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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생가와 조상 묘지터 연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생가와 조상 묘지터 연구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06.08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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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호

“생가터는 평범, 부모 묘터는 막내가 기운 받는 자리였다”

(2003년 2월호)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이 뜨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국민의 선택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생가와 조상 묘지터는 과연 왕권을 차지할 수 있는 명당일까? 풍수지리의 숨은 실력자인 조중근씨(부국풍수지리연구원원장, 인제대 외래강사)와 함께 노무현 당선자의 생가와 묘터에 숨어 있는 비밀을 철저하게 파헤쳤다.

글_ 최병일 사진_ 양영섭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생가
왕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왕의 자리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올라서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다른 신비한 기운이 함께해야만 가능한 자리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사실 불과 개월 전만 해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예측한 이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 한나라당의 이회창씨가 무난하게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상당수의 사주 연구가들 중 이회창 대권론을 공언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노무현 당선자의 극적인 뒤집기 승이었다.
이를 두고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노무현 후보는 조상 묘터가 좋고 이회창 후보는 생가터가 좋은데, 음덕이 강한 조상 묘터가 좋은 노무현 후보가 최종 승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의 묘터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왕권을 쥘 수 있는 명당일까, 하는 의문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기자가 풍수전문가 조중근씨와 함께 당선자의 고향을 찾은 것은 지난 1월13일.

노 당선자는 조상 묘터가 좋고 이회창씨는 생가터가 좋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은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봉하마을은 봉화산 자락 아래 약 40여 호가 모여 있는 작은마을이다.  마을앞 들판은 너른 듯 뻗어 있지만 산자락이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어 의외로 아늑한 느낌을 준다. 들판 한가운데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조씨는 마을의 모양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수구가 좁아서 부를 축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봉화산의 모양은 마치 용의 머리를 닮은 듯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봉화산 정상에는 커다란 마애불이 있고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져서인지 무속인들이 정진 수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설명이다.
봉화산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봉화산 반경 4km 내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의 부인 손명순씨, 서석재전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장기표씨가 태어났다고 한다.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면 아직도 지난해 12월19일의 감격이 가시지 않은 듯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노대통령 당선자가 태어나서 10세까지 살았다는 생가는 마을 왼쪽 끝 가장 아래에 있다. 본산리 봉하마을 36번지. 현재 주인은 하모씨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대통령이 배출된 이후 일약 ‘성지’가 되어 평일에는 2백~3백명, 주말에는2천여명의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찾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은 호기심 차원에서 방문하지만 단순 방문객 이외에 찾는 이들은 바로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목적은 대통령이 난 자리와 조상묘를 찾아 현장학습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당선자 원래 생가는 따로 있다’ 주장도

