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단독 인터뷰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단독 인터뷰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06.10 2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꿈꾸고 바라는 서울”

 
(Queen 2011년 10월호) 서울시장 선거가 한 달 남짓으로 다가왔다. 그에 따라 각 후보자의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박원순 변호사가 유독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박 변호사는 최초 5%의 저조한 지지율에서 시작했지만, 안철수 원장의 출마포기 선언과 박 변호사가 그간 해왔던 사회사업들이 재해석되면서 강력한 후보의 반열에 올랐다. 본지가 박 변호사를 만나 그가 꿈꾸는 서울의 모습과 포부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취재 김수석 기자 | 사진 권오경 기자 | 장소제공 산다미아노(02-6364-2233)

본격적인 가을을 예고하는 부슬비가 서울광장을 적시자, 시청역에서 공사하던 일꾼들이 하나둘씩 일손을 놓고 땀을 닦았다. 서울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화려해져 가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웃음은 왜 늘어나지 않는 걸까. 이제는 외관적인 변화와 함께 내면적인 변화도 이루어져야 할 때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두가 닳도록 뛰어왔다는 박원순 변호사를 정동 길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 변호사가 꿈꾸는 세상

‘소셜 디자이너’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박 변호사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다양한 사회사업을 했다. 그리고 권인숙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년간의 법적 투쟁을 거쳤던 서울대 성희롱 사건 등 권력과 싸우며 약자를 대변하려 노력해왔다.

-요즘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실 텐데, 일과가 어떻습니까.
-그전에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일과가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정하는 스케줄보다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런 바쁜 일과 속에서 건강을 지키는 건강관리법이 있으신가요.
-쪽잠을 자거나 여유가 생기면 산행을 떠나기도 해요. 술과 담배를 못하니까 차를 마시게 되고, 무엇보다 일을 즐기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은 일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를 디자인하겠다는 계획이 있으신지요.
-제가 디자인하고 싶은 사회는 꿈과 희망이 있는 사회예요. 지역을 돌아보면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활성화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지역과 현장은 문제의 본질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공급하는 원천이라고 생각해요. 나 같이 사회변화를 꿈꾸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려는 사람들이 할 일은 바로 이런 사례와 경험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 실현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조건과 환경,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구체화하는 일이죠. 비판을 넘은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투명한 사회가 되면 신뢰도 형성되고 기강도 바로 서겠죠. 나는 이런 꿈과 희망을 한시도 포기해본 적이 없어요.

-서울 시장이 되신다면 해보고 싶은 정책이 있으신가요.
-구체적인 정책은 공약으로 가시화될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사회적 기업이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이나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원한다면 소기업 사장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현실정치 경험의 부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동안 시민사회를 통해 다양한 정책과 비전을 실천해왔던 경험이 전부예요. 그러나 그것은 시민사회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와의 거버넌스를 통해 실천한 것들이죠. 현실정치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정치를 정치인의 영역으로 가두어 버리지는 않겠어요. 표를 달라고 할 때만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직접 만들어 가는 정치를 펼쳐가고 싶습니다.

-참여연대에 계실 때 ‘4대 보험 의무화’라는 작품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복지정책에 대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참여연대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끌어냈어요. 국민 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해서 노령연금을 받게 하고, 최저생활비 등에 대한 이슈들을 끌어냈지요. 복지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에요. 복지국가는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고 구멍이 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인권과 복지는 매우 가치가 높은 개념이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인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누구의 인권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대안도 달라지는 것이죠. 복지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동의 관점에서 혹은 여성과 노인, 장애우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 당시 주변에서 변호사님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미친 짓이다’라며 설립을 반대했다고 하던데, 얼마나 어려우셨습니까.
-잘나가던 변호사 시절을 제외하고는 형편이 좋았던 적은 없습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는데요. 돈이 없어서 못 하는 일은 없다고 봅니다. 꿈과 희망,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따라오더라는 것이지요.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의 우정

안철수 원장이 박 변호사를 지지하며 시장직 출마를 포기하면서, 박 변호사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1위로 올라섰다. 안 원장은 “꽃과 같이 향기가 나는 정치인”이라며 박 변호사를 칭찬했고, 이번 인터뷰에서 박 변호사는 안 원장을 “희망의 바이러스”라 칭했다.

