’을 결심했다. 일본 내 관련 기술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세탁기의 기본부터 다시 공부한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일본 제품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내 ‘일본을 넘어서 세계에 없는 기술을 만드는 것’으로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조 사장은 개발팀과 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 시설을 마련해 놓고 밤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기술 한 터럭이라도 귀동냥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일본 사람들에게 술을 사주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라인을 구경하기도 했죠. 당시 전자업체가 모여 있는 오사카를 주로 방문하다 보니 오사카 사투리가 익숙해져서 지금도 일본에 가면 오사카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해요.”

이렇게 개발된 기술이 DD(Direct Drive) 모터다. 모터의 힘을 세탁통에 직접 전달시켜 제품의 잦은 고장을 줄이고 세탁 시 소음, 진동을 거의 없애주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이다. 이처럼 그의 고졸 신화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 평생 세탁기만 바라보던 그가 요즘에는 외도 중이다. ‘냉장고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얼마전 출시된 ‘LG 디오스 정수기 냉장고’다. 세이빙(Saving)이 가장 큰 장점으로 정수기를 냉장고 안으로 넣어 주방공간을 획기적으로 넓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냉장고에 적용된 정수기는 동일한 성능에 기존 정수기 크기의 반에 불과하다. 가격 또한 정수기와 냉장고를 따로따로 구입할 때에 비해 14% 절감할 수 있고, 전기료도 19% 절약되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퇴근을 독려하는 독특한 사장

그는 세탁기를 사랑하는 만큼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냉장고와 세탁기 사업을 맡고 있는 LG전자의 HA사업본부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55분 조성진 사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성진입니다. 오늘은 패밀리 데이입니다. 정시 퇴근을 위해 서서히 준비하시고,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직원들이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매주 수요일만 되면 퇴근을 독려하는 그의 목소리가 사내 곳곳을 훑는다. 밀린 업무 때문에 퇴근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직원들을 퇴근시키기(?) 위함이다. 2월부터 시작한 퇴근 안내방송은 이제 HA사업본부의 새로운 문화가 됐고, 조 사장의 방송 실력도 날이 갈수록 발전 중이다. 미리 녹음된 음성을 틀기도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설치된 CCTV로 직원들을 보며 지목방송을 한다. ‘박 대리 퇴근 준비하세요. 김 차장 이제 갈 시간이에요’ 등 멘트 요령도 생겼다.
그 또한 수요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시에 퇴근한다. 사장이 퇴근을 해야 직원들이 마음놓고 퇴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업무 사정상 정시 퇴근을 못하는 부서가 있으면 다른 날을 정해서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족과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있다. 퇴근 후 마땅히 갈 곳 없는 미혼 직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는데 창원 공장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미혼 직원들의 여가를 위해 헬스장, 스크린 골프장,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에 대한 열정, 직원을 향한 남다른 애정이 있기에 LG전자에서 조성진 사장의 또 다른 별명은 행복 바이러스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만 보고 그를 향해 ‘대박 신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그가 거듭했던 수많은 연구와 실패를 알게 된다면 성공을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가 세탁기라는 한 우물을 파고든 것은 1등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그에 따른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계속 연구했고,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했죠. 그런 과정을 겪으며 결국에는 LG세탁기가 독자 기술로 전 세계 시장에서 1등을 달성했으니 저는 목표에 도달한 거예요.”
이어 그는 “기쁨은 실패를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엔지니어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권한다.
혹자는 그를 ‘1등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목표가 정해지면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은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1등에 대한 강박관념 없이는 전자제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는 무조건 열망을 가져야 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또한 새로운 열망과 도전을 시작했다.
“요새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세탁기에 파묻혀 있던 제가 이제는 냉장고, 청소기, 오븐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고, 생산 라인을 돌아보죠.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후배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어요.”
‘세탁기의 신화’ 조성진 사장의 새로운 도전. “LG전자 가정 사업 전체를 2015년까지 글로벌 1등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호언장담에 괜스레 가슴이 뛰는 것은 그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년 후 세계 무대에서 환하게 웃고 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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