▲ 김해시 생림면 사천리에 있는 이곳이 노 당선자의 생가라는 주장이 있다
노 당선자는 이곳에서 아버지 노판석씨(76년 작고)와 어머니 이순례씨(98년 작고) 사이에서 1946년 8월6일 (음력) 출생했다. 위로 누나 두 명과 형이 두 명 있었는데 큰형은 작고하고 둘째형 노건평씨가 생가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35년 전 노 당선자의 생가를 구입해  살고 있는 집주인 김영자(58) 씨는 “하루에도 10여명 이상의 지관들이 다녀간다”며“, 대통령이 출생한 집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집이 명당이냐 아니냐를 살펴볼 때 몇 가지를  고려하게 됩니다. 노당선자의 생가처럼 산 밑에 집을 지었을 경우, 우선 산의 맥이 살아 있느냐, 그 산이 살아내려와서 집을 이루는 터가 안정을 이룬 터냐, 산과 집과의 배합이 잘 이루어졌느냐, 방위가 좋으냐를 살피고 파구라고 불리는 배수로의 마지막 보이지 않는 지점을 종합적으로 보는 거죠. 이 다섯 가지를 고려해 볼 때 이곳은 흉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당도 아닌 평범한 집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생가를 한참을 돌아보던 조중근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당선자의 생가터가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명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흉한 터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굳이 말하자면 보통의 기운을 가진 터라고 했다.
“사실 생가터를 중시하는 풍수학파가 있지만 저는 생가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노당선자의 생가터는 마을을 감싸주는 청룡 끝자락에 위치한 것을 빼고는 특별하게 용맥을 받았다든가 혹은 아주 좋은 풍수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생가를 둘러보고 나왔을 때 조씨가 새로운 사실을 말했다. 사실 이곳이 노무현 당선자의 진짜 생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이곳 생가는 노 당선자가 세 살 때 이사온 곳이고 실제 생가터는 현재의 생가터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김해시 생림면 사천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 차를 타고 원래 생가터가 있었다는 곳에 당도해 보니 생가는 없고, 잡초가 우거진 터만 있었다.
이곳에 생가가 있었지만 장마에 모두 휩쓸려 흔적도 남지 않았고, 이후 노 당선자의 부모는 이곳을 떠나 현재의 봉하마을에 정착했다는 것이 조씨의 설명이었다. 이주 배경이야 어떻든 평범했던 봉하마을의 생가와 비교해서 명당의 자격이 있느냐고 묻자 조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하마을 생가나 이곳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당선자 생가의 풍수는 지극히 평범하다는 결론. 그렇다면 부모 묘의 음덕이 노당선자를 만든 것일까?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부모 묘지터
명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풍수적으로 '괴혈(怪穴)’

노무현 당선자의 조상 묘는 생가가 있는 진영읍 봉하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다. 봉하산 줄기에 자리잡은 노 당선자의 부모 묘가 조성된 것은 지난 1986년이다.
그렇다면 왜 풍수가들은 부모나 조상의 묏자리를 잘 써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풍수가들은 그 이치를 동기감응同氣感應)에서 풀고 있다. 동기감응이란 풍수용어로 ‘묘의 좋고 나쁜 기운이 후손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동기감응은 중국 한나라 때 생겨난 말인데 당시 궁궐내 종루의 종을 아무도 치지 않았는데 그 울림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종은 모든 업무나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신호였으므로 아무 때나 종이 울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들 이를 괴이하게 여기어 두려워했는데 황제의 명으로 그 원인을 알아본 결과 종루의 종을 만들었던 재료인 동(銅)을 채취하였던 광산에서 대규모 채광작업을 하자 종이 울렸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같은 기운을 가진 인자끼리는 무언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기가 서로 교류하여 알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풍수에서 조상묏 자리를 수없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조상의 유골이 같은 유전인자인 후손들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동기감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동기감응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학문적 대접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풍수학자들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록 유골이라 할지라도 존재하는 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파장을 일으켜 반응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나타난 자연적 검증사례들로 인해 그 통계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풍수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왕권을 획득하거나 혹은 나라에서 큰일을 맡은 사람들의 묘터를 보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상의 묘터는 대개 3대에서 5대까지입니다. 조상의 묏자리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왜 후손이 발복하는지 이유가 보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당선자의 조상 묘터를 살펴보면 희한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씨가 말하는 희한한 현상이란, 묏자리로만 따진다면 노 당선자는 결코 왕권을 획득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명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풍수적으로 ‘괴혈(怪穴)’에 해당한다고 했다. 걸출한 인물은 배출되지만, 정상적인 혈은 아니라는 것이다. 묏자리를 볼 때 형이 잘되는 자리와 동생이 잘되는 자리가 있는데, 노 당선자의 묘터는 전형적으로 동생이 기운을 받는 자리라고 했다.
“노무현 당선자의 부모 묏자리를 보면서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모 묏자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두 사람 다 소위 ‘선익’에 해당하는 부분이 막내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묏자리를 잘 보세요. 상부가 좋지 않아요. ‘선익’에 해당하는 부분이 위를 향하고 있어요. 이런 경우 기운이 장손보다 막내에게로 가죠. 노 당선자나 박 전대통령의 경우 모두 막내에게 기운이 집중돼 있어요. 다만 박 대통령의 경우 상단이 묘지를 찌르고 있죠. 이런 경우 아랫사람에게 흉살을 당할 가능성이 크죠. 박 대통령이 아랫사람(김재규)에게 시살을 당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도 지난해 비슷한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주산(主山)이 반듯한 것도 아니고, 주산에서 무덤으로 이어지는 내룡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청룡백호가 잘 감싸주는 것도 아니다.”
쉽게 풀면 부모 묏자리가 결정적으로 명당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권을 가름하는 명당은 없다는 말인가? 조씨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이나 두 번의 황제가 탄생한 흥선대원군 조상 묏자리인 남연군의 묘조차도 명당이라고 불리는 데는 약간의 하자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의 묘나 남연군 묘의 특징을 보면 특별하게 힘을 받는 후손이 있고, 노 당선자 양친의 묏자리처럼 동생이 강하게 힘을 받는 경우 큰인물이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풍수가 상대적이라고 했을 때, 노당선자와 이회창 후보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노 당선자 부모의 묘가 발복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기에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는 요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 노 당선자와 경합했던 이회창 후보의 조상들은 충남 예산읍에 모셔져 있고, 예산군 대흥면 손지리에는 조모의 무덤이 있다. 조모의 무덤은 풍수적으로 좋은 땅이긴 하나 대통령이 될 만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 풍수계의 중론이다.
이 후보의 가족묘로 조성된 선영도 풍수적으로는 볼 만한 것이 없다. 묏자리의 주산은 차령산맥의 줄기인 금오산으로 명당이었지만 선영 뒤쪽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무가 잘리고 산의 맥에 도로가 나면서 명당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 금오산과 조상의 묘를 가로지른 도로로 인해 산맥의 좋은 정기가 후손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이 후보의 조상 묏자리는 일종의 사혈(死穴)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이렇게 조상묘의 음덕을 바랄 수 없는 사혈임에도 이후보가 대법원장, 감사원장을 거쳐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생가터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 두 번씩이나 출마해 초반에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대권을 쥘 수 없었던 이유는 사혈이 되어버린 조상묘 때문에 조상의 음덕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덧 주위에 어둠이 깔렸다. 노무현 당선자의 부모나 조상묘에서 큰 인물이 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명당자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일까?
다시없다는 생가터도, 그렇다고 부모의 묘가 천하의 명당자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다른 기운이 흘러들어가서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조상의 기운과 어우러진 희망과 개혁의 국민적 염원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 | 노무현 당선자 형 노건평 씨>

