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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시집 발표한 이문재 시인
10년 만에 시집 발표한 이문재 시인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7.04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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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주인공을 꿈꾸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무엇인가에 쫓겨 살다 보면 어느새 뒷전에 밀려나는 사람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면 삶의 질과 행복은 나의 이야기와는 무관한 일이 된다. 이문재 시인은 10년 만의 5번째 시집을 통해 지금, 여기, 내가 일치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류병문 | 장소협찬 카페 YM

이문재 시인이 10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을 발표했다. 새 시집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다. 시사주간지 기자 생활을 하다 대학교 강단에 서게 되면서 적응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심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매년 15편 정도의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시인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그 사이 직업과 일터가 바뀌었습니다. 2005년 시사주간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학교 강의에 적응하려다 보니 시집 원고를 정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는 매년 15편 꼴로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예민해진다면 삶의 주체가 된다

이번 시집의 제목 <지금 여기가 맨 앞>은 표제 시이기도 하다. 그가 표제 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삶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인생에 정작 '나'는 없고 다른 것들이 채워지는 현대인들의 삶을 이제는 관조자가 아닌, 주인공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의미다. 그래야 우리가 그토록 찾던 인생의 의미가 바로 지금 여기,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표제 시뿐만 아니라 이번 시집을 관류하는 메시지를 시집 제목에 담으려 했습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의 글에 '지금', '여기', '나'라는 세 요소가 일치하는 경우를 언급한 대목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지금, 여기, 나가 늘 분리되어 있습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엉뚱한 데로 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 있는 순간, 깨어 있는 순간은 시간, 장소, 주체가 일치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온전한 삶, 충만한 삶의 순간 말입니다. 또 우리들 각자가 지금, 여기에 예민해진다면, 우리 각자는 맨 앞일뿐만 아니라 저마다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삶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피해의식, 상대적 박탈감, 노예의식에서 벗어나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구절이 만트라(주문)처럼 수시로 되뇌어지길 바랍니다."
그는 이번 시집에 대해 잠언(아포리즘)과 같은 시라고 표현했다. 잠언의 특성상 삶의 깊은 통찰이 묻어나는 시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대상이 관찰과 사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마음은 물론, 타인을 관찰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잠언, 즉 아포리즘은 오랜 관찰과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사람과 사물, 장면과 풍경 등을 유심히 관찰하려고 합니다. 제 마음의 움직임도 중요한 관찰 대상입니다. 관찰은 시 창작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뭇 생명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타인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수성은 깊고 넓은 관찰일 것입니다. 또 시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잠언과 같은 언어일 것입니다. 삶과 세계를 꿰뚫는 한 줄의 문장으로 통찰, 직관, 예언 등은 모두 잠언의 형식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시의 '시위 효과'에 주목하는 편이다. 즉, 자신의 시가 세상을 깨우고 변화시키는 1인 시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나의 시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시를 비롯한 모든 예술이 '1인 시위'와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문제적 개인'이라면, 그 문제적 개인의 모든 활동은 사실 시위입니다. 문제는 그 시위가 얼마나 영향력을 갖느냐입니다. 불행하게도 제 시의 시위 효과는 그렇게 큰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시위 효과를 높이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역설은 낯익은 것에서 낯선 의미를 발견하는 것

"죽음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살 수 있다./ 그래야 삶이 삶다워질 수 있다./ 그래야 삶이 제대로 죽을 수 있다./ 죽음을 살려내야 한다./ 죽음을 삶 곁으로 삶의 안쪽으로 모셔와야 한다." ('백서2-죽음은 살아 있어야 한다' 중 일부 발췌)
시집의 표제 시나 시 '백서2'를 보면 끝과 시작(앞), 삶과 죽음에 관해 역설적 표현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시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좋은 시가 갖고 있는 여러 공통점 중 하나가 역설입니다. 아이러니와 역설이 없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어렵습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의미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이 바로 아이러니와 역설입니다. 이때의 아이러니와 역설은 형식이기도 하고, 내용이기도 합니다. 생각의 패턴일 수도 있겠지요."
그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토대 위에 인생과 타인과의 관계라는 핵심 메시지를 심어 놓았다. 시 '사막'을 보면,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상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물질이나 존재라는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 숨겨진 관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석의 토대 위에서 보면 그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사막'으로 비유한 셈이다.
삭막한 우리네 세상사가  사막이라면, 정처 없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는 바로 우리 모두다. 그러면서도 모래 사이를 채워 모래 언덕을 이룬 사막의 모습에서 그는 관계를 통해 사회를 형성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사이코 패스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이코 패스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이 메마른 사회가 곧 사막이 아닐까요. 이웃은 물론 자연과 단절된 개인, 자기 내면과도 단절된 개인이 도달하는 마지막 상황이 사이코 패스들의 사회일 것입니다. 사이코 패스야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디스토피아입니다. 그런데 사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틈이 있습니다. 그 틈이 사막을 숨 쉬게 합니다. 그 틈이 곧 사이이고, 관계이겠지요. 관계의 재발견, 관계의 재구성이 곧 시 쓰기이자 시 읽기이고, 나아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비상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 제목을 지금, 여기가 관계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이처럼 그는 '시를 사회적인 맥락 안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문학의 공공성을 통해 신음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과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시를 사회적 맥락 안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시를 통해 독자들이 삶의 문제를 더 깊이 성찰하고, 시를 공유하면서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문학이 갖고 있는 공공성을 재활성화하고 싶습니다. 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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