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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다독이는 윤희정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다
영혼을 다독이는 윤희정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다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6.19 0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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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이 만난 사람

 
영국의 한 수필가는 음악을 두고 “인간이 알고 있는 최고의 것이자 천국”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음악이란 모든 생을 걸 만큼 값지고 최고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일 터.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때로는 수줍은 아가씨처럼 노래를 부르는 윤희정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음악에 쏟아내는 사람이다. 재즈를 만난 순간 모든 인생이 변했다는 재즈싱어 윤희정과의 만남은 그 어느 때보다 유쾌했다.

진행 김선영 | 사진 권오경 | 스타일리스트 김시온 | 헤어 이사라 | 장소협찬 Gorilla in the Kitchen

이재만 1997년 7월부터 ‘윤희정&Friends’를 시작했어요. 각계각층 인사와 스타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콘셉트가 당시에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요.
윤희정 당시 정동극장 사장이었던 분이 1년짜리 상설공연을 제안했어요. 재즈를 시작한 지 6∼7년 정도 됐을 때인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문득 들더라고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스승이신 이판근 선생님께 말씀드렸죠. 선생님은 “호랑이를 그려야지 왜 고양이를 그리려 하느냐”고 말하셨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죠.

이재만 공연의 모든 순서를 직접 구성하고 사회까지 보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윤희정 ‘윤희정&Friends’는 공연을 계속 준비해온 사람이 아니면 모든 순서를 소개하기 좀 어려운 편에 속해요. 제 공연의 관객들 중반 정도는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한 재즈 마니아들이에요. 매 공연을 공통적이면서도 색다르게 할 수밖에 없죠. 참석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것부터 모든 프로그램의 내용과 의도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14년째 진행까지 맡아서 하고 있죠.

이재만 초창기부터 2002년까지는 공연을 매달 했어요. 단기간에 새로운 사람들을 발굴하고 연습시키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들었을 것 같아요.
윤희정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하겠죠. 차라리 저 혼자 노래하고 연습하면 쉬운데 재즈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을 동시에 여러 명 트레이닝시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는 두 달 정도가 걸리니까 미리 2∼3회분의 공연을 준비하려면 동시에 여러 사람을 가르쳐야 했어요. 그래도 그땐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매일 엔돌핀이 샘솟았죠.

이재만 무대에 오르는 프렌즈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을 텐데요.
윤희정 직관이에요. 저 사람은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99% 맞는 편이에요. 그래서 TV를 보다가 괜찮은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114에 전화를 걸어서 그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내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먼저 연락해서 성공한 경우예요. 하지만 먼저 저를 찾아온 사람들도 있어요. 김미화·옥주현·노주현·박경림·송일국 씨가 그랬죠. 재즈에 관심이 있고 또 배우고 싶어 찾아왔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왜 스타가 되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이재만 매번 새로운 사람을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거예요. 지금까지 무대에 오른 사람 가운데 섭외에 가장 공들인 사람은 누구인가요.
윤희정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은 섭외하는 데 6개월이나 걸렸어요. 계속 거절을 당했는데 우연히 시를 쓰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분의 자작시 <들국화>에 재즈곡을 붙여 제 공연에 초대해 들려드린 뒤에야 허락하셨어요. 정말 노래를 잘하셔서 법조계에 나가지 않았으면 분명 가수를 하셨을 것 같은 분이에요.

이재만 지금껏 재즈를 가르친 프렌즈 중 가장 마음에 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윤희정 브로드웨이 스타인 이소정 씨예요. 뮤지컬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 재즈의 스윙이나 그외의 요소를 잘 표현하는 싱어죠. 소유진 씨는 2주 만에 배워서 무대에 섰어요. 다른 누구보다 습득력이 빨라서 제가 오히려 터치할 부분이 없었죠. 그런데 유진 씨는 노래 부를 때 제가 별말 안 하니까 처음에는 제가 자기를 미워하는 줄 알았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더라고요.

이재만 앞으로 무대에 꼭 함께 서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텐데요.
윤희정 배우 김혜수 씨와 함께 서보고 싶어요. TV나 영화에서 연기하는 모습만 봐도 왠지 그 친구의 감성은 재즈하고 잘 맞을 것 같아요. 아마 저와 성격도 잘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한국식 재즈로 만들어낸 특별한 맛

인생에서 재즈를 늦게 만난 것이 가장 아쉽다는 윤희정 . 서른여섯의 나이에 대한민국 재즈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판근 선생으로부터 사사한 그이에게 음악은 삶 그 자체다. 대중에게 보다 쉽게 음악을 전달하려는 노력은 스승에게 물려받은 한국식 재즈에서 잘 드러난다. 꽹과리 소리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 <세노야>를 비롯해 그이가 부르는 노래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된장찌개처럼 구수하고 푸근한 매력이 있다.

이재만 20대에 가스펠을 부르다 30대 후반에 재즈에 입문했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는데도 상당한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윤희정 결혼 후 20대 후반부터 가스펠을 했어요. 그때 열린음악회, 토요예술무대에  출연했는데 제 목소리를 들은 어떤 분이 절 보고 재즈를 하면 좋겠다면서 이판근 선생님 댁에 데려다줬어요.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오기가 생겨 재즈에 달려들었죠. 제가 가스펠을 하면서 블루스를 불렀는데, 알고 보니 블루스가 재즈의 엄마 격인 장르더라고요. 가요를 불렀다면 재즈로 넘어가는 것이 힘들었겠죠.

