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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당파 싸움 해결을 위한 왕의 염원, 탕평채
지독한 당파 싸움 해결을 위한 왕의 염원, 탕평채
  • 복혜미
  • 승인 2014.06.23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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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한식의 아름다운 오방색(五方色)을 고스란히 담은 탕평채는 예로부터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던 음식이다.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데친 미나리, 구운 김 등을 섞어 만든 청포묵무침이라고도 부르는 탕평채에는 사실 조선시대 궁중의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진행 도수라 | 사진 및 자료제공 한식재단(www.koreanfood.net, www.hansik.org),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 이야기(한식재단)

무수리의 아들 불행한 왕 영조

궁중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무수리를 어머니로 둔 영조는 조선의 경종이 죽은 후 왕위에 올랐지만, 경종을 지지했던 소론은 영조가 경종을 독살한 것이라 오해하고, 그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었다. 하필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소론과 가까운 사이였고, 아들이 임금의 자리를 넘본다는 생각에 시달린 왕은 급기야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만다. 뒤늦게 이를 후회한 영조는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며 당파에 휩쓸리는 왕이 아닌, 인재를 바로 볼 줄 아는 굳건한 왕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탕평책’을 펼친다.

탕평채는 탕평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영조가 신하들에게 하사한 음식이다. 색이 곱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알려진 탕평채는 녹두묵의 푸르스름한 흰색, 볶은 고기의 붉은색, 미나리의 푸른색, 김의 검은색이 어우러져 혀와 눈을 즐겁게 한다.

색의 조화 속에 조선시대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바람 잘날 없었던 당파의 화합을 바라는 왕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탕평채에 흰색 청포묵이 주재료가 된 것도 이 음식이 처음 등장할 당시가 서인들의 집권기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서인들을 의미하는 색깔이 흰색이다.

당파의 조화를 꿈꾸는 왕의 바람

원재료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깔끔한 맛의 탕평채는 보기와는 다르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으깨지기 쉬운 청포묵을 조심스레 채썰고 고기도 채썰어 별도의 양념에 버무려 둔다. 숙주는 머리를 떼고, 미나리는 잎을 떼 음식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씨 바른 홍고추와 황백지단으로 부친 달걀도 채썬 뒤 각각 조리과정을 거쳐야 드디어 한 그릇에서 조화를 이룬다. 그릇에 올리기까지도 청포묵과 숙주, 미나리를 각각 데처내고 쇠고기는 볶아내는 등 정성이 담겨야 비로소 제맛을 낸다.

그러니 탕평채는 당파 간 분쟁을 해결하고 원만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무수히 오랜 세월 공들인 영조의 모습과 꼭 닮았다. 왕도탕탕 왕도평평(王道蕩蕩 王道平平), 치우침 없고 무리가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고 무리가 없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는 평평하다는 <서경>의 가르침처럼 ‘탕탕평평’ 조선을 이루기 위한 왕의 오랜 염원을 담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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