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5:25 (금)
 실시간뉴스
서강대 왕상한 교수의 '여성찬가'
서강대 왕상한 교수의 '여성찬가'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6.30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내가 아니라 당신이어서 고마워

 
직장과 가정 사이의 역할 균형 문제를 놓고 '워킹맘'들은 늘 고민한다.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났지만 가사와 육아 비중이 크게 줄지는 않은 까닭이다. 이 같은 고충을 바로잡기 위해 직접 여성들의 대변자를 자처한 이가 있다. 토론과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미스터 로직(논리)'으로 불리는 왕상한 교수다. 이 시대 남편들에게 고하는 '결혼 13년차' 왕 교수의 여성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언.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왕상한 교수는 기자로 활동하다 국제통상 전문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30세의 나이에 유학을 결심했다. 다소 늦은 유학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는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해 아시아인 최초로 법학박사 학위를 따는 등 목표한 바를 이뤄나갔다. 미국 대형 로펌 회사에서 일을 하다 서강대학교 법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유학과 변호사 활동이 이어지면서 결혼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사 논리적인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불합리한 가정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가정에서 일정 부분 특권을 누리는 남편에 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다행일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현명한 아내', '슈퍼맘'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공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토론 방송 사회자로서 진정한 중립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반대편에 서는 것이라고 믿는 왕 교수. 그가 아내의 편에 서서 남편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부부들의 공통 주제를 화두로 던진 이유다.

가깝고도 먼 부부라는 관계

그는 최근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은행나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평소 아내와 갈등과 다툼이 있던 날이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역지사지'의 자세로 정리한 내용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며느리이자 아내이면서 동시에 직장인인 아내의 입장에 서 보니, 남편으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고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쉽게 생각해 봅시다. 남편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지만, 아내이자 엄마라고 해서 그것이 마냥 쉬운 일일까요? 아침에 회사에 갔다가 잠깐 시간이 되면 아이들 식사를 챙겨준다는 게 정말 간단치 않은 문제거든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아내와 대화를 했거나 이견과 다툼이 있었을 때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본 것들을 정리한 거죠. 책 서문에 나오지만 이 땅의 모든 여자들에게 바치는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담은 에세이예요."
책을 보면 왕 교수의 지극히 사적인 부부 생활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남편의 역할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의 과정이 담겨 있어, 에세이지만 부부 생활 지침서의 성격도 짙다. 경험과 사유에서 비롯된 그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에게는 위로를 건네고 남성들에게는 진심 어린 변화를 주문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맞벌이 부부인데 당장 회사일이 바쁜 남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내는 '어린이집에 행사가 있는데 급한 일이 있어 못 갈 것 같다'며 대신 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회사 일 때문에 가지 못하는 미안함과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돼'라는 짜증이 더해져 화를 버럭 내죠. 이게 바로 부부 관계에서 남자이기 때문에 누리는 유리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남편들이 고마워하기는커녕 너무 당연시하는 게 문제죠. 이처럼 부부간에 싸움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 가운데 남자들이 조금 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싸울 일이 아닌 것들이 많다는 거죠."
따라서 그는 이번 책에 대해 "중년 부부뿐 아니라, 결혼을 앞둔 청년 등 많은 연령층에게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독신주의자가 아니라면 아내가 며느리, 엄마, 직장인으로 살면서 겪는 애로사항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남자들이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있다.
"결혼한 지 오래된 남편의 경우 아내가 엄마이자 며느리, 직장인으로서 겪는 고민이나 애로사항들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을 것 같아요. 상황별로 정리된 이야기들을 가볍게 읽는데 그치지 말고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 저처럼 입장을 바꿔 놓고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설득하려면 설득당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는 서강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대중에게는 토론과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로 잘 알려져 있다. 토론 프로그램 사회자로서 그가 보여주는 냉철하면서도 중립적인 진행은 프로그램 흐름을 잇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진행자로서 진정한 중립의 의미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놨다.
"진행자로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균형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만약 시작 전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반대편에 서서 중심을 바로잡아주는 게 진정한 균형이자 중립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적인 중립으로 깨진 균형을 방치하는 것은 진짜 균형이 아니죠."
그는 올해로 14년째 방송 생활을 하고 있다. '미스터 로직'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 논리적인 대화법에 능숙한 그가 실생활에서는 대화의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했다. 게다가 잘못된 소통 기술로 자주 다투는 부부가 적지 않은 만큼, 그가 배우고 경험한 소통 기술에 관해 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대화와 통고, 토론이 있어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상대방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 대화라면, 반대로 통고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전하는 거죠. 토론은 설득의 과정인데, 일방적으로 설득을 시키려고만 하면 싸움이 되기 쉬워요. 설득을 하려면 설득당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하고, 또 부부 사이에 가장 좋은 건 대화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부부가 함께 살면서 크고 작은 다툼을 피할 수 없는 만큼, 갈등을 해소하는 노하우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잘 못하지만, 잘못했다는 말은 한다"며 "잘못을 했을 경우 입이 아닌 가슴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부싸움을 하면 싸우는 이유나 과정 등에서 잘못한 부분이 서로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자신의 잘못이 용서되는 건 아니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이니 냉정하게 생각해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먼저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잘못을 묻지 않아야 해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 될 수 있는 만큼 사과를 할 때는 절대 "잘못했는데 말이야, 당신은…"이라는 말로 조건을 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속마음 편지

왕상한 교수는 스스로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강의와 방송, 운동 등으로 빽빡하게 짜인 계획들을 소화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남자친구로서는 좋은 상대로 생각할 것 같은데, 남편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일에 미친 사람이에요. '내가 여자였다면 나 같은 사람과 결혼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으니까요. 보통 주중에는 아침 5시에 집에서 나와 강의나 학생 면담, 논문 작성, 그리고 방송 진행까지 하다 보면 저녁 11시나 돼서야 귀가를 하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라디오 방송 스케줄이 잡혀 있는 데다, 일주일에 세 번은 변호사로서 자문을 하는 일도 있어서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낼 겨를이 없는 편이죠."
때문에 그는 주말은 가급적 가족과 함께 지내는 편이다. 또 가사 분담을 위해 주말에 설거지를 하는 것은 물론, 매일 장을 보는 일도 도맡아 하고 있다. 그가 가족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일종의 룰이었다.
"가족과 있는 시간은 주말 정도예요. 저를 '남친'으로 생각하면 좋은 친구일 것 같은데, 좋은 남편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닐 것 같아요. 가족과 보내는 절대적 기준의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가사 분담을 위해 노력하는 차원에서 시장에서 매일 장을 보고 있죠. 그리고 주말마다 설거지를 하고 이불을 개는 정도는 저만의 규칙처럼 지키고 있어요."
평소 아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은 그가 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한민국 보통 남편이 그렇듯 그 역시 표현이 서툰 편이라고 했지만, 책을 통해 아내가 자신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기대했다.
"주변에서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쓴 건 아니냐'는 농담 섞인 반응도 있었어요. 이 책을 보고 나서 아내가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 보였죠. 평소 아내에게 제가 가진 감정이나 느낌들을 말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못 돼요. 그렇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글로 보게 되는 거니까, 아내가 알고 있던 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믿어요. 물론 아내를 의식하고 쓴 책은 아닙니다(웃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