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0:35 (금)
 실시간뉴스
문화비평가 동양대 진중권 교수 인터뷰
문화비평가 동양대 진중권 교수 인터뷰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6.04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화두로 던지는 미학자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구애받지 않는 ‘달변의 논객’ 진 교수의 본업은 미학자다. 미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인생을 추구하다 보니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풍자와 해학이 담긴 언어로 표현한 것이 이른바 ‘촌철살인’적 문화 비평의 출발선이었다. 우리 사회에 그의 존재는 두 가지로 의미 깊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표현의 자유를 논객으로서 직접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학술서와 대중 서적들을 발간함으로써 토대가 부족한 한국 미학사에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장소협찬 두다트 연남점(02-334-3876)

진중권 교수와 한 번쯤 통화해 본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한 가지 오해를 한다. 목소리 톤이 낮은데다 웃음기가 없는 무미건조한 말투여서 그가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사무적인 사람이거나 논단이 아닌 평상시에도 시니컬할 것 같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를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이라면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니컬한 성향이 그의 삶에 구석구석 배어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터뷰에 앞서 녹음기를 꺼내놓자 “이게 나중에 녹취록이 되는 건가”라는 뼈있는 농담으로 현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유도하거나 들어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미학의 개념과 역사를 설명하면서도 “어렵죠”라며 ‘한 타임’ 쉬어가는 배려까지….
방송에서 비춰지지 않았던 그의 진짜 모습을 보며, 누구를 만나 보기 전에는 ‘절대 편견을 갖지 말자’는 나름의 인생철학을 되뇌어 본다.

탈근대의 관점으로 바라본 동시대의 미학

그는 일주일에 세 번 교양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동양대학교 강단에 선다. 아마 그의 미학 강의나 서적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가 미학자로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간간히 언론사를 통해 미학과 관련된 칼럼을 연재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미학자로서 기고 활동도 접은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발간된 <현대미학강의>와 <앙겔루스 노부스> 개정판은 논객이 아닌 미학자로서의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1980년대 즈음해서 철학과 미학 분야에서 커다란 전환이 있었어요. 이른바 탈근대, 포스트모던이라고 말하는 의식의 변화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 프랑스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근대 철학에 대한 비판적인 재점검이 일어났어요. 미학이라는 건 철학을 토대로 해요. 철학적인 토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미학도 바뀔 수밖에 없었죠. 그런 의미에서 동시대의 미학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의 특징은 흔히 프랑스 탈근대 철학자(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이미 독일 미학자들이 했던 이야기라서 독일 미학자와 다른 한 편으로는 프랑스 미학자를 배치해서 그 연속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부분이에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에세이 형식을 빌린 <앙겔로스 노부스>는 <현대미학강의>를 집필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었고, <현대미학강의> 역시 대중서인 <미학오디세이> 3권의 예비 작업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각각의 책을 보면 쓰인 형식과 어법만 다를 뿐 근본적인 내용은 일치한다.
“<미학오디세이> 1권과 2권이 나온 지 10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탈근대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존의 미학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보기 위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들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역사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지난 분량만큼 첨가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관점이 바뀌어서 완전 새로 써야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책의 내용은 대체로 일치합니다. 또 그 책들을 보면 문제의식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과정들을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미학자로서 평소 ‘이론은 도구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론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적용에까지 이르러야 ‘진정한 앎’이라는 것이다. 즉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한 이론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를 미학적 관점으로 보면 인생에 예술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예술을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존재의 미학 혹은 실존 미학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 이론이라는 것은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죠. 대개 현실의 아주 구체적인 일들이 추상을 통해 이론적 문제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론을 가지고 적용되는 구체적인 맥락들을 찾아줘야 해요. 한마디로 도구처럼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현실에 적용시켜 보니 안 맞으면 그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고, 맞으면 그 이론을 보강하면 됩다. 그러니 현실과의 준거점 없는 이론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미학적 개념으로 실존 미학이라는 것이 있어요. 예술을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지치면 한 장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나를 위로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예술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죠. 스스로 존재를 구성할 때 참과 거짓이나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자기를 규정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미학적 관점으로 내 삶을 규정하면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나오는 거죠. 비평을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 대해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풍자와 조롱, 그리고 위트를 통해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식이죠.”
이 발언을 통해 그동안 그가 해왔던 독설 혹은 직언에 관한 오해가 하나 풀렸다. 세상을 향해 내뱉는 그의 날카로운 직언은 대중에게 주목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미학자로서 이론을 삶에 적용해 보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대중의 편견과 오해의 총합이 바로 나

