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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함께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다
대중과 함께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다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7.01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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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김금옥 상임대표

김금옥 상임대표는 인터뷰 약속을 잡던 날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였던 청와대 앞 청운파출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침착한 음성 너머로 애통함과 숙연함이 느껴졌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곁에서 말없이 있어주는 것 정도였다고 그날을 상기하던 김 대표는 '그래도 희망을 향해 가 보자'고 말했다. 김금옥 대표는 여성뿐 아니라 모두의 인권을 염려하는 사람이었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30년간 치열하게 여성인권을 부르짖어 온 여성운동가 김금옥 대표는 성매매 방지 법제화에 앞장서 온 장본인이다. 정책국장으로 시작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사무처장과 공동대표를 거쳐 온 김 대표는 성매매 방지를 비롯해 호주제 폐지 법제화 등으로 여성평등과 여성인권의 사회적 장치 마련에 큰 공을 세웠다. 여성이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긴 시간 싸워 왔다는 말은 어쩌면 평범한 문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생각에 오류가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 김금옥 대표는 지금이 '함께 모여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여성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참 어렵죠.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소위 '못생겨서 열등감으로 가득 찬 여자들'이 여성운동이라는 명목으로 피해의식을 해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직 많고요."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은 올해 창립 27년을 맞았다. 여연은 성차별적 법과 제도 개선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여성권익 및 여성복지 증진을 위해 새로 수립돼야 할 법제정 및 성차별적 법을 개정하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간 여러 여성, 사회단체들과 연대해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영육아보육법 제정, 성폭력특별법 제정,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여성발전기본법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에 기여한 바 있다. 호주제 폐지, 양성평등정책 확산 활동 등은 비교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여연의 영역이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철폐하고 인권을 보호한다는 뿌리로부터 이 같은 활동들은 뻗어나간다. 직장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제도개선 활동, 고용 촉진 및 평등 고용을 위한 정책마련 촉구 활동, 복지 및 여성건강권 확충 활동 연대 및 여성운동의 대중화 등을 통해 사회 개혁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활발한 일각의 움직임에도 변화는 쉽지가 않다. 세계 경제 포럼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지수는 135개국 중 107위,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과 대등해지고 '평등'이라는 가치가 어느 정도 실현됐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이 사회의 심각한 아이러니다. 실질적인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대표성, 기업 등 각 영역의 의사결정 단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자리는 아주 비좁다.

