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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는 동포 자원,어려울 때는 외면하는 한국정부
필요할 때는 동포 자원,어려울 때는 외면하는 한국정부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6.29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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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 미치는 한국의 힘 아직도 그립다”

 
한국을 떠나 이민생활을 하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해외에서 어려운 이민생활을 하면,
믿을 것은 조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지원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이민자들이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 그 실상을 살펴봤다.

취재·사진 AUSTIN YOO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남가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비공식집계 120여만 명이다. 한인들은 가족과 자녀들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굴하지 않는 의지가 있다.
심지어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인들의 교육열에 대해서는 미국 교육계에서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한인들의 교육열은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을 낳은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고생하면서 오늘날 ‘한인커뮤니티’로 성장한 것은 한인들의 타고난 성실이라고 평가해도 된다.
이제는 특정한 민족만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한 세상이 아니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한국인들도 여러 인종들과 서로 존중해가면서 각기 필요한 영역에 대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이익을 추구하고,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환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거주하는 국가에서의 정착이 성공하면, 그것이 한국 국가로 봐서는 큰 재산이 될 수 있으며, 글로벌시대에 한국이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 (위) LA폭동 당시 사망한 故 이재성 씨 추모장면. (아래) LA폭동 당시 폭도들에 의해 불에 탄 코리아타운 한인업소들.
교민사회에 눈감는 한국정부

한국정부나 정치권에서, 한국인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는 것을 독려한 적도 있다. 한때는 광부나 간호사들이 독일로 진출해 이들이 번 돈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했으며, 베트남전 참전과 중동건설 진출도 결국 이런 사례로 생각된다. 100년이 넘는 동안 미국에 꾸준히 진출한 한인들은, 이제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볼 때 분명한 중요한 경제적, 인적자원임에는 틀림없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가든지 한국인들이 거주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한국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또는 애매한 이유로 눈을 감아 버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LA 흑인폭동이다. 사건의 불씨는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갈등이었는데, 그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한인들이 됐다. 흑인 커뮤니티에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업소(리커스토어, 마켓)들은 대부분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가 한인들이 운영하는 업소에 약탈과 불을 질렀으며, 한인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피해자가 됐다. 그리고 미국의 주류언론들은 이 같은 사건을 마치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차별의 분노가 아닌 한인들과의 문제점으로 몰고 가, 영락없이 흑인들에게 모질게 구는 ‘코리안’이 되고만 것이다.
졸지에 흑인들로부터, 또는 주변에 살고 있는 히스패닉들로부터 약탈과 방화를 당한 한인들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몽땅 잃고 넋이 나간 모습을 화면으로 봤다. 한인들은 이 억울함을 뒤늦게야 한국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시 한국은 대통령 선거철이라 후보 몇몇만 잠깐 와서 당선되면 해결하겠다는 형식적인 허풍만 떠들고 갈뿐, 누구 하나도 미국 정치권 인사나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 우리 한국의 국민들이 재산과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인들은 이들의 재산과 생명에 피해를 준 흑인과 히스패닉인들에 대한 미움보다는 한국정부에 대한 섭섭함과 분노가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후에도 한인들이 부당하게 미국정부나 법조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오히려 수모를 당해도 한국정부는 물론 정치인들이나 관계자들은 꼬리를 빼고, 묵묵부답인 게 현실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정부로 파견된 공관원에게 미국정부의 기밀문서를 넘겨주었다고 스파이 혐의로 8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로버트 김(현 김성곤 국회의원의 형) 사건도 그렇다. 그의 억울한 옥살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한인들이 한국정부에 도움을 호소해봤지만, 한국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국에서 수해나 재해가 날 때, 특히 IMF 때 금 모으기 때에도 미국에 있는 교민들은 사재를 털어서 수재기금, 재해기금, IMF 극복 기금으로 보냈다. 교민들은 조국에 있는 자신들의 친지들과 국민들을 위로하고 애국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마음 안에는 내 부모 품 같은 조국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어려울 때, 혹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한국정부측은 “검토하고 있다” 혹은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전부다. 교민사회에서는 이런 한국정부를 아직도 의지하고, 믿고 보호해줄 수 있다고 기대하도 되는가라는 회의적인 분위기도 흐른다.

자국 이민자들 이익에 앞장서는 일본과 중국정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이민자들은 어떨까. 지난 1992년에는 루지애나 주의 바톤 루지 시의 한 가정집에서 할로윈데이에 일본 유학생이 모르고 일반 가정집을 방문했다가, 집안에 있던 미국인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들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 불만을 토로하자, 미국은 정부차원에서 진지하게 사고하면서 불을 끄려고 노력한 것이 기억난다.
1994년에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 유학생 2명이 머리에 총격을 받고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일본 유학생이 뚜렷한 이유 없이 살해되자 미국과 일본은 양국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것을 우려해,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마이크 맥커리 국무성 대변인, 피트 윌슨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리처드 리오단 로스앤젤레스 시장도 이에 대한 빠른 조치를 요구하면서 무마에 나선 모습을 보았다.
지난 4월 11일 로스앤젤레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USC(남가주대학)에서 중국 유학생 총격피살 사건이 발생했다. 23살 된 중국 유학생이 주차된 차에 타려다 강도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이 지나자, 미국 경찰당국은 거의 개혁에 가까운 치안대책을 발표했다. 예산이 부족해 인력난으로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USC대학의 치안을 위해 갑자기 경찰관 30명을 증원한다는 것은 거의 파격적인 조치였다. 물론 남가주지역의 명문대학인 USC대학의 힘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중국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것이 미 언론들의 해석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 주재 공관원들이 미국 내 치안당국에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무엇인가 압력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제 강국이며, 글로벌시대의 주역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이제는 미국 내 한인교민들의 안전 역시 내국인처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다. 300만이 넘는 미국 내 한인들, 이들이 이끌어내는 경제력은 이제 미국 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규모다. 그래서 이제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을 높이기 위해 한인 정치인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는 추세다. 연방, 주, 시 의원들과 지역안전을 위한 경찰관, 소방관, 입법부내 판사와 검사,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내에도 한인들의 활동이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한국계 미국 대통령이 탄생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의 마음에는 자신들의 뿌리는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나가 있는 자식들이 사고로 피해를 입을 때 가장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부모인데, 부모인 한국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교민보호정책과 배려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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