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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품은 꽃과 같은 농부의 여름
열매를 품은 꽃과 같은 농부의 여름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7.01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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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울토마토꽃
꽃구경하기 좋은 요즘이다. 꽃구경하러 들이나 산, 그리고 드라이브 코스를 찾을 필요도 없이 지금은 밭에서 꽃구경하기 좋을 때다. 무슨 꽃구경하기 좋은 때인가 하면 군침이 도는 ‘맛있는 꽃’ 구경하기 좋을 때다. ‘맛있는 꽃’이라 하니 먹을 수 있는 꽃들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초여름의 뙤약볕을 견뎌가며 탐스러운 열매를 위해 꽃을 피운 건강한 생명들을 구경하고 감탄하기에 참으로 좋은 요즘이라는 말이다.

글·사진 | 조우상

꽃과 열매

토마토 모종들이 조금씩 몸집을 키우며 작고 예쁜 토마토를 맺기 시작했다. 방울토마토도 그냥 토마토도 모두 작고 예쁜 열매를 매달고 있다. 그 작고 가냘파 보이는 토마토의 노란 꽃이 피고 지면 그 자리엔 어김없이 토마토 열매가 맺히게 된다.
그래서 꽃을 보면 자연스레 탐스럽게 익은 빨간 토마토 열매를 떠올리게 된다. 고추꽃도 마찬가지. 하얀 고추꽃이 피고 지면 그 자리엔 어김없이 먹음직스런 고추가 맺힌다. 줄기마다 핀 하얀 고추꽃을 바라보는 농부의 입가엔 벌써부터 알싸하게 매운 한여름 풋고추의 맛이 전해지는 듯하다.
열매를 품은 꽃들을 구경하는 색다른 꽃구경이 펼쳐지는 초여름의 텃밭은 그래서 거둔 것 없이 풍성하다. 꽃은 열매를 담고 피고, 열매는 씨앗을 품고 맺힌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모든 농사는 그러한 자연의 순리 안에서 순환하며 이어진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사랑의 순리와도 같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저 텃밭의 생명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싹과 줄기, 꽃과 열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 모두가 자연의 순리 안에서 순환하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늘과 땅의 생명 모두가 그렇게 자연의 순리 안에서 끊임없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생을 이어간다.

부모님의 희생

▲ 가지꽃
옛 속담에 이르기를 ‘가지꽃과 부모님 말씀은 버릴 것이 하나 없다’고 하였다. 진한 보랏빛의 가지꽃이 피고 지면 그 자리엔 건강한 가지가 맺힌다. 물론 세상에 ‘무조건’이라는 것은 없으니 종종 헛꽃이 피고 지어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작물들에 비해 개화 후 착과율이 굉장히 높은 것이 바로 가지다. 버릴 것 없는 가지꽃이란 바로 그러한 연유로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한가한 초보 농군은 옛 속담을 빌어 가지꽃을 만나며 부모님을 떠올려 본다.
‘부모님 말씀은 버릴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버릴 것이 있다 여겨지면 그것은 자식이 부모님 말씀의 ‘겉’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가끔은 논리에 어긋나더라도, 아주 가끔은 서운하고 야박하게 느껴지더라도 부모님께서 자식에게 말씀 전하시는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진심 어린 걱정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담뿍 담긴 애정 어린 말일 테니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 말씀에 버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저 크고 건강한 가지, 고추, 토마토가 그 연약하고 가냘픈 꽃 한 송이 진자리에서 맺혔음을 알게 된다면 달라질 것이다. 세상 모두를 알고 있는 것 마냥 당당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그래서 부모님 말씀에 담긴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옳고 그름부터 따지겠다는 이 몸이 부모의 젊음이 지고 난 자리에서 나고 자라왔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건강한 고추를 담은, 커다란 가지를 담은 작고 여린 꽃과 같이 살아오신 부모님에게 더욱 큰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게 되리라. 그렇게 꽃을 떠올리며 부모님을 바라보면 한없는 고마움에 절로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그것이 내가 텃밭을 가꾸며 얻은 가장 소중하고 값진 배움 중 하나다.

자연의 순리

▲ 고추꽃
꽃이 자리를 물리며 키운 건강한 열매 안에는 새 생명을 간직한 건강한 씨앗이 자리하게 된다. 열매는 씨앗을 품고 키우기 위해 생명이 선택한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집이다. 꽃은 자신이 지닌 생명의 기운을 열매에게 물려주고, 그것을 물려받은 열매는 생명에의 의지로 씨앗을 키우고 지킨다. 그리고 씨앗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제 할미와도 같은 꽃을 피우고, 또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 열심이다. 모든 것이 씨앗에서 시작해 씨앗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니 씨앗은 그 자체로 자연이고 우주다. 작은 씨앗 하나에 담긴 꽃의 희생, 열매의 의지, 그리고 새싹의 건강함과 그 모든 것들의 끊임없는 순환을 이해하고서 다시금 씨앗을 바라보면 씨앗은 그냥 씨앗이 아니다. 씨앗은 그 자체로 자연이다.
시작은 무엇부터였을까. 태초에 씨앗이 있어 그로부터 이 순환이 시작되었을까. 그렇다면 그 씨앗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씨앗을 품은 열매가 먼저일까. 별의별 한가로운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답을 알 수 없는 그 질문에 시간과 정성을 빼앗기다가도 문득 쉼 없이 달리기만 하던 생각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그런 순간을 맞을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씨앗을 거둘 때이고, 열매를 따서 입에 넣을 때이며, 생명이 피운 아름다운 꽃과 인사 나눌 때이다.
그래서 초여름의 텃밭에서 고추꽃, 가지꽃, 토마토꽃, 오이꽃, 호박꽃 등과 보내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반갑게 느껴진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이란 이렇게 소박하기만 하다.

조우상

 
조우상 씨는 젊은 나이에 잘 나가던 기업 홍보 프로듀서를 그만두고, 헤어스타일리스트 아내와 함께 귀농했다. 현재 충남 부여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농사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을 블로그와 딴지일보에 기록하며 많은 이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coverdale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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