여성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곧 '약자'의 인권을 지키는 일

"빈곤, 노동, 일자리, 안전 등 현대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여성 문제와 맥을 같이합니다. 생애주기 동안 온갖 폭력에 시달리는 약자로서의 여성은 불균형한 권력 관계의 희생양으로 볼 수 있어요. 이 같은 구조에서 우리가 '성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은 곧 노인이나 장애인, 노동자와 이주민 등의 약자의 권리와 평등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성 평등 운동은 사회의 각종 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보듬고 권익을 지켜주는 것이 그 목적인 것이다. 김 대표는 동등해야 할 관계들이 어그러질 때 모두의 삶은 불행해진다고 말한다.
"여성운동, 여성평등에 대해 지금의 남성의 권력 위치를 기준 삼아 그것을 여자가 가지려고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성이 (현재 권력을 가진) 남성처럼 되려고 하는 것이 여성운동이 아닙니다. 모두의 삶이 동등하게 해방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여성운동의 근간이에요."
김 대표는 인권을 유린당한 약자들, 힘없는 여성들의 지위와 권리를 되찾기 위한 관심이 간절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30년 넘게 민주화, 여성운동의 현장에서 사회의 아픈 구석들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움직여 왔지만 김 대표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맞이할 때가 있었다. 지난 세계 여성의 날 전 날인 3월 7일, 이스탄불 문화원에서 터키 사람들을 위해 한국 여성인권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국내 어떤 모임이나 단체로부터도 받지 못한 제안이었다.
외국 민간 대사관에서의 뜻밖에 요청이 반가웠고 김금옥 대표는 주저 없이 강연에 나섰다. 터키는 당시 총리의 부패 문제로 국내가 시끄러운 상태였고,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젊은 지식인 그룹으로서 자국에서 일어난 상황들에 괴로워하며 국가의 인권 수준을 높이기 위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김금옥 대표에게 강연을 부탁했던 것이었다. 한국의 인권 역사와 성 평등과 관련한 법제정 등을 중심으로 강연했는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성인권 관련 활동들의 결과가 어떤지에 관해서였다.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인가?', '성형 광고, 반라의 여성 광고 모델들, 거리에 널린 성매매 업소 등은 어떤 배경으로 여태 성행하는가?'. 김 대표는 이 질문들이 우리 인권의 적나라한 현실임을 깨달았다. 뒤통수를 맞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회적 박탈감은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져 굳어갔고 법 제도만으로 굳어진 잘못된 인식을 한 번에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연은 수많은 일들을 해왔고 많은 결과를 이뤄 왔습니다. 모든 것의 기저에는 '인권'이 라는 대 전제가 있어요. 그러나 자기 권리를 찾아 향유하고 그 힘의 주인이 되려면 자기인식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종국에는 모두 각자의 인권을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죠. 참정권을 비롯한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다양한 권리를 우리는 모를 누군가로부터 거저 얻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입니다. 외로이 애를 썼던 누군가를 기억하지 않으면, 그리고 나와 우리가 함께 애를 쓰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마땅할 권리를 제자리에 두고 누리기 힘들어집니다. 어제까지 내 것이었던 권리를 오늘 돌연 잃을지도 모를 일이죠."
위기와 불안의 사회에서 우리는 당연했던, 곧 빼앗길지 모르는 우리의 인권을 수호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금옥 대표가 여성인권, 소수 약자의 인권의 개념과 그 활동의 대중화를 서두르는 이유다. 여성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남성 우위의 권력구조'의 반대급부라고 곡해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대중이 여연이나 여성인권, 인권 활동을 왜곡하거나 대하기 꺼리는 경우는 아주 잦다. 김금옥 대표는 이 현상을 대중의 탓으로만 돌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여연을 비롯한 다양한 인권운동 단체, 평등사회를 이야기하는 크고 작은 모임의 문턱이 스스로 낮아지고 소통의 기회를 넓힌다면,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같은 언어를 가지고 진실과 진심을 이야기한다면 사회는 자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만 보다, '침묵과 방관'이 가져올 우리 모두의 침몰

김금옥 대표는 달고 있던 노란 리본을 건넸다. 우리가 근조의 의미인 검은색 대신 노란색을 함께 달고 애도하는 것은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다.
모두가 동조한 선택이고 그 책임을 통감해야만 한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침묵하고 방관해 온 사회구성원들에게 갑작스러운 비극이 가져온 당혹스러움과 충격은 쉬이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 <44번 버스>가 재조명받고 있죠. 중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짧은 영화의 결말은 아주 혼란스럽고도 가슴이 저릿한 묘한 감정을 갖게 합니다."
한 남자가 시골길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여자 운전기사가 운전하던 버스는 한참 시골길을 달리다 두 남자를 태우는데, 그들은 강도다. 올라타자마자 승객과 운전기사의 가방과 주머니를 턴 그들 중 하나가 여자 운전기사를 바라본다. 강제로 끌려 나가던 그녀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승객들을 바라보고, 먼저 탔던 그 남자가 승객들에게 말한다. “저 사람을 구해야 하지 않나요?” 흠칫하던 승객들은 성폭행을 당하는 운전기사와 맞아가며 말리는 남자를 그저 구경하기만 한다. 강도가 달아난 후 그녀는 버스로 돌아오고, 원망스런 얼굴로 승객들을 본다. 그녀를 구하러 갔던 남자도 잔뜩 얻어맞은 채 칼에 찔린 다리를 간신히 이끌고 올라온다. 그런데 그녀는 버스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의 가방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기까지 한다. 남자는 “나는 당신을 구하려 했었다”며 소리치지만 버스는 그냥 달려가 버린다. 허탈한 남자는 터벅터벅 길을 걷다 다행히 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는데, 곧 경찰차가 그 옆을 쏜살같이 달려간다. 경찰은 말한다. 44번 버스가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해 운전기사와 승객 모두가 사망했다고.
이 영화는 특별한 소재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아주 평범한 구조일 뿐이다. 이 침통한 비극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김금옥 대표는 모두가 평등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부당한 삶을 살거나 이유 없이 차별받는 사람을 보고, 그 상황에 대해서 안 이상 말없이 그대로 두는 일이 없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은 위기에 처하고 불안은 증폭돼 가죠. 우리는 안전한 상태로의 변화를 꾀하고 그것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울 수 없는 유린의 트라우마가 반복되지 않기를

