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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주', 소소한 일상의 한 페이지
영화 '경주', 소소한 일상의 한 페이지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6.30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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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토크

 
멜로 영화는 모 아니면 도다. 감동 아니면 지루함이다. 그래서 멜로는 제작자에게는 ‘어드벤처 영화’다. 영화 <경주>(장률 감독)는 현과 윤희의 하루를 두 시간 안에 담았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잔잔한 것도, 느슨한 것도, 여백의 미도 2시간이면 충분히 지겹다. 그러나 경주를 여행 중인 최현은 즐겁다.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그의 엉뚱함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한편의 고품격 코미디를 보고 있는 듯 2시간이 흐뭇하다.

글 이시종 기자 | 사진 언니네홍보사 제공

영화 <경주>는 오늘 아침부터 내일 아침까지 벌어지는 한 사람의 매우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 그 일상은 지금 내가 처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른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서 보는 내내 편안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콧방귀 뀔 만큼 시시해 보일지라도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는 그렇게 어제와 오늘의 내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2시간 동안의 가벼운 ‘힐링 여행’

북경대 교수이자 동북아 정치학의 일인자 최현(박해일 분)은 문득 7년 전 봤던 춘화의 기억에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일에 싸인 미모의 찻집 주인 윤희(신민아 분)를 만난다. 하지만 대뜸 춘화의 행방을 묻는 그가 윤희의 눈에는 그저 변태로 보일 뿐이다. 이를 알 리 없는 최현은 경주로 찾아온 옛 여인 여정(윤진서 분)을 만나기 위해 경주역에 갔다가 다시 찻집으로 돌아온다. 그를 변태로 오해했던 윤희는 점차 순수하면서도 진중한 최현의 모습에 묘한 설렘을 느끼고 최현 역시 윤희의 엉뚱한 매력에 이끌리기 시작한다.

영화 <경주>는 제목만큼이나 배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경주는 어디를 가더라도 고분군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유서 깊은 절터와 각종 유적지로 뒤덮인 도시다. 도시개발이 제한된 덕분에 풍광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최현이 자전거를 타고 윤희와 걷는 모든 곳,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어느 곳이든 살랑거리는 푸른 풀과 나뭇잎을 볼 수 있다.

장률 감독은 경주라는 장소가 주는 이미지의 힘으로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간 영화 <경계>, <망종>, <중경>, <이리>, <두만강> 등에서처럼 특정 지역의 이미지로 영화를 만들어 온 장 감독의 색깔이 확실히 묻어난다. 그 덕에 관객은 현과 윤희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찻집 ‘아리솔’을 비롯해 경주역, 보문호수, 고분능 등에서 수학여행지, 혹은 역사 유적지로만 각인됐던 경주의 색다른 면을 확인하게 된다.

장 감독은 경주를 숨겨진 환상과 낭만이 깃든 장소로 그려내는 것은 물론, 경주가 지닌 신비로움을 그대로 프레임에 옮겨냈다.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묘한 느낌은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설렘을 안긴다.

박해일과 신민아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도 좋다. 먼저 박해일은 최현을 통해 지적이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박해일 특유의 능청스럽고 엉뚱한 매력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며 특별한 재미를 안긴다. 반면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던진 신민아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분위기를 풍기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흐름이 느린 데다 러닝타임(145분)이 짧지 않은 탓에 자극적이거나 호흡이 빠른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면서 한 번쯤 천천히 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화를 보면 분명 약 2시간 동안 가벼운 ‘힐링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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