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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농장’ 강용 대표 '유기농은 비싸다'는 통념을 깨다
‘학사농장’ 강용 대표 '유기농은 비싸다'는 통념을 깨다
  • 복혜미
  • 승인 2014.06.06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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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조합법인 학사농장은 전남 광주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친환경 농산물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본사가 있는 전남 장성군을 비롯해 강원도 고랭지, 제주도 등 전국의 50여 농가와 계약을 맺어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소비자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농업의 틀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학사농장의 강용 대표를 만났다.

취재 | 조윤미 사진 | 권오경

 
농사에 대한 애정은 강용 대표의 농장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학사농장은 ‘항상 배우면서 일하자’는 뜻이다. 학사농장의 모태는 1992년 60㎡의 조그마한 비닐하우스였다. 전남대학교에서 농업학을 전공한 강 대표는 같은 과 친구들과 자본금 30만원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장래희망이 농부였던 그는 무조건 농사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비닐하우스에서 개 두 마리와 함께 살며 싹채소 또는 새싹채소라 불리는 싹기름채소로 처음 농사일을 시작했다.

장래희망이 ‘농부’였던 전라남도의 한 사나이

당시 농업교육이라는 것이 없었기에 그는 시장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비닐하우스를 임대해 농사를 지을 때는 주인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그 후 비닐하우스를 직접 만들어 농사를 지었지만 폭설로 무너지는 등 엄청난 시련과 실패, 좌절, 주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대학교까지 나온 놈이 비닐하우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니 다들 미쳤다 그랬죠.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나는 농사를 지어야 돼’라는 생각을 했어요. 농사를 짓고 판매하고, 가공해서 시장을 만들며 농장을 경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크게는 세계 속의 한국 농업을 보고, 한국의 농업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그 후 대학 동기들과 아무 연고도 없는 전남 장성에서 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강 대표의 경험은 이때부터 빛이 나는 듯했다. 이전에 싹기름채소를 재배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 분야의 시장은 훤했다. 그래서 선택한 작물도 싹기름채소였다. 그러나 시련은 그에게 또다시 불어 닥쳤다.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눈 속으로 파묻혀 버린 것이다. 복구를 하던 중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미처 파내지 못한 땅에서 작물이 싹을 틔우고 자라난 것이다. 강 대표는 이것을 수확해 시장에 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 채소의 평균 가격이 6~7배가 뛰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작물을 재배한 방법이 바로 유기농업이었던 거죠. 유기농업을 공부하면서 보니 이것이 앞으로 농업이 이루어 나가야 할 방향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어요. 인간에게 바른 먹을거리를 먹여야 한다는 것을 당시 싹기름채소를 재배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거죠. 그래서 이후에도 철저하게 유기농업만을 고집했어요.”

‘유기농 식품은 비싸다’는 통념을 깨다

 
강 대표의 유기농에 대한 철저한 고집은 이후 한 백화점 식품부장의 눈에 띄며 물꼬를 트게 됐다. 지금은 보편적이지만 당시에는 드문 백화점에서의 직접 유통 제안을 받은 것이다. 백화점을 통해 농산물을 소비자와 직접 대면해 판매했고 점차 수익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강 대표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 행복의 시작을 예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잠시, 두 달 후 판매를 접게 됐다.
“더 이상 백화점과 할인점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어요. 백화점과 할인점 등에서 주력하는 제품은 채소와 과일 등 농산물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소비자 트렌드는 농산물에서 가공식품까지 우리가 생산해내고 있는 것을 원스톱으로 공급받고자 변화했죠. 또 친환경을 요구하고 있었어요. 이는 저의 농업관이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가 됐어요. 시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장에 맞는 유형으로 생산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강 대표는 어디에 어떻게 팔겠다는 유통 시스템 없이 지금까지 그냥 농사를 지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내가 이 시장의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생산 방식을 시장의 유형에 맞게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친환경 유기농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곳이 학사농장밖에 없으니 이 시장은 저의 시장이 되는 셈이죠.”
강 대표는 농산물 하나를 잘 기를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 그 상품을 매일 꾸준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나갔다. 연중 식재료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주에서 전라북도, 강원 등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쳐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백화점과 할인점에 원료 농산물을 납품하고 직접 판매해 유기농매장 직영과 가맹점, 취급점을 개소해 나갔다. 모든 농산물의 원료를 친환경만 고집하는 유기농 식당도 운영했다. 최근에는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한 빵공장도 설립해 운영 중이다.
“밥에 김치만 먹더라도 농약이나 화학물질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식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2000년도부터 식당 운영을 시작했어요. 소비자들에게 5천원 쌈밥에도 유기농 쌀과 유기농 채소, 국내산 된장을 쓸 수 있다는 걸 알리자는 취지였죠. 그렇게 해야 대한민국의 농민도 살고, 친환경도 살고, 제가 사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원료가 비싸서 아무도 접근을 못하니 학사농장이 원료 생산자가 되어 ‘유기농은 비싸다’는 통념을 깨는 것에도 의미를 두었어요.”

친환경 농산물의 대중화를 꿈꾸다

▲ 강용대표가 운영하는 유기농 매장
강용 대표의 깨끗하고 정직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집은 이후 유기농 산업의 대중화를 선도해 나갔다. 농장 소식지 <숨 쉬는 땅>을 직접 발행하는가 하면 매년 6월 2일, 유기농을 기념하는 날인 ‘62day’를 만들어 시민들이 유기농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그는 한국 농식품법인엽합회 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으며 여전히 유기농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대한민국 농업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정직한 농업이 되어야 해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최소한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가치는 지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대학을 졸업한 취업생들의 농업분야에 대한 선호도가 5~10위 정도 되는 농업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강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고급 인력들이 농업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사농장을 세워나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유기농 매장을 직접 만들어 생산 비용과 유통 비용 모두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현했다. 유기농은 비싸다는 기존의 통념을 깬 그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도전정신으로 친환경 농산물의 대중화를 이끈 것이다. 친환경 농가를 살리고 안전한 친환경 농산물을 싼값에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생각한 그의 도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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