 
고향인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당선자의 형인 노건평 씨가 아직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는 특별하게 바뀐 것이 없다고 했다. 동생의 당선은 마음속 깊이 자랑스럽고, 국민에게 감사드릴 일이지만 가문의 영광과 기쁨으로 여길 뿐 일상에서 변화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노씨는 부모 묘를 쓸 때 그곳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고 썼다고 했다. 다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국의 지관들이 찾아와서‘대통령이 될 자리였다, 혹은 예사 묘터가 아니다, 조화가 맞아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부친께서 죽어서 불꽃 속에 들어가기 싫다. 양달에 묻어달라고 해서 양지 바른 곳에 모셨을 뿐, 풍수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76년 마을에서 ‘반 풍수’로 불리는 어른께 사례하고 터를 잡았습니다. 이곳에 모시고 난 이후 노 당선자에게 좋은 일이 많아서 부모님의 음덕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노씨는 지난해 초 희한한 일을 겪고 집안에 뭔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2002년 1월 1일 노씨가 아침 6시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문 옆에서 소리가 났다. 무언가 싶어 가만히 살펴보니 동물원에서나 본 적이 있는 금계였다. 놀라서 시간을 보니 8시였다.
“동네에 금계를 키우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날지도 못하는 짐승이 어떻게 우리집으로 찾아왔나 놀라움이 컸습니다. 게다가 금계의 천적인 개와 고양이가 많은 집으로 온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금계가 예전부터 부와 벼슬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동생이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노씨는 동생이 평생 원칙을 지키며 살았던 만큼 정치에서도 원칙을 갖고 국정을 수행해서퇴임 후에도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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