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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박사 이문호 교수가 분석한 명당의 비밀
공학 박사 이문호 교수가 분석한 명당의 비밀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6.12 0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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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관념이자 관습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인재 등용 시험에 의학이나 공학, 천문 또는 지리 분야가 포함되어 음양학의 한 부분으로 풍수지리가 포함된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영남대 이문호 교수가 풍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장소협찬 합정동 크리에이티브 살롱 구(02-325-2690)

▲ 이문호 교수는 1981년 영남대학교 공과대학에 최연소(27세) 교수로 임용된 인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남대학교 대학원에 풍수지리학 강좌를 개설해 17명에 이르는 풍수학 박사를 배출했다.
“풍수에 대한 접근은 전통적인 관념으로서의 해석과 경험적·과학적인 해석으로 나뉜다. 인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한 관념으로서의 해석이 전통 계승과 발전이라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풍수의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것도 제자리를 찾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는 이문호 교수가 최근 출간한 <명당>의 프롤로그에서 밝힌 풍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유다. 그는 풍수의 과학화와 더불어 풍수의 학문적 기반을 쌓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풍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 가능한지가 중요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8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고, 그 결과 그는 흔히 말하는 명당의 조건과 혈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내는 데 성공했다. 과거에 풍수가 풍수 전문가들의 주관적인 지리적 해석에 의존했다면, 그의 연구를 통해 명당의 지질학적 구조와 후손 번성의 통계학적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풍수에 대한 과학적 해석의 토대를 구축하게 됐다.

지질 탐사기 개발 이후 풍수와 인연

영남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문호 교수(동대학원 응용전자학과 주임교수 겸임)는 현재 6~7개 정도의 특허를 보유 중이다. 특히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미시추·비접촉 지질 탐사기를 개발해 새로운 지질 탐사 방법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풍수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풍수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영남대 대학원 응용전자학과에 풍수지리 강좌를 개설해 주목을 받았다.
“1998년에 선친이 돌아가셨는데 묘 자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한 교수님의 소개로 저명한 풍수사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그 풍수사가 가져온 게 엘로드(수맥 측정 탐사봉)라고 불리는 ‘ㄱ’자로 꺾인 도구였는데 좋은 땅을 찾아내는 장비라고 하더라고요. 그것을 본 이후 도구의 원리를 6개월 만에 찾아서 엘로드 대신에 숫자로 나타내는 장비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엘로드가 ‘X’자를 그리는 곳마다 기계가 가리키는 숫자를 확인해서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해 보니 그것이 수맥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풍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2년에 지질을 조사하는데 구멍을 뚫지 않거나 땅에 댈 필요가 없는 지질 조사 장비를 개발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풍수를 오랜 기간 공부해 온 사람들이 풍수로 박사 학위를 받고 싶다고 해서, 자료를 조사해 오면 이 자료가 박사 학위 논문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풍수 박사 과정이 개설이 됐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공학 박사인 제가 풍수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사실 풍수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맞다’ 혹은 ‘틀렸다’라는 평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특히 풍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풍수의 과학적 접근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통계적인 분석을 통해 발견한 내용을 첫 논문으로 발표했을 당시, 일각에서는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그는 풍수 전문가가 아닌 공학 박사로서 풍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발표한 것뿐인데, 일부 풍수 비판론자들의 맹목적인 비판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첫 논문이 세상에 나오자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중앙 일간지에도 보도가 됐는데, 댓글이 순식간에 수천 건이 달렸을 정도였죠. 그런데 댓글을 보니 저희를 미친 사람처럼 취급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그분들의 생각처럼 미친 짓을 한 게 아닙니다. 있는 현상을 이야기한 것뿐이죠. 하지만 그런 비판적인 시선을 겸허히 수용하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심층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죠.”

풍수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다

2012년 2월 이문호 교수는 대학원생의 박사 학위 논문 10편을 정리해서 <풍수도 과학이다>라는 책을 펴냈다. 당시 그는 그 책을 통해 풍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풍수의 본질보다는 풍수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최근 출간한 <명당>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풍수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풀어냈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풍수도 과학이다>라는 책은 비탈과 산등성이 등 산의 지형들이 어떤 조산운동에 의해 생기는지, 산을 관찰할 때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다양한 데이터들을 통계적으로 어떤 기법을 활용해서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지 등을 정리한 것이에요. 그 당시만 해도 풍수의 본질을 건드린 건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풍수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나서 2012년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본질적인 풍수 과학 연구를 시작했죠.”
그는 명당의 핵심인 혈(穴)에 주목했다. 명당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혈의 실체가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기존에 관련 연구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그는 연구 접근 방법을 놓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한 농업지도사를 통해 트랙터로 밭을 갈기 전 땅의 경도(硬度)를 알아보기 위한 측정 도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찌르는 힘을 일정하게 해서 땅속으로 어느 정도 깊이까지 들어가는지 측정하는 농업용 장비가 있는데, 그것을 빌려서 땅속 구조를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연구 대상이 되는 묘소는 이장을 하지 않은 원래 상태여야 하고, 묘에 대한 기록이 묘비에 자세히 나와야 있어야 하는데 이 기록이 족보의 내용과도 일치해야 합니다. 또 후손도 있어야 하고요. 이것을 포함한 9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묘소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후손이 번성한 묘의 경반층을 분석해 보니 공통적으로 구덩이가 발견됐어요.
그게 바로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의 혈(血)이었죠."