2000년과 2002년, 군산에서는 성매매의 희생양이 됐던 여성들이 대거 죽음을 당한 끔찍한 화재가 연이어 일어났다. 당시 대책위에 있던 김금옥 대표는 그들을 화장해 보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노예처럼 감금된 채 성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던 그 여성들은 화상으로 죽지 않았어요. 밖에서 잠긴 문 앞에서 탈출하려고 몰려들어 포개져 있다가 질식사한 겁니다. 지금도 화재 소식을 접하면 그때의 끔찍한 연기와 냄새가 느껴져요. 평생 잊기 힘든 기억이겠죠. 인권을 외치고 운동을 했던 결과가 겨우 이런 것이었나,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 온 인권 수호 운동이 사회적인 공감을 얻고 공공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굳은 의지를 가지고 책임을 다해야겠죠.”
김 대표는 모두의 상처는 치유 받아야 하며, 그 과정을 함께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일부 희생을 도맡던 집단이 모두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지켜줄 수는 없는 일. 나와 우리의 인권과 정체성이 더 이상 유린된 채 곪아가도록 둘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내 아이들이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만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땅에서 태어난 모두의 인권이 휴지조각처럼 맨 땅에 소리도 없이 버려지는 광경을 그저 지나치는 것을 우리는 멈춰야 한다.

내면 깊은 곳의 기쁨과 현실의 허기가 맞닿으면

“이 일을 책임감과 의무감만으로 해 왔다면 반드시 보상심리와 억울함 같은 것들이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고통을 끌어안고 벼랑 끝까지 내몰리거나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사람들 곁에서 과연 나 혼자 안정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진정 행복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물론 역으로,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 변화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인 것을 보고 회의가 느껴지기도 하죠. 더 나아가서,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나도 힘에 부치는데 그 사실을 외면하고 억지로 웃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기도 해요.”

 
김금옥 대표 역시 회의와 자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 사회 구조와 싸우고, 누군가가 억울하게 불행을 겪으면 힘이 돼 줘야 할 시점에 가장 먼저 응원하고 돕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여기던 김 대표는 문득, 방관하지 못하고 나서게 되는 것이 지나치게 과한 책임감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고민은 좀 정리가 됐어요. 제게는 앞으로도 할일이 많은데, 다행히 부분적으로나마 이런 감정들을 추스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바로 삶의 소명에 대한 재정의예요. 누구나 소명을 가지고 있잖아요.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기쁨이 세상의 허기와 만났을 때, 그것이 진정한 소명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허기’라는 말에는 수많은 감성과 갖가지 요소들이 함축돼 있다. 내면의 기쁨이 세상의 허기와 맞았는지, 그 외의 것과 닿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김 대표에게 큰 도움이 됐다. 김 대표는 이 공식을 활동가들에게도 전했다. 그가 덧붙인 말은 “지금 여기가 우리가 가장 행복해야 할 유일한 시간이고, 내가 행복할 때 우리가 행복한 것이다”였다. 허기와 만난 기쁨의 소명으로 그들은 수많은 여성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비극들을 해결하며 또 다시 행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성운동의 대중화를 꾸준히 고민해 온 김금옥 대표는 최근 여연 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협동조합 형식의 모임 ‘같이 연구소’를 만들었다. 상임대표 임기가 끝나면 그곳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펼쳐갈 계획이다. 성 평등 교육, 여성인권 교육 등의 인권 교육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대중과 그 콘텐츠를 함께 나누는 것이 그 첫번째가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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