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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에이 수지와 원더걸스 소희의 슈즈 디자이너
미스에이 수지와 원더걸스 소희의 슈즈 디자이너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6.20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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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미의 구두에 대한 철학

 
여자에게 구두란 그 자신이기도 하다. 어떤 구두를 어떻게 매치했느냐는 그 사람의 감각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가장 짧은 순간에 보여주는 요소이므로. 그래서 구두를 고르는 일은 즐겁기도, 까다롭기도 하다. ‘구두를 만드는 여자’에게 구두란 무엇일까. 아늑한 쇼룸에서 만난 구두 디자이너 윤홍미의 블랙 에나멜 플랫폼은 단연 시선을 사로잡았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젊은 디자이너의 일상을 듣고 싶다고 하니, 윤홍미 디자이너는 너무 평범해서 딱히 짚을 것이 없다고 주저했지만 남보다 조금 느리게 시작하고 항상 음악을 켜 두는 그녀의 하루는 결코 지루하거나 평범하지 않았다.
레이크넨이 추구하는 ‘오래되고 단단한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이처럼 예사롭지 않은 습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녀의 구두들은 애써 뽐내려 하지 않지만 정제된 세련미와 독특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그 매력이 깊다. 많은 여자들이 그의 구두에 열광하는 것은 틀에 박힌 드레시함 혹은 가벼운 단순함뿐인 구두들과는 확실히 다른 묘한 매력 때문이다. 원더걸스 소희, 미스에이 수지 등 아이돌 스타가 신은 제품들은 온라인에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구두를 사랑하게 된 까닭부터 레이크넨의 2014년 화두까지 디자이너 윤홍미와의 일문일답.

소희 신발, 수지 신발이 한참 인기였다. 셀렙 슈즈가 생긴 건 기분 좋은 일일 것 같은데.
-워낙 우수한 신체 비율을 가진 분들이라 아울러서 이슈가 됐던 것 같다. 특정 스타를 타깃으로 협찬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수지 씨의 경우 어떤 제품을 신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확인했는데 산뜻한 소녀 이미지가 더 배가돼서 보기 좋았다. 기분 좋고 재미있는 일이다.

주로 어떤 곳에서, 또는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는지.
-영화나 음악에서 주제를 얻는 편이다.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짧은 글들도 그에 해당한다. 눈에 띄는 것들은 따로 스크랩해 두었다가 디자인으로 연결해 볼만한 것들을 콘셉트 주제로 내놓는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도 꾸준히 같은 방식으로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을 기록해 두니까. 회의가 굉장히 길다.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얘기하고 생각하면서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보니 이미지든 한 줄의 글이든 다양하게 접근해 보는 거다. 이번 시즌에는 노자의 사상이 주제였다. ‘모든 사물은 때론 덜어내야 더해지게 되고 때론 더해도 덜어지게 된다’는 철학적 화두. 개념이 어려울 수 있지만 동양적인 느낌이 많이 가미됐다. 그런 느낌을 직선적으로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미니멀하다’는 평에 대해서도 일부 동의한다. 이를  테면 심플하게 제작된 슬립온의 경우가 그렇다.

윤홍미의 기획 방식은 얼마 전 패션 다큐멘터리 영화 마드모아젤 C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프랑스의 모델 출신 패션 에디터 카린 로이펠트의 회의 테이블을 떠올리게도 한다. 한정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세부사항을 추려 가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상태에서 끌어온 이미지와 감성을 출발 지점에 놓고 그 에너지를 결과물에 도달할 때까지 그대로 가져가는 식이다.

 

원더걸스 소희가 신어 큰 관심을 받았던 레이크넨의 플랫폼 플랫슈즈.
안쪽의 레이저 커팅이 독특하다.