일정한 힘을 가해도 변화가 없는 딱딱한 표면을 지질학적으로 경반층이라고 하는데, 혈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묘소의 경반층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땅속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깊이를 재서 3차원적으로 땅속 구조를 그려 나갔다. 그 결과 그는 후손이 번성한 묘소 밑 경반층에서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자력 탐사와 전기비저항 탐사 등 다른 방법으로 경반층을 조사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후손이 번성한 묘의 경반층을 분석해 보니 구덩이가 발견됐어요. 다른 방법으로 조사해도 경반층의 구덩이가 그대로 나타났죠. 후손이 번성한 증조부모 중 한 분의 묘소에서 반드시 이러한 경반층 구덩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면 역삼각형 구조라고도 말할 수 있고요.”
전문가들은 전통 풍수에서 오래전부터 주장했던 혈의 형태를 그림으로 그려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이를 토대로 명당과 후손의 부(富, 후손이 재벌인 묘소), 귀(貴, 조선시대 대제학 후손을 둔 묘소), 손(孫, 후손이 번성한 묘소)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풍수의 본질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손정의 회장
음택 풍수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

그는 과학적 조사와 통계학적 분석을 통해 풍수의 기본 법칙과 자손 번성과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증조부모 묘가 능선에 있으면 자손 수가 1배 늘어나는 반면, 산비탈에 있으면 후손 수가 2배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흔히 말하는 좋은 묘와 나쁜 묘를 분석해 좋은 묘의 효과가 증손자대에서 나타난다는 통계 수치도 확인했다. 즉, 증조부모의 묘가 혈과 같은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증손자대에서 부나 명예를 가졌거나 자손을 번성시킨 인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증손자대에서 부(富)와 귀(貴), 그리고 손(孫) 측면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이죠. 이전 세대에서 꽃봉오리를 맺고 비로소 증손자대에서 꽃을 활짝 피운다는 비유가 적절하겠네요.”
특히 그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등 학문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조선시대 대제학의 증조부모 묘소 중 하나는 명당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는 조선시대 대제학을 지낸 134명 중 70명의 대제학 증조부묘를 조사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그는 “전통적으로 풍수 전문가들이 주장했던 명당의 정의가 과학적으로도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몇 가지 더 말씀드리면 대제학의 증조부 묘소에는 특이한 사(砂, 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과 바위)가 반드시 존재했어요. 소위 말하는 귀봉사(대제학 사)인데, 대제학 산은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었죠. 물론 일반적으로 귀봉이라 불리는 삼각형의 산도 대부분 좌우 대칭을 이루지만 공제선(하늘과 지형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에 있는 꼭짓점이 각이 지지 않고 타원호를 이룰 때 대제학 산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뿐만 아니라 그는 거부(巨富)와 재벌가의 조상 묘소가 명당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도 살펴봤다. 분석 결과 대제학을 배출했거나 자손이 번성한 묘소와 똑같은 명당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대구시 동구 도동에 위치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증조부모 묘를 분석한 내용을 대표적인 예로 제시했다.
▲ 손정의 회장 증조부모의 묘소
“손정의 회장의 6대조 묘소를 조사해 봤더니 고조부모와 증조부모의 묘소가 아주 좋은 묘였습니다. 묘의 뒷산 모양이 높지 않고 완만해서 재벌이 나오는 묘 자리의 주변 환경과도 일치했고요. 특히 손 회장의 증조부모의 묘소에서 관찰되는 산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 타원호의 형태를 하는 노적봉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과 시야각이 약 80°에 이르는 대규모 타원호가 발견되는 점입니다.”
그는 “명당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명당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현대인들에게 명당이 지니는 의미 등 그의 명당 연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해의 폭을 넓히는 매개체가 되길 희망했다.
“명당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셨으면 좋겠어요. 명당을 분석하면서 명당은 타인을 배려하는 분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그런 명당이 실제로 오래도록 후손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고요. 앞으로 명당 연구를 더 진행해서 6월 출간 예정인 명당의 새로운 신간을 통해 좋은 메시지를 더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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