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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가 그리는 ‘희망 인천’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가 그리는 ‘희망 인천’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7.10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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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창간 24주년 기념 특별초대석-6·4 지방선거 화제의 당선자 ③

 

300만 인천 시민의 선택은 유정복이었다. 유정복은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전국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36세에 김포군수를 시작으로 인천서구구청장, 김포시장을 역임했다. 젊고 유능한 행정가로 통하는 유정복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도 알려졌다. 유 당선자가 그리고 있는 ‘희망 인천’의 청사진에 대해서 직접 들어 봤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이용관

“인천시민 300만 모두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장이 될 것”

유정복 당선자는 이번 6·4 지방선거 화제의 중심이었다. 유정복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접전 끝에 송영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불리한 것으로 파악됐던 유정복 당선자는 지난 6월 4일 오후 6시 공중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서 0.3%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변을 예고했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KTX 노선 신설,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경인전철 지하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 교통체계 개편과, 특화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 원도심 재생사업 추진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 당선자를 만나 앞으로의 시정 활동과 그가 그리는 ‘희망 인천’은 어떤 모습인지 들었다.

첫 인천 출신 시장, 군수·구청장·시장 모두 지낸 ‘행정의 달인’

“당선의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인천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고향의 시장이 된 만큼 인천의 발전을 위해서 온몸을 던져 일할 각오가 돼 있어요. 변화를 선택한 인천시민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시민들에게 약속한대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위대한 인천 시대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인천시민 300만 모두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유정복 당선자의 얼굴에서는 당선의 환희보다는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당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그를 만난 날은 그가 ‘희망 인천준비단’을 조직해 시정업무 인수인계를 받기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간 무렵이었다. 유 당선자는 물론이고 참모진 또한 인수인계를 위한 업무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그의 당선을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거 내내 여론조사에서도 송영길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게 조사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 조바심이 나지 않았을까.
“다소의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시민들이 인천을 위기에서 구할 적임자가 누구인지 적절한 판단을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장관직과 국회의원직을 다 내려놓고 인천시장에 출마할 때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나아갔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에 대해서 시민들이 이해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그가 인천 출신이라는 점이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1957년 인천 송림동에서 태어난 그는 인천 송림초등학교, 인천 선인중학교를 거쳐 제물포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인천 토박이 출신인 셈이다. 그의 시장 당선은 인천 최초의 인천 출생 시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유정복 당선자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보다 30년간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축적한 풍부한 경험이다. 그는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36세에 김포군수를 시작으로 인천서구청장, 김포시장을 전국 최연소로 역임해 일선 ‘행정의 달인’으로 불렸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초 외교관이 꿈이었다고 했다. 대학 3학년 때 행정가로서의 길로 진로를 수정하고 그 해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강원도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학사장교 1기로 군 생활을 마쳤고, 이후 내무부 인사계장과 경기도 기획관을 거쳐 1994년 36세의 나이로 김포군수에 임명되며 전국 최연소 군수가 됐다. 이어 1995년 인천서구청장 발령으로 또다시 전국 최연소 구청장 타이틀을 하나 더 갖는다. 행정 공직자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최초로 선거에 뛰어든 것은 인천서구청장으로 발령 났을 해이다. 당시 그는 지방선거 20일 전에 돌연 사표를 내고, 민선 김포군수로 출마했다.  
“제 삶의 행로가 바뀐 때였어요. 저 역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당시 김포군수로 출마해 달라는 요청이 왔었어요. 그냥 몇몇이 권유하는 것이었으면 단호하게 거부했을 거예요. 생활인으로서는 공직자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민선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감동적인 일들이 계속해 벌어졌어요. 버스를 대동해 가지고 와서 출마 요청을 하기도 하고, 향후 회장단들이 와서 ‘김포에는 유정복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를 바라는 이런 요청을 저버린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결론을 하게 됐어요. 결국 사표를 내고, 김포군수로 나가게 됐죠. 정당에는 가본 적도 없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거죠.”   
당시 그는 무소속으로 김포군수에 출마해 64%라는 높은 지지로 초대 민선 김포군수로 취임했다. 1998년 4월 김포군이 김포시로 승격되면서 초대 김포시장이라는 타이틀이 추가된다. 이렇게 그는 군수, 구청장, 시장을 전국 최연소로 역임한 전무후무한 기록의 보유자가 됐다.
또 이후에는 그간의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17·18·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그의 화려한 이력을 더한다. 초선 의원이었던 17대 국회의원시절에는 국정감사 우수의원(2004년), 입법 활동과 출석률 등 종합평가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2005년)으로도 선정되며 ‘착실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새로운 희망’으로 글로벌 경쟁력 갖춘 도시로