구두를 사랑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비단 패션 아이템들 중에서만 아니라 무엇보다 구두를 좋아한다. 많이 보게 되고, 자주 생각한다. 24시간 자면서도 구두를 생각한다.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고 직접 디자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이어왔던 것 같다. 특히 헬무트랭 2005년 쇼에서 봤던 신발을 보고 직접 디자인해 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많은 여자들이 구두를 사랑한다. 그 열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그런 애정에도 불구하고 사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구두를 제대로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안목에 대한 조언도 함께 부탁한다.
-그 역시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 이끌림인 것 같다. 새로운 디자인을 보면 신어보고 싶고, 갖기 위해서 오랫동안 돈을 모으기도 하는 등 패션에 대한 열정은 참 경이롭다. 특히 구두에 관해서 더 얘기하자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을 때 여자들이 립스틱을 구입하지 않나. 액세서리나 화장품의 경우 비교적 큰돈이 드는 건 아니니까. 그 다음이 구두가 아닐까? 옷 한 벌보다는 단출하니까. 한 켤레의 구두는 꽤 오랫동안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사실 내 경우도 신발만큼이나 옷에 관심이 많다. 항상 시즌 트렌드를 체크하고 다양한 코디를 시도해 보는 편인데 안목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옷에 관한 한 패션 신에서 나보다 더 제대로 보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일반인들이, 특히 여자들이 트렌드에 대한 자신의 이해도가 높지 않다고 느끼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거다. 하지만 안목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안목의 일인자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작품을 구상할 때 오래 두고 한참 생각하는 편인가? 혹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편인가?
-후자다. 시즌 프레젠테이션 회의 때 ‘너무 갑자기 생각이 난 거라 생뚱맞을 수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하자’고 운을 뗀 다음 그 갑작스러운 생각을 말할 때가 많다.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가느냐가 문제겠지만 순간적인 착상이 훨씬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아찔한 힐 디자인은 추구하지 않는 것 같다.
-구두에 섹스어필의 개념이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부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던한 느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힐을 만들기도 하지만 역시 투박하고 묵직한 힐이다. 충분히 여성스러운 라인이 묻어나올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자기에 대한 확신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구상 도중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는지.
-확신할 수 있어야 잘 만들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디자이너로 살겠다는 결심을 할 때에도 완전한 자신감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콘셉트를 정하고 라인업하면서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는 편이다. 그 힘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니까. 그런데 얼마 전 TV에서 한 가수의 이야기가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더라. 자신감과 자괴감의 문제다. 이거다, 하고 곡을 써서 작업하고 녹음할 때는 이것만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힘을 쏟아 붓고 대중 앞에 내놓는 순간까지 완벽한 확신을 한다는 거다. 그런데 막상 앨범이 나오고 무대에 서면 그것들이 다 무너진다는 이야기. 나도 그런 과정을 겪는다. 이 콘셉트 외에 대안이 없다, 최고다 자부하면서 작업을 해놓고 막상 발표가 끝나면 갸우뚱한다. 자신감과 확신에 찼다가 다시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결과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자괴감이 드는 시기에는 힘이 빠진다. 그러나 결국 이 사이클이 내 구상의 오래 묵은 방법이고 또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지난 1월 28, 29일 양일간 신사동에서 아홉 번째 컬렉션을 전시한 레이크넨은 2014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남성화 론칭을 알리기도 했다. 윤홍미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스타일의 남성화는 역시 모던한 라인이 돋보이는 제품으로 레이크넨만의 새로운 제안이 펼쳐졌다. 레이크넨은 앞으로 온라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홍보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남성화 론칭에 따른 디자인 영역 확대, 해외 진출 등 새로이 시작하는 일들이 쌓여가는 상태. 계획을 거듭하고 꾸준히 새로운 그림을 떠올리면서도 윤홍미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먼 미래보다는 지금의 행복이다. 지금 원하는 것을 우선 갖고, 그 성취감으로 또 다른 것을 발견하고 흥미로운 곳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일이 그가 디자이너로 사는 힘이 된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의류업체 한섬에서
일했던 윤홍미 디자이너는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런던에서 액세서리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한섬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복귀한다. 그로부터 1년 후
윤홍미의 레이블이 론칭됐다. 2010년부터
선보여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사랑받아온
‘레이크넨’이다. 매 시즌 평범하지 않은
컬렉션으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2014년
‘덜어야 더해지고, 더해도 덜어진다’는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컬렉션 ‘EMPTINESS IS
FULLNESS/비움, 채움’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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