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45 (금)
 실시간뉴스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7.05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환 기자의 거꾸로 보는 미국

인생은 순간의 총합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해 매 순간 즐기면서 일해야 성공할 수 있고 비로소 ‘행복’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껏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또 부딪치며 깨달은 진리다. 이 소중한 진리를 이제 막 꿈을 키워가며 세상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어가고, 또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전 세계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사진 박영환(KBS L.A.특파원)

▲ 어린 줄만 알았던 딸이 어느덧 미국의 프롬 파티(고등학교를 졸업 할 시기 마지막으로 열리는 공식적인 댄스파티)에 초대를 받을 정 도로 훌쩍 커 버렸다.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 딸을 볼 때면 감사하고, 또 행복하다.
사랑하는 딸 지수야! 어리다고 생각해온 네가 프롬 파티에 초대받았다니 대견스럽다. 엄마랑 예쁜 드레스 고르고, 구두와 액세서리 사고, 미장원에서 머리와 화장을 하는 모습이 어느 때 보다도 활기차 보였단다. 친구들과 리무진 타고 할리우드 호텔 연회장을 거쳐 산타모니카 해변 빌라에서 축제의 밤을 보낸다니 참으로 부럽구나.
중 2학년 때 전기불이 들어온 지리산 두메산골에서 자란 아빠로서 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파티가 아닐까 싶구나. 초등 동창들과 일 년 에 딱 한 번 계곡물에 발 담그고 수박이랑 참외 먹으며 놀았던 게 유일한 파티였지. 전축을 켜놓고 우스꽝스런 디스코 춤을 흔들어 댔던 그때가 떠오른다. 술에 취해 해방감을 만끽하다 발을 헛디뎌 친구와 어깨동무를 한 채 개울에 빠진 적도 있단다. 분명 일탈이었지만 그런 뜨거운 성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아빠가 있었지 않나 생각할 때도 있단다.

지수야! 공부든 파티든 마음과 몸을 몰입해 신나게 즐기는 사람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일도 잘하고 창의적인 법이다. 인생은 모든 찰나와 순간의 연속이고 총합이다.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지금 이 순 간(NOW)이 행복해야 한단다. 쾌락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라 매 순간 젖먹이 때 힘까지 다 쓰자는 애기다. 그런 뜻에서 평생 한 번 뿐인 프롬 축제의 밤에 두고두고 아름답게 기억될 추억을 만들길 기대한다. 
인생의 여정에서 지수의 요즘은 꽃망울이 만개하기 직전의 봄, ‘무한한 가능성’의 시기라고 볼 수 있지. 어떤 종류의 열매로 삶을 꾸려갈 것인가 그 방향을 찾는 중요한 시기야. 꽃은 잘 피웠는데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고 뿌리가 거름을 제대로 흡수 못해 열매가 부실해질 수도 있단다.
우리 집 뒷마당의 아보카도와 사과나무, 감나무는 지난해 풍성했지만 석류는 단 2개만 열매를 맺었지.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고교시절 닮은 면이 더 많았던 친구들이 세월이 흐른 뒤 서로 비교할 수 없는 크기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아빠는 고2 시절 언론인의 꿈을 가졌고 대학방송국 기자로 시작해 20년 넘게 그 길을 걷고 있단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성공의 척도로 삼는 돈과는 인연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단다.
어느 날인가 방에 파리와 모기가 들어 왔을 때 지수는 곤충도 살 권리가 있다거나 심지어 귀엽다며 꼭 살려서 내보내라고 소리를 질렀지. 동생이 장난삼아 개미를 밟았을 때 불같이 화를 냈던 걸로 기억한다. 지수는 세상의 모든 개를 순둥이로 만드는 특별한 힘도 가지고 있었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한 존중과 애정, 동물과 미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착한 마음이야말로 지수만의 강점이자 경쟁력이 아닐까. 지수가 동물심리치료나 수의학, 동물사육, 멸종동물 보호와 복원 같은 일을 직업으로 택하면 어떨까 아빠가 판단하는 이유이기도 하단다.

지수야! 그렇지만 최종 결정은 너의 몫이다. 인생은 엄마나 아빠의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의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추구했으면 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시험 점수 잘 받고 좋은 스펙을 만들지는 몰라도 인생에서 최종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들이다. 어떤 일을 하든 즐긴다는 건 싫증이나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고 일과 삶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일이 부담으로 여겨지지 않고 일상과 조화를 이룬다면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는 중에도,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이다. 자나 깨나 지지치 않고 일하는 사람을 이길 자는 세상에 없을 거야.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이나 기계에 감성을 입힌 천재 디자이너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일을 즐긴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직업을 택할 때 사회적 평가나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어.
천부적인 음감이 있어서 한때 작곡을 공부한 적도 있는데 재즈 피아노를 계속 열심히 해주었으면 해. 예술적 감수성은 인간의 내면을 심오하게 만들고 삶을 색다르게 끌어가는 자양분이란다. 평균화 된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시대에는 남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각도로 문제를 살피고 독창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단다. 남들이 화려하게 핀 꽃에만 감탄하는 사이 지수는 떨어진 꽃잎에도 눈을 돌리는 통 큰 마음의 소유자였으면 한다. 핀 꽃은 누구나 다 눈으로 느낄 수 있지만 지는 꽃은 땅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고 마음을 열어야만 보이는 법이니까.

▲ 지수는 우리 집 맏딸로 어린 시절부터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신기한 것은 멋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길거리를 다니며 개미 한 마리 밟지 않았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였다는 거다.
얼마 전 지수는 아빠가 너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며 화를 냈지.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너의 주장이 대부분 옳았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아빠는 너를 때 맞춰 물주고 햇볕에 내놓고 집 안에 들여놔야 하는 어린 새싹으로 대했던 거야. 아빠를 늘 믿어주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정반대였어. 내가 성적이 올라가고 떨어져도 남들이 기피하는 철학과를 택하고 기자를 택할 때도 열심히 하라는 당부뿐 질책이나 칭찬이 없었어. 두 분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는 없으나 큰 바위의 진중함을 느꼈단다.
사춘기였던 중학 시절 자살을 결심하고 칼을 안고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한 적이 있단다. 여느 어머니였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단다. 뒷산에 올라가 번민을 거듭하다 깜깜한 밤이 되어 야생동물 울음소리에 무서움을 느낀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부엌에는 잘 차려진 밥상이 놓여 있었단다. 다음날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도시락을 싸주셨단다.
부모님의 태산 같은 마음 씀씀이를 나는 왜 배우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단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속담도 있는데 앞으로 아빠는 트랜스포머처럼 지수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변신할 생각이야. 지수도 나이에 걸맞게 목표와 방향성 있게 고교 생활을 설계하고 책임감 있게 실천해 갈 것으로 굳게 믿는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