이번 선거의 짜릿한 승리를 느낄 시간은 이제 지났다. 그의 말대로 이제는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그의 눈앞에 산적해 있는 과제들이 산더미다. 일단 직면한 과제는 인천아시안게임이다. 인천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행사인 인천아시안게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시안게임은 현재 인천시가 직면한 가장 큰 현안이에요. 물론 인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큰 행사죠. 최근 정치 일정이라든가, 큰 사고로 인해 아시안게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취임하기 전에 경기장 시설 점검과 안전성 문제를 비롯한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어요. 점검을 통해서 어떤 부분을 보완시킬지 살피고, 정부로부터 지원과 협력을 받아 행사를 잘 치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시민들과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회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고요.”
그는 아시안게임이 단순히 경기를 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인천의 경쟁력을 제고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또 북한의 참가가 결정된 상황이니만큼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진전이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풀기 어려운 부분도 스포츠를 통해서 동질감을 회복시켜 나가고 남북 간에 좋은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인천아시안게임 외에도 인천이 해결해야 할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인천의 높은 부채는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천의 부채는 약 13조원에 이른다. 그는 “부채 전담 부시장을 둬 국비·교부세를 확충하고 시장 직속 투자유치단과 규제개선단을 설치, 인천 경제의 파이를 키울 생각”이라고 했다.
“현재로서는 얼마까지 줄이겠다고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인천의 재무구조, 각종 추진 사업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죠. 재정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로부터의 많은 지원과 협력이 필요해요. 예산 확보 문제뿐만 아니라 중요한 건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되고 인천 스스로 부를 창출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적인 국내외 투자 유치를 통해서 이 투자가 인천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내수경제를 진작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또 재정 여건을 고려해 기존 사업들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신규 세원을 발굴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준설토투기장(바다의 항로 확보 또는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바닥을 파낸 흙을 버리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지역) 등 신규 자산 확보 등을 추진하며 부채를 줄이려고 해요.”
이번 선거에서 그가 내세운 공약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인천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들이다. 그의 대표적인 공약은 KTX 노선 신설과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경인전철 지하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이다. 공약 실천을 위한 그의 계획을 들어봤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들이 보다 나은 경제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영유해 문화, 복지, 교육 여건이 개선되는 것이에요.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제가 우리 인천이 경쟁력 있는 도시로 발전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초가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통 인프라 확충은 도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 KTX 노선 신설은 유 당선자의 첫 공약이기도 하다. 그는 “KTX 인천발 시대를 열겠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광역시 중에서 KTX가 지나지 않는 곳은 현재 인천밖에 없어요. 인천의 시장성과 인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 사업은 필요합니다. 그 과정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건설 중인 수인선과 기존 경부고속철도를 연결만 하면 되는 사업입니다. 상업비 규모도 1천500억원 정도로 크지 않습니다. 또 인천시의 부담 없이 전액 국비 지원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기술적 검토도 마쳤고, 기관에서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라 큰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24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고 비판한다. 인천에 대한 국비 지원이 연간 2조원 수준임을 감안했을 때 재원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통해서 시비 부담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공약 이행을 위해 전체적으로는 국비 8조, 시비 9조, 민자 7조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협의만 잘되면 시비 부담이 큰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경인전철 지하화 사업은 상부 토지 매각대금 2조3천억원, 국비 1조원, 시비 1조원 등 4조3천억원으로 가능한 사업입니다. 노선이 통과하는 서울·경기·인천이 분담하면 인천시 부담 분은 총 6천억 수준입니다. GTX 예산도 민자 50%, 국비 38%, 시비 12%로 재원을 마련하도록 돼 있어요. 인천시 부담분은 6년 동안 3천억원으로 추산됩니다. 중앙정부와의 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사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약을 4년 만에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약 8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임기 중에 확실한 방향을 정립하고,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 1 당선 직후 아내에게 감사의 키스를 전하는 유정복 당선자 2 부모님 사진. 황해도 출신인 부모 덕분에 그는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다. 3 형제자매 사진(왼쪽에서 2번째가 유정복 당선자). 그의 7남매들은 인천 달동네에서 꿈을 키우며 자랐다. (사진 유정복 당선자 제공)

‘희망’으로 일군 가난한 달동네 소년의 성공기    

유 당선자의 준수한 외모나 그가 이제껏 걸어왔던 공직자로의 삶만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삶을 살아왔을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지일 뿐이다. 그는 인천 동구 송림동의 달동네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다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현재 도시개발로 사라지고 달동네박물관만 남아 있다.
부모님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이다. 많은 피난민의 삶이 그렇듯 그의 부모님의 생활 또한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7남매를 키운 부모님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유년시절은 가슴 시린 아픈 기억이 아니라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어요.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이 없어져서 아쉽긴 하지만, 그곳에 가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달동네에서 힘들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꿈을 키웠던 시절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가 밝고 곧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어머니를 꼽았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 해줬던 말을 지금껏 가슴속에 품으며 살아왔다.  “어머니 말씀이 ‘사는 것이 항상 이랑이 있으면 고랑이 있고, 고랑이 있으면 이랑이 있다’고 하셨어요. 이처럼 모든 때에 안 좋은 때를 생각해서 자만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죠.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항상 겸손하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인간적인 가르침이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행정 공직자, 기초 단체장, 국회의원, 장관, 광역시장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지만 덕분에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달동네 소년이 이제는 고향의 수장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는 인천 출신 시장으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나타내며 이런 포부를 밝혔다.
“제가 걸어온 시작과 현재는 인천과 맞물려요. 제 인생이 시작된 곳이기에 장관직과 국회의원직을 모두 내려놓고 시장에 출마하는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어요. 인천을 위한 선택이었어요. 인천은 자랑스러운 도시예요. 개항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근대 문명을 시작한 곳이고, 6·25 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지켜온 역사가 있어요. 최근에는 동북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인프라를 갖고 있는 도시예요. 인천시민들이 이런 자긍심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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