 
그의 인생철학 중 하나가 대중의 오해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논리에 관계없이 자신에 대한 편견과 오해 역시 자신을 설명하는 다양한 생각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때문에 그는 어떤 활동을 할 때 사회적 시선에 개의치 않는 편이다.
“대중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 나름대로 옳지 않느냐”며 되묻는 그의 말을 통해 ‘안티 진중권’ 세력에 대처하는 그만의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보든 별 상관은 없어요. 예전에 <나는 꼼수다>를 비판했다가 책 판매율이 떨어진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큰 손해를 본 적도 없고요. 저는 대중의 오해를 허용하는 사람이에요. 따라서 굳이 해명하려고 하지도 않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명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제가 나서서 해명하는 것도 스타일 구기는 거거든요.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내가 뭘까’라는 생각도 해요. 그걸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가진 편견들의 총합이 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사람들이 왜곡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단상 속에 조금씩 내 단면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와 대중들이 생각하는 나는 굉장한 괴리가 있지만, 나만이 아는 나 자신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그런 오해와 편견들을 인정해 주자는 입장이죠.”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닌 대중이 들어야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이 꺼릴 법한 민감한 사안과 관련된 토론의 장에서도 비평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그 역시 이른바 ‘이석기 사태’와 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바로 비평가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늘 위험해요. 특히 요즘과 같은 사안이 있을 때는 더 조심하는 편이죠. 그렇다고 해서 말을 안하면 논객이 아니에요. 미술사관은 사건이 끝나면 정리하지만 평론가는 사안이 나왔을 때 딱 정리하는 사람들이죠. 잘못된 비평가의 유형 가운데 사안이 끝난 다음에 ‘거 봐, 내 말이 맞잖아’라고 하는 사람과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요. 세상이라는 게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무한히 풍부한데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잠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뿐,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건 확률의 문제인 거죠. 또 어느 것이 맞든, 틀리든 큰 의미는 없다고 봐요.”

그가 논객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일각에서는 정치판에 뛰어들려는 일종의 포석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있는 재능과 성격이 부족한 탓에 논객으로 활동 중인 현 수준 이상의 정치활동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
“우리가 정치인을 욕하지만 사실 그들은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동일한 사안이라도 다른 차이를 이야기해 주고 섬세하게 사고하도록 이끄는 것이 논객인데 반해, 정치인들은 다른 견해 속에서도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뽑아내는 사람들이죠. 완전히 성격과 재능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정치하기 힘들어요. 처음 본 사람도 10년 본 사람처럼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니까요.”

알려지지 않은 진 교수의 사적인 이야기

그는 대중교통 예찬론자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차 없이도 불편함 없이 생활 중이다. 하지만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자가용 비행기를 가진 남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김포공항 근처에 살아서 747기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날도 기억해요. 인근에 미 공군 부대도 있었는데 블랙 이글스와 같은 전투기도 많이 봤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1996년 독일 유학시절에 우연히 항공 잡지를 사게 되었는데 마침 그게 초경량 비행기 잡지였죠. 근데 비행기 값이 10만 마르크 정도 하더라고요. 비행기를 그 정도의 돈을 살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이후에 비행기를 사기 위해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2006년쯤에 SBS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받은 연봉으로 초경량 비행기를 샀어요. 지금 1년 반 정도 비행기를 못 탔는데 미치겠어요. 요즘에 규정이 바뀌어서 초경량이 경량 등록도 되고 공항에도 들어갈 수 있는데, 지금 그 절차를 밟고 있고, 그 과정이 끝나면 바로 날아야죠(웃음).”

좀처럼 사생활을 밝히지 않는 인터뷰이로 유명한 그가 인터뷰 분위기가 무르익자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려줬다. 독일 유학시절 만난 일본인과 결혼한 그는 현재 아내와 12년째 따로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부 불화로 인한 별거가 아닌, 각자의 활동을 존중하기 위한 선택적 ‘독거’인 셈이다.
“아내는 유학 시절 어학 학원에서 만났는데, 같은 지역에 살아서 지하철로 왔다 갔다 하다가 3년 정도 동거하고 자연스럽게 ‘결혼하자’고 했죠. 결혼, 여자, 사랑에 관한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아서 그냥 서로 아무 지장 없이 ‘재밌다’고 해서 결혼한 경우예요. 그래서 지금도 거의 친구 같은 분위기죠. 벌써 12년째 떨어져 살았나. 그래서 거의 총각이나 다름없어요(웃음). 심지어 독일에는 혼인 신고가 되어 있는데 한국이나 일본에는 혼인 신고조차 안 되어 있어요. 사실 한국에서 혼인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국적을 포기해야 된다고 해서 안 한 거죠.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법이 이상한 거예요. 결혼하려고 국적까지 바꿔야 한다는 게 말입니다. ‘같이 살게 되면 그때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지금 당장은 아무 지장이 없어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나를 잘 몰라’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의 인생 지침 중 하나가 ‘오늘에 충실하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미래를 보는 몽상가적 기질의 소유자는 아니다. 다만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에 비춰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뿐이다.
“저는 계획을 세워놓고 사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의 재밌는 인생철학 중 하나가 ‘내일 일은 난 몰라’거든요. 미래를 보고 ‘이거다’하는 몽상적 기질은 없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따라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다’하는 정도죠. 이를테면 미학사와 미학원론 교과서를 쓰겠다는 수준이에요. 미학사에 관한 책은 10년 정도 걸리는 작업으로 예상할 만큼 몇 권 분량의 방대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