-평소 안철수 원장과 친분이나 관계가 있으셨는지요.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더 자주 뵙게 되었죠. 그 이후로 미국의 아름다운 재단 행사가 있을 때도 만났고, 희망제작소에서 내가 제안한 ‘소셜디자이너스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운영하던 중 아예 ‘안철수 원장의 소셜디자이너스쿨’을 만들어 강좌를 통째로 맡아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어요. 대전에서 서울까지 그 바쁜 와중에 오느라 몸살을 앓았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들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드셨겠지만, 안철수 원장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이야기한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의 삶 자체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어서 여러 사람에게 감동과 울림을 준 것이지요. 평소에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가 깊이 신뢰와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원장은 변호사님을 ‘꽃과 같이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진정한 정치인이라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 비유에 만족하십니까.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표현한 안철수 원장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변호사님이 안철수 원장을 비유법을 써서 표현하신다면...
-글쎄요…. 안철수 원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라고 하는 용비어천가의 한 대목이에요. 심지가 굳고 단단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단 있는 믿음과 신뢰가 여러 사람에게 ‘희망의 바이러스’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비전을 주는,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대통령’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나 안철수 원장은 어떤 자리를 두고 다음을 논하는 성격이 못돼요. 지금은 서울시장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잘하느냐가 중요하고, 대선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봐요. 두 사람 모두 사회변화를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니 잘 지켜봐 주면 좋겠어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

사진작가 조세현 씨가 찍은 박 변호사의 신발이 화제가 됐었다. 뒷굽이 다 떨어져 볼품없는 신발. 그 신발이 박 변호사가 걸어온 삶을 대변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정치에 나섰고, 이제 더 큰 결실을 만들어갈 것이라 다짐한다.

-변호사님께서는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하는 모범생이셨나요?
-어릴 때는 공부를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저를 칭찬해 주시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났죠. 많은 못난 점에서도 제 작은 장점을 찾아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지금 우리 공무원도 격려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구조 안에서 쫓기듯이 생산 위주로만 일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기회가 없습니다. 저 혼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의 일은 각자가 하는 겁니다. 스스로 창의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그걸 ‘프리 윌’이라고 하고, 그건 제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죠.

-변호사님의 이력을 훑어보면 많은 사회사업을 하셨고, 쉴 틈 없이 바쁜 날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돈 되는 일은 하신 게 없는 거 같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지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잘하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예전부터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해 가족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거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박원순 명품 신발’이라는 기사가 떠서 살펴보니, 사진작가 조세현 씨가 변호사님의 뒷굽이 다 떨어진 낡은 신발을 찍은 사진이더군요.
-제가 살아온 인생이 그랬어요(웃음).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이 살아왔죠. 뭐든 한 번 몰입하면 전념하는 성격이에요. 요즘은 옷도 잘 갈아입고 외모에도 신경을 쓰려고 하는데, 예전에는 그랬던 적이 없었어요. 옷을 한 번 입으면 저는 안 갈아입으려고 하고 아내는 갈아입히려고 해서 싸움이 났죠(웃음).

-그때 그 신발 혹시 진짜 명품 신발은 아닌가요.
-글쎄요. 아는 간사 분께서 선물해 주신 신발이라 어디 건지는 모르겠어요. 뭔가를 따로 사서 입거나 신어 본 적은 없는 거 같고, 주변에서 남는 옷가지 같은 걸 주면 마지못해 입는 정도예요. 이번에도 제 신발 사진을 보고 구두수선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이 고쳐 줄 테니 가져오라고 전화를 하셨죠.

-일부에서는 변호사님이 말하는 ‘꿈’과 ‘희망’을 ‘몽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혼자 꾸는 헛된 꿈은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는 법이거든요. 누군가는 다른 꿈을 꿨으니까 역사가 발전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고, 그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함께 꿈이 현실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비 내리는 가을날의 운치를 벗 삼아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박 변호사가 휴식을 취할 때 옛 노래를 즐겨 듣는다는 말에, 애창곡을 물었다. “대전블루스와 산유수를 부를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는 박 변호사. 한 곡조 뽑아줄 것을 정중히 부탁하자, 곤란한 듯 수줍은 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어릴 적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바느질하면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입니다”라며 산유수의 한 구절을 불러주었다. “산에 산에 꽃이 피네. 산에 들에 꽃이 피네. 봄이 오면 새가 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마는…”

가을날의 고즈넉한 정취가 묻어 있는 노랫소리에 그간의 시름이 잠시나마 잊히는 듯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노래든, 공약이든 그가 대중을 꿈꾸게 했던 모든 말들이 미래를 바꾸는 새로운 힘이 되기를 희망해본다.(Queen 2011년 10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