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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작은마을 쉘덴에서 발자크를 되뇌입니다”
“알프스의 작은마을 쉘덴에서 발자크를 되뇌입니다”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06.08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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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선영의 영국 통신-2003년 2월호

 
발자크는“사람은 두 번 살아간다. 한 번은 실제로, 그리고 또 한 번은 기억 속에서…”라고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떠난 알프스의 산 속에서 그 말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글·사진 _ 이선영

(Queen 2003년 2월호) 알프스가 널따랗게 겹쳐선 곳, 그 산 너머로는 이 세상 누구와도 마주친 적 없는 얼굴 말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곳. 차마 그 산을 넘지 못하고 티롤의 품에 안긴 형상의 오스트리아 쉘덴은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그곳을 만나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오다가다였습니다.
이탈리아 가르다 호수에서 뮌헨으로 돌아오던 어느 해 여름, 산이 높은 조용한 마을을 지나던 길로 기억됩니다. 저 산 위에는 만년설이 있다고, 거기는 지금 같은 한여름에도 덜덜 떨리게 춥다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물론 하늘 가까운 3천여미터 고봉의 산자락 마을, 쉘덴은 걷기대장인 남편으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듬해 여름 우리는 다시 이곳을 찾았고, 등산이라면 떠나기 전부터 무작정 다리가 아파오는 두 아이들을 다독여 케이블카로 3천48m 정상에 온가족이 올라섰습니다. 허연 입김이 설설 날리는 산꼭대기 겨울을 밟고서 우린 몸이 먼저 잊어버린 저 아래 8월을 즐겼습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산길을 따라 동민이에게 틈틈이 ‘어부바’도 상납해가며 다시 여름으로 내려왔습니다. 산에는 올라갔다 오는 게 아니라 들어갔다 나오는 거라는 산사람의 말을 난 아마 그때 다시금 생각했었을겁니다. 마치 먼나라 퍽 깊숙한 산에 다녀온 사람처럼.
바로 그 여름의 쉘덴 산꼭대기 어드메쯤에서 나는 녹슨 철판 위에 휑뎅그렁하게 씌어 있던 발자크의 얘기를 만났습니다.

“…사람은 두 번 살아간다. 한 번은 실제로. 그리고 또 한 번은 기억 속에서…”
그가 무슨 맘으로 이런 얘기를 했었는지, 이 말을 굳이 이 산꼭대기에 붙여 놓은 건 또 무슨 연유에서인지 여태 짐작조차 못하지만 나는 이곳에 올 적마다 그 말을 되뇌곤 합니다. 모르긴 해도 나 역시 이제는 보낸 시간이 더 많은 사람들 축에 들 겁니다. 기억 속에 새로이 살아갈 시간이 더 길다는 얘기이겠지요. 어쩜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닿는 게 아닌 거라고, 때로는 마을과 산하고 또 때로는 어떤 시간과도 이어지고야마는 그런 연도 있는 거라, 난 이 쉘덴마을을 보며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인연으로 우리 가족은 한 번의 여름 그리고 두 번의 겨울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이 아름다운 산 속에서 서두를 게 뭐냐

▲ 1 전형적인 오스트리아식 부엌이 보존된 산속 통나무집 휴식처(식당겸). 가마솥이 끓고 있고 그 곁 돌바닥은 뜨끈한 아랫목 같아서 스키어들이 젖은 옷들을 말리곤 한다. 2 산중턱 식당에서 휴식중인 필자와 두 아이들, 동휘(11), 동민(8). 3 산속 통나무집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유럽 사람들. 스키를 타다가 일광욕도 하고 맥주며 간단한 점심을 먹는 곳. 그 앞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혼자 서 있는 꼬마가 딸 동민. 4 쉘덴 산 속에 선 이선영 씨. 5 산 위에서 내려다본 쉘덴 마을 전경.
영국에서는 귀한 눈을 찾아 우리 가족들은 지난 12월 다시 쉘덴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우리 집 ‘3김씨’들은 그다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아니 다소 둔한 편이라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스키만은 나를 빼고 모두가 즐깁니다. 오히려 운동을 잘하면서도 스키의 엄청난 스피드 앞에서는 다리가 굳어지는 나는 그저 부엌에서 벗어나는 얼마간의 호사에 감지덕지해 따라나서는 정도입니다.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일수록 옷차림도 몸짓도 극히 단순하다는 지엄한 사실을 나는 눈 위에 마르고 닳도록 자빠지는 걸 간신히 마감할 즈음에서야 몸으로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키에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라는 그 야속한 말이 조금씩 들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눈위를 미끄러져 가는 데는 결코 많은 힘이 필요치 않다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 대단하게 챙겨 입고 갈 일이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 겁니다.
내 코가 석자요, 알지 못하니 보일 턱이 없었겠지요.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날렵하게 질주하는 고수들도 멋지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내려가는 꼬마들도 장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단연 압권은 언제나 연세 높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입니다. 눈과 함께 오래 지내온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기운이 보이는 까닭입니다. 그분들은 대개 빛바랜 스키복에 철지난 스키 차림이지만 언제나 유영하듯 주변을 즐기며 천천히 눈을 어릅니다. 이 아름다운 산 속에서 서두를 게 무어냐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눈을 지치며 내게 풍광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저 멀리 하늘빛이 가슴 시리게 황홀해 한참을 서게 됩니다. 저 아래, 보이지도 않는 땅위의 모든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한가 싶은 생각도 섬뜩하리만치 차갑게 가슴에 담깁니다.

눈 쌓인 산 위에서 종종 만나는 근사한 노인 분들의 모습을 하나씩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스키장에서 만난 독일꼬마 하나는 내게 그랬습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모두 스노보드를 타고 스키는 어린이나 늙은 사람들만 타고 있다고. 결국 나는 산위에서 엉겁결에 ‘늙은 사람’으로 격상됐으니 조만간 그 멋진 모습을 닮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언젠가 쉘덴에 다시 들르면 나는 또 발자크의 말을 떠올리게 될 테지요. 그러면 다시금 내게 물어 보렵니다. 고수들처럼 질주하며 서둘러 갈 것인지, 결코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즐기며 나를 느껴 보려는지 말입니다.
실제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가 바로 기억 속에 살게 될 시간이란 것을 이제는 잘 알 것 같아섭니다.

이선영 씨는…
MBC 아나운서, 독일 공영 ZDF 방송을 거쳐 KBS 시사 프로그램에 리포트를 하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퀸즈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 그리고 두 아이들과 함께 영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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