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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호텔로 초대하는 농촌
유기농호텔로 초대하는 농촌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06.24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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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호텔 그륀(Biohotel Grun)

▲ 유기농호텔 전경. 입구에 있는 비오란드 유기농 인증마크가 눈에 띈다
 
유럽에는 지금 유기농 호텔이 붐을 이루고 있다. 유기농 호텔을 체험해보면서 우리도 유기농 호텔 하나쯤 가져보았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글·사진 | 이민호(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급증하는 유기농 호텔

2010년 10월, 유럽 언론에서는 드디어 유기농이라는 산업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겼다고 보도를 했다. 이 말은, 유기농으로 표현되는 비즈니스가 식품산업의 일부 니치 마켓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주류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유기농 사업이 이런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색다른 시각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유기농 철학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색다름을 인정해주는 유기농은, 이제 식품의 영역도 과감히 뛰어 넘어 유기농 호텔 비즈니스로 확장해 가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영국에서만도 새로 생긴 유기농 호텔이 33개에 달하고, 이미 전 세계에 736개 유기농 호텔이 등록되어 있다. 아시아에서도 인도에 15개를 비롯하여 네팔, 태국 등 여러 나라에 유기농 호텔이 있다.
그린투어리즘이나 생태관광이란 용어는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을 만큼 되었다.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담가보고 자연과 교감하고 돌아오는 여행을 계획하는 도시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행 중에서 자연 경관이 깨끗한 농촌에 머물며 시골의 맛과 멋을 경험하면서도 잠자리는 쾌적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런 쾌적함에 대한 도시민적 욕구 충족에 보다 집중하여 유기농 식단과 자연 소재 가구로 빚어낸 그린투어리즘이 유기농 호텔이다. 그렇다면 단지 유기농 식사가 제공되고 잠자리가 쾌적하면 유기농 호텔이라 할 수 있는지, 그런 것이라면 그다지 붐을 일으킬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지, 나는 이런 궁금증을 갖고 독일 헤센 주 국립공원 지역에 위치한 유기농 호텔 한 곳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훈훈한 인심이 호텔 경영 전략

택시를 타고 울창한 나무숲을 가로질러 10여 분만에 도착한 비오호텔 그륀은 시골 마을과 살짝 거리를 두고 한가로이 서있었다. 호텔 CEO인 더크 라테이케 씨가 양 두 마리와 함께 호텔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택시에서 내리자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호텔의 외관이 예쁘다고 인사를 하자, 원래는 증기기관차가 오가던 기차역을 호텔로 모델링한 것이라며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호텔은 아담하고 가구들은 소박했지만 널찍한 방과 세련된 욕실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에게는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아이들 방과 간이 부엌이 붙어 있는 넓은 객실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그런 훈훈한 경영 전략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국립공원 지역임에도 크리스마스 휴가철을 맞은 가족단위 손님들로 넘친다고 했다.
라테이케 씨는 호텔에 투숙한 모든 손님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하느라 분주하면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유기농 식단 중에서도 채식주의 식단이 궁금했던 나는 투숙하는 2박 3일 동안 채식 식단을 요청해 놓은 상태였는데, 매번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내게 어떤 요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묻고 특별히 준비한 요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곤 하였다.

▲ 100% 유기농 인증 농산물로만 제공되는 음식
▲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 주는 센스 있는 호텔 전속 요리사










이즈음에 먹는다는 전통 생선 요리를 뒤늦게 듣는 바람에 요리를 해달라고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프리미엄 유기농 비오란트(BioLand) 인증을 받은 호텔의 채식 식단은 대만족이었다. 특히 향이 짙은 딸기 푸딩과 쿠키의 맛이 일품이었다.
유머감각이 넘치는 요리사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24시간 개방되는 식당에서 늦은 밤에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있는 나를 위해 벽난로에 불을 붙여주고 퇴근했다.

유기농 호텔이 보여준 농촌, 그리고 여행

라테이케 씨는 나에게 특별한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20년 된 자신의 폭스바겐과 최신형 포드 자동차 중에서 탈 것을 고르라고 하였다. 나는 주저 없이 낡은 폭스바겐을 선택했다. 우리는 요란하게 들리는 엔진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 인근 마을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시골 마을이 왠지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는 40여 농가가 있던 마을이었는데 농업 경쟁력을 높인다고 규모화 하다보니, 이제 딱 네 농가만 농사를 짓고 나머지 농민들은 농지를 팔거나 빌려주고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텅 빈 축사의 퇴락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라테이케 씨는 하는 수 없이 18Km 떨어진 다른 마을의 유기농 농가들로부터 감자나 당근과 같은 채소와 계란, 버터, 치즈, 우유, 고기, 그리고 유기농 양식 생선을 구입하고 있었다. 과일과 같은 나머지 농산물은 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올라오는 비오(Bio) 유기농 인증 농산물을 사용한다.
이런 연유로 나처럼 호텔에 여행객들이 오면,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친근한 유기농 농장으로 손님을 모시고 온다고 하였다. 네 곳에 위치한 유기농 농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낚시, 당나귀 타기, 농장에서 직접 생산한 치즈나 소시지 같은 유기농산물 구입하기가 전부이지만 말이다.
물론 호텔 인근에는 국립공원이 있고, 선사유적지가 있고, 지금도 운행하는 증기기관차를 탈 수도 있다. 이런 관광을 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투박한 농장 담벼락 아래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려고 직접 주워 온 이끼로 예쁘게 트리 장식품을 만들고 있던 농장 주인장을 뵙는 것이 더 즐거웠다.
다른 나라에서 온, 처음 본 사람과 자신이 가꾸는 아담한 텃밭 정원에 대해서 정담을 나누는 쾌활한 아주머니가 무척 인상 깊었다. 엄마는 70마리 소가 있다고 하자, “우리 농장에는 정확히 일흔네 마리가 있다”고 엄마의 설명을 고쳐주며 씩 웃는 고등학생 영농후계자 친구가 그 어떤 관광 상품보다도 더 예뻐 보였다.
지금 유기농 호텔의 성공 비결은, 멋스럽게 시골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민호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
원 유기농업과에서 농업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국제유기농학술상인 오피아
(OFIA)상의 코디네이터. 한국응용곤충학회 평의원.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유기농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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