이재만 그래도 재즈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윤희정 당시 스승님이 저보고 재즈를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첫인상이 음악을 오래 못할 것처럼 보였나 봐요. 그런데 오히려 전 오기가 생겨서 집에서 두 시간이 걸리는 선생님 댁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다니면서 배웠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정말 진땀만 흘리다 나왔어요. 옷이 다 젖을 정도로요.

이재만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윤희정 처음에는 편곡 공부를 했는데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계속 다른 곡을 작업하는데도 결국에는 똑같은 곡만 나오는 거죠. 그런데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르잖아요. 저는 곡을 만드는 것보다는 곡을 듣고서 무대에서 표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재만 재즈의 어떤 면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윤희정 블러 사운드라는 것이 있어요. 이를테면 아지랑이 같은 음을 말해요. 음계에서 ‘도’와 ‘레’ 사이에 있는 반음을 소리내는 거죠. 음과 음 사이에 있는 새로운 소리들을 발견하는 것이 묘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 소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죠.

이재만 대중이 재즈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노래를 불렀는데요. 재즈 본연의 색을 지키면서도 대중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윤희정 제가 너무 재즈만 외치면 대중은 기피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너무 대중성을 강조하면 재즈가 상처받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C.E.O.J(Co-Edutainment Of Jazz)밴드예요. 예술과 실용이 결합된 거죠.

이재만 C.E.O.J밴드 이름으로 낸 노래 중에는 꽹과리 소리가 들리는 곡도 있던데요.
윤희정 이판근 선생님이 개발한 리듬패턴 중 셔플모리라는 것이 있어요. 셔플은 미국 남부 흑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댄스리듬 중 하나고 모리는 우리나라 민요에서 꽹과리가 사용되는 장단을 의미하죠. <세노야>, <분꽃> 같은 곡들이 셔플모리로 만든 것이에요. 외국으로 치면 여러 가지 리듬이 섞여 있는 것인데 제가 ‘윤희정&Friends’에서 자주 발표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사랑도 받고 전통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이재만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윤희정 제일 많이 부른 노래는 <Over The Rainbow>이고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는 저를 만들어준 노래죠. 제 첫 CD로 만들었고 빌리 홀리데이가 무대 위에서 한 것같이 부르기 위해 몇 백 번을 불렀던 노래예요. 하지만 그녀와 똑같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재즈는 열정이 아니라 연민이라는 생각을 해요. 열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죽을 때까지 그리다가 죽는 것, 그리움과 연민 같은 거죠.

이재만 재즈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윤희정 재즈는 스릴이에요. 세 소절만 지나가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니까요. 클래식은 그다음이 예측되지만 재즈는 갑작스럽게 변하거든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드러나는 거죠. 그게 바로 애드리브이고요. 각자 부르는 노래가 다 다르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죠.

 
TOP보다 ONLY ONE

예술가에게는 타고난 재능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노력도 요구된다. 그이를 보고 있으면 재능과 노력의 조화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던 끼 많은 문학소녀는 세월이 흘러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즈싱어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이 있어 행복하기는 마찬가지. 허나 재즈를 더 일찍 알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는 그이는 이제 최고의 싱어보다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싱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재만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들었어요. 공연과 상관없이 매일 연습하는 편인가요.
윤희정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스태프들이 알고 사흘 동안 하지 않으면 관중이 알아요. 실제로 소리를 내는 것은 한 시간 정도지만 머리로 생각하고 연습하는 시간은 더 많죠. 주로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연습하는데 지난 15년 동안 그전에 잠든 적이 없어요.

이재만 끼가 넘치고 노력파인 모습은 아마 어린 시절부터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학생 때는 어땠나요.
윤희정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서로 저랑 같은 반이 되고 싶어했어요. 우리 반이 되면 1년 내내 저한테 노래를 배울 수 있었거든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되면 한 명이 문 앞에서 망을 보고 저는 풍금을 치면서 아이들에게 올드팝을 가르쳐줬어요. 우리 반 애들이 절 많이 좋아했죠.

이재만 문예반 활동도 했다고 들었어요.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윤희정 글 쓰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지금도 공연 초대장에 들어가는 글은 제가 직접 쓰고요. 이번 100회 공연에 맞춰 에세이를 내는데 그것도 어릴 적 재능이 이어진 셈이죠.

이재만 윤희정 씨가 쓴 에세이라면 다른 책들과는 다를 것 같아요.
윤희정 우리나라에서 재즈를 즐기는 인구가 10%인데 제가 쓰는 에세이는 나머지 90%를 타깃으로 한 것이에요. 제목이 <이 노래 아세요>인데 재즈 히스토리가 아니라 그동안 제가 불러온 재즈 노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풀어 썼어요. 친구에게 말하듯 썼기 때문에 사람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재만 재즈를 시작한 이후로 계속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윤희정 저음을 계속 개발하고 있어요. 저음으로 내려갈 때 재즈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 이후로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의 음을 더 낮추고 있어요. 푸근하고 여러 번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음을 만드는 거죠. 또 같은 노래를 불러도 나만의 해석의 여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멜로디를 다르게 부르는 것도 계속 연습하는 것 중 하나예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는지 많이 들을 수밖에 없죠.

이재만 듣는 만큼 깨달은 것도 많이 생겼을 것 같아요.
윤희정 그동안 들은 만큼 노하우가 생겼죠. 하지만 남과 똑같이 하기 위해 10년 넘게 연습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요. 비슷하게 될 수는 있겠죠.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톱(TOP)보다는 온리 원(Only one)이 되고 싶어요. 저 아니면 안 되는 것, 저만 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누구나 톱은 될 수 있어도 온리 원은 